막스 플랑크와 양자불연속 논쟁 (1) 1900년 12월 14일과 10월 19일

막스 플랑크와 양자불연속 논쟁

(1) 1900년 12월 14일과 10월 19일 (2020.8.26.)
(2) 플랑크 작용 양자의 의미 (2020.9.2.)
(3) 과학혁명의 구조와 양자혁명 (2020.9.9.)
(4) 양자이론과 실험 / 플랑크의 먹구름 (2020.9.16.)

김재영 (녹색아카데미)


“Sieh zu, was du tust; sag an, warum du es tust; denn die Zeit fliesst dahin.”

“네가 하는 일을 지켜보라. 네가 그것을 왜 하는지 말하라. 시간은 흘러가버릴 테니”

라이프니츠 (Gottfried Wilhelm Leibniz)

막스 플랑크(Max Planck, 1858-1947)가 191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게 된 업적은 “에너지 양자의 발견을 통해 물리학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에 대한 인정”이었다. 그런데 그 에너지 양자 또는 작용양자의 발견이 과학사에서 실질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쟁점이 드러났다.

먼저 플랑크의 새로운 작용양자 개념이 양자혁명의 도화선이었다면, 그 혁명이 일어난 시점은 언제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1900년 12월 14일과 10월 19일에 대한 이야기를 더 상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플랑크의 연구가 과연 혁명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둘러싼 논쟁도 유익하다. 양자혁명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하는 문제도 그 동안 많이 주목받지 않은 주제이다. 플랑크가 있던 베를린 대학 이론물리학연구소 대신 그가 설명하려 했던 새로운 실험결과가 도출된 물리-기술 제국연구소에 주목함으로써, 과학의 역사에서 이론과 실험의 역동적 상호관계를 다시 바라볼 수 있다. 

[그림 1] 노벨상을 받고 있는 막스 플랑크(오른쪽). 1918년. (출처: Physics.org)

1900년 12월 14일과 10월 19일

1900년 12월 14일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 물리학회에서 플랑크는 “빛띠(스펙트럼)의 에너지 분포 법칙의 이론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역사적인 논문을 읽었다. 이 논문에서 처음으로 보편상수가 도입되었으며, 흑체복사의 에너지밀도에 관한 식이 제시되었다. 플랑크의 말을 직접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제 우리는 진동수 𝜈인 N개의 껴울림 떨개(공명진자)에 대한 에너지 E의 분포를 결정해야 한다. 만일 E가 무한히 나누어질 수 있는 양이라고 보면, 분포의 방식은 무수히 많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E를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유한한 수의 동일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이것이 전체 계산의 본질적인 핵심이다.) 이런 목적으로 자연상수 = 6.55 × 10-27erg sec를 도입한다. 이 상수에 떨개들의 공통 진동수 𝜈를 곱하면 에너지 요소 ε을 erg 단위로 얻을 수 있으며, E를 ε으로 나누면 N개의 떨개에 분포되어 있는 에너지 요소의 수(Anzahl) P를 얻는다.

막스 플랑크

이 말은 곧 에너지가 연속된 값을 갖는 게 아니라 띄엄띄엄 떨어진 불연속적인 값을 갖는다는 양자화 가설을 의미한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이 말은 현대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이론의 고고지성을 들려준다.

[그림 2] “Zur Theorie des Gesetzes der Energieverteilung im Normalspectrum.” 막스 플랑크의 논문. 1900년 12월 14일.

1947년 10월 7일 괴팅겐의 알바니 교회에서 거행된 플랑크의 장례식에서 라우에(Max von Laue)가 읽은 추모사에서 언급된 이후 양자역학의 탄생일은 1900년 12월 14일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과학사학자 막스 야머(Max Jammer)는 굳이 양자역학의 탄생일을 정하고자 한다면, 1900년 12월 14일보다는 1900년 10월 19일이 더 적합하다고 제안했다.

10월 25일에 베를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독일물리학회를 앞두고 당시 제국물리기술연구소(Physikalisch-Technische Reichsanstalt, PTR)와 샤를로텐부르크 공과대학에 있던 루벤스(Heinrich Rubens)와 쿠를바움(Ferdinand Kurlbaum)은 흑체의 열복사가 복사선의 파장에 따라 어떻게 분포하는지 매우 정밀하게 측정한 결과를 10월 19일에 플랑크를 비롯하여 몇 명만 모인 작은 모임에서 발표했다.

[그림 3] Ueber eine Verbesserung der Wien’schen Spectralgleichung. 막스 플랑크의 논문. 1900년 10월 19일.

이를 위해 루벤스와 쿠를바움은 모임이 열리기 며칠 전에 플랑크에게 새로운 측정결과의 데이터를 미리 주고 상세한 논평을 부탁했다. 제국물리기술연구소에 있던 빌헬름 빈(Wilhelm Wien은 기존의 파셴(Friedrich Paschen)의 실험과 잘 일치하도록 기체분자운동론을 써서 실험식을 유도해 발표했다.

그런데 장파장 영역에서는 빈의 실험식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 루벤스와 쿠를바움의 실험결과였다. 플랑크는 이 새로운 데이터를 설명하기 위한 논평을 준비하는 중에 올바른 흑체복사 공식을 얻었다. 플랑크는 빈의 실험식을 개선함으로써 루벤스와 쿠를바움의 새로운 실험결과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식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림 4] 흑체복사곡선. 온도가 높을수록 흑체에서 복사되는 에너지 최고값이 나타나는 파장은 짧아진다. (출처: wikipedia)

파셴의 실험결과를 넘어서는 루벤스와 쿠를바움의 실험이 없었더라면, 플랑크가 에너지 양자화 가설을 도입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플랑크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루벤스가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복사법칙의 정식화나 양자이론의 기틀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루어졌거나 심지어 독일에서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2) 플랑크 작용 양자의 의미”로 계속됩니다.

* 이 글은 한국물리학회 발간 <물리학과 첨단기술> 2018년 12월호에 실렸던 글을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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