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과 전체, 원자물리학을 둘러싼 하이젠베르크의 대화들 (5)

부분과 전체, 원자물리학을 둘러싼 하이젠베르크의 대화들

(1) 하이젠베르크, 양자역학, 부분과 전체. 2020년 7월 15일
(2) 하이젠베르크의 청년 시절, 이론물리학과 원자이론. 2020년 7월 22일.
(3) 보어와 하이젠베르크, 독일 최연소 대학교수. 2020년 7월 29일.
(4) 서른 살의 노벨상, 전쟁 속의 하이젠베르크. 2020년 8월 5일.
(5) 코펜하겐 1941년, 왜 부분과 전체일까? 2020년 8월 12일.

김재영 (녹색아카데미)


코펜하겐, 1941년

1941년 9월, 당시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의 이론물리학 교수였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표면적인 이유는 코펜하겐의 독일문화원에서 열리는 천체물리학과 우주선에 관한 워크숍에서 발표를 하기 위해서였다.

워크숍 자체는 바이츠제커의 아이디어였다. 독일에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국권을 빼앗긴 덴마크와 독일의 우호 관계를 물리학 연구의 발표를 통해 확인하겠다는 알량한 아이디어는 사실 덴마크의 과학자들을 우롱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하이젠베르크의 또 다른 중요한 목적은 닐스 보어를 개인적으로 방문하는 것이었다.

코펜하겐은 인어공주 아리엘의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쓴 안데르센과 칼스버그 맥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과학자들 특히 물리학자들에게 코펜하겐은 그 무엇보다도 닐스 보어의 도시였다.

1913년에 플랑크의 에너지 양자화 이론과 아인슈타인의 빛 양자이론을 접목시킴으로써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을 크게 개선한 새로운 모형을 제안하면서 보어는 원자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자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192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뒤, 칼스버그 재단의 후원으로 설립된 이론물리학 연구소는 전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원자이론, 특히 양자이론을 연구하는 중심적인 곳이 되어 있었다.

코펜하겐은 당시 양자이론의 메카였다. 그런데 하이젠베르크가 1941년 코펜하겐으로 보어를 방문한 목적은 양자이론이 아니었다. 영국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마이클 프레인이 1998년에 발표한 희곡 <코펜하겐>은 이 중요하고도 어려운 1941년의 만남을 소재로 한 탁월한 작품이다.

[그림 1] 연극 <코펜하겐> 초연 프로그램. 1998년. (출처: wikipedia)

그 해 런던에서 처음 상연된 이후 300여 회 넘게 공연되었고 미국 브로드웨이에서도 326회나 공연되었으며, 2002년에는 BBC에서 텔레비젼용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코펜하겐>은 “도대체 왜 하이젠베르크가 우리를 방문했던 것일까?”라는 마르게리테 보어의 말로 시작한다. 우리도 이제 그 질문을 다시 던져 본다. 하이젠베르크는 1941년에 왜 보어를 방문한 것일까?

1948년에 하이젠베르크가 바이츠제커의 전범재판을 위한 쓴 진술서의 초고에 따르면,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고 기억하고 있다. “물리학자에게 원자에너지를 실용적으로 탐구하는 연구를 할 수 있는 도덕적 권리가 있을까요?” 보어가 무척 놀라서 무슨 대답을 했는지 생각나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이 기억은 의심스럽다. 그 전이든 그 무렵이든 하이젠베르크가 물리학자의 연구에 대한 도덕적 주제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다. 이런 종류의 윤리적 문제들은 굳이 독일 치하의 피점령국까지 찾아가서 보어와 이야기할 필요 없이 이미 베를린에 있는 플랑크나 폰라우에와 의논하고 있었지만, 원자에너지의 실용적 탐구에 대한 얘기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페르미와 대화를 나누었던 1939년의 회고에서 이미 원자폭탄을 거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하이젠베르크도 핵무기의 가능성을 모르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1948년에 라이프치히 대학의 동료였던 수학자 판더르바르더에게 보낸 편지에는 연합국 측의 과학자들에게 핵분열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당시 상황에 대한 하이젠베르크의 부인 엘리자베트의 기억에 따르면, 하이젠베르크는 독일보다 뛰어난 과학자들이 많고 인적 및 물적 자원이 풍부한 연합국 측이 폭탄을 먼저 개발하여 독일에 사용할까봐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그러니 아마도 연합국 측과 연락이 닿을 보어에게 독일의 핵무기 개발은 진행되지 않을 터이니 연합국 측도 핵무기 연구를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는 해석이다.

전쟁이 끝난 후 하이젠베르크는 독일 비-밀경찰 게슈타포로부터 보어가 연합국 측 과학자들과 연락을 주고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썼다. 보어가 연합국 측 과학자들에게 하이젠베르크가 왔었다는 비밀 메시지를 보낸 것을 도청으로 알아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가설은 하이젠베르크가 독일군의 스파이 노릇을 했다는 것이다. 연합국 측 과학자들과 연락이 닿고 있을 보어로부터 연합국 측의 핵무기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또는 어느 정도 진척이 되고 있는지 알아보려 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1948년의 진술서 초고에서 하이젠베르크는 우라늄 클럽의 연구는 철저하게 핵반응로를 건설하여 에너지를 얻으려는 연구였으며 핵무기를 만들려는 게 아니었다고 쓰고 있다. 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방대한 작업이라서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성공할 수도 없을 것이라 믿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2002년에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코펜하겐에 있는 닐스 보어 문서보관소에서 보어의 미발표 기록을 공개한 것이다. 연극 <코펜하겐>의 광범위한 성공과 그에 따른 학술적 토론을 보면서, 사후 50년 뒤인 2012까지 공개하지 않도록 되어 있는 보어의 편지를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정했다는 것이다.

1956년, 스위스의 저널리스트 로베르트 융크는 베스트셀러 <천 개의 태양보다 더 밝은>에서 독일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 언급하면서, 1941년 하이젠베르크가 보어를 찾아가서 윤리적으로 문제가 심각한 핵무기를 개발하지 말고 정치권의 종용에 보이코트를 하자고 했고, 연합국 측의 과학자들과 독일의 과학자들 사이의 암묵적 합의 덕분에 독일의 핵무기 개발이 늦춰졌다고 썼다.

[그림 2] 융크(Robert Jungk. 1913-1994). <천 개의 태양보다 더 밝은>. 맨해튼프로젝트와 독일 핵폭탄프로젝트를 다룬 첫 번째 책이다. (출처: wikipedia)

융크는 하이젠베르크에게 출판된 책을 보내면서 1941년의 보어 방문에 대해 논평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이젠베르크는 1948년 진술서 초고와 유사하게 “우리는 핵폭탄을 만들 수는 있음을 알았지만, 그 과정에서의 여러 기술적 장애물들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그 바람에 다행히 핵무기의 개발을 더 깊이 추진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기조의 네 페이지짜리 답장을 보냈다.

융크는 <천 개의 태양보다 더 밝은>의 덴마크어 번역과 영어 번역을 각각 1957년과 1958년에 출판할 때, 하이젠베르크의 편지 전문을 함께 실었다.여간 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보어가 이 편지를 보고 격노했다. 하이젠베르크의 편지를 조목조목 비판하는 강한 어조의 편지를 썼다.

“나는 당시 덴마크의 엄청난 슬픔과 긴장이 서려 있던 이 곳에서의 대화를 단어까지 세세하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네. 연구소의 내 사무실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도 똑똑히 기억하네.

자네는 모호하게 표현했지만, 자네의 지도 아래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독일에서 지난 2년 동안 진지하게 이루어져 왔음을 분명히 암시하는 내용이었지.

내 행동에서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인 것이 있었다면, 핵폭탄이 만들어질 수도 있으리라는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독일이 핵무기를 맨 처음으로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네.

게다가 나는 당시에 영국과 미국에서 진행된 연구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네. 덴마크를 점령한 독일군이 나를 체포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간신히 영국으로 도망간 뒤에야 비로소 그에 대해 처음 들었네.”

– 닐스 보어

하지만 본인 스스로 너무 강한 어조라고 생각했었는지, 보어는 여덟 번이나 퇴고를 한 이 편지를 하이젠베르크에게 보내지 않았다. 대신 1961년에 하이젠베르크의 회갑을 축하하는 전신을 보냈다. 만일 하이젠베르크가 보어의 보내지 않은 편지들을 보았더라면 이 책의 15장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와 기억은 다른 법이다. 누구의 기억이 더 옳은 것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거의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전쟁의 막바지에서 불에 갇힌 노인을 구하러 들어가는 하이젠베르크의 모습은 아마 그 자신이 늘 스스로 되뇌고 희망하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왜 부분과 전체일까?

이 책의 제목은 왜 <부분과 전체>라고 지어졌을까? 하이젠베르크 자신에게 물어보지 않는 한,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여러 가지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한 실마리는 17장에 나오는 ‘전체성’Ganzheit이란 말이다. 물리학과 화학과 생물학의 관계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9장에도 생명체의 전체성과 물리학이 다루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이 집중적으로 나온다. 또한 보어를 처음 만나 원자의 안정성을 다루는 3장에서도 이 말이 등장한다.

‘부분(der Teil)과 전체(das Ganze)의 개념쌍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였다. 이는 그리스어 메로스/홀로스(meros/holos) 및 라틴어(pars/totum)의 개념쌍에 대응한다. 플라톤의 자연철학에 견주어 보면, 전체는 곧 세상의 모든 것, 즉 우주이며, 절대적인 것을 가리키는 반면, 부분은 이 전체를 받치고 있으면서 그 자체로는 전체가 될 수 없는 요소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전체가 불변하는 무엇이라기보다는 가령 헤라이클레이토스가 “모든 것은 흐른다”고 말할 때처럼 그 안에 변화를 안고 있다. 물리학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개념은 ‘계’ 즉 ‘시스템’이다. 그리스어의 ‘시스테마’ 자체가 분절된 부분들이 연관된 전체를 가리킨다.

[그림 3]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나오는 4원소. 4면체(불), 8면체(공기), 20면체(물), 육면체(땅). (출처: wikipedia)

무엇보다 부분과 전체의 관계가 확연한 것은 생명이다.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부분들을 분리시키면 생명을 잃어 버릴 수 있다. 부분들이 모두 모여 있어야만 비로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어린 시절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를 통해 세계라는 전체를 이루는 부분으로서의 원자를 만난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원자물리학을 통해 부분과 전체의 만남이 완성된다고 믿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이 “기본입자와 플라톤 철학”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것은 하이젠베르크가 은퇴할 무렵에 주목하고 있던 것이 세상을 이루는 원자와 세계 전체의 관계였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물리적 세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10대 후반 나이에 만난 <티마이오스>의 원자론에서 출발한 이 책이 70이 다 된 나이에 다시 기본입자에 대한 플라톤의 철학적 사유로 연결되어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책 <실재의 질서>에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에 대한 가장 깊이 있는 성찰이 담겨 있다. 뉴턴의 색채론과 괴테의 색채론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뉴턴은 프리즘으로 분리되는 무지개 색들을 주체와 무관하게 세상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것으로 보았던 반면, 괴테는 색이란 주체와 대상이 만나 어우러지는 것이며 빛과 어둠의 상호작용이라고 보았다.

[그림 4] 하이젠베르크. <실재의 질서> (그림 출처: amazon.co.uk)

하이젠베르크는 이 두 색채이론 중 어느 하나만 맞는 것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오히려 세상을 바라보는 상보적인 두 접근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뉴턴의 색채론이 물리적 질서를 보여준다면 괴테의 색채론은 정신적인 질서를 보여준다.

하이젠베르크는 더 나아가 실재의 근본질서를 우연적 질서, 기계적 질서, 물리적 질서, 화학적 질서, 생체적 질서, 정신적 질서, 윤리적 질서, 종교적 질서, 천재적 질서로 나눈다. 괴테를 따른 것이다.

실제로 하이젠베르크는 이 책을 내기 2년 전인 1967년에 <괴테 연보>에 “괴테의 자연상과 기술-과학적 세계”란 제목의 논문을 냈다. 여기에서도 <부분과 전체>에 등장하는 핵심적인 주제들이 등장한다. 괴테가 바라보는 자연의 상에서는 큰 것과 작은 것의 구분이 사라지며, 안과 밖이 다르지 않으며, 부분을 단순하게 모아 놓은 것이 전체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부분 속에서 전체가 반복된다. 

<부분과 전체> 연재 끝.


알림

* 이 글은 2016년에 출간된 <부분과 전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지음, 유영미 옮김, 서커스)에 실린 감수의 글을 위한 초고를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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