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내공생과 자유에너지로 본 생명 – (3) 자체촉매적 국소 질서의 출현

과학칼럼 새 연재 “세포내공생과 자유에너지로 본 생명”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 연재는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장회익, 2014)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생명의 정의, 자유에너지, 내부공생, 온생명론 등을 다룹니다. 특히 물리학으로 생명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고 문제를 제기하신 장회익 선생님의 접근에 대한 상보적인 관점으로, 생물학자(린 마굴리스의 세포내공생)와 생화학자(닉 레인의 세포막과 자유에너지 접근)의 이론을 함께 소개합니다.

(1)편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보러가기
(2)편 “생명을 정의하는 문제와 철학적 문제” 보러가기
(3)편 “자체촉매적 국소 질서의 출현”
(4)편 “생화학의 눈으로 본 생명: 자유에너지” 보러가기
(5)편 “생화학의 눈으로 본 생명: 염기성 열수 분출구” 보러가기
(6)편 “생화학의 눈으로 본 생명: 내부공생” – 1 보러가기
(7)편 “생화학의 눈으로 본 생명: 내부공생” – 2 보러가기
(8)편 “바탕체계와 온생명” 보러가기

김재영 (녹색아카데미). 2019년 12월 3일.


자체촉매적 국소 질서의 출현

생명이란 현상은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가장 심오한 현상인 동시에 가장 어려운 주제이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서술은 어떤 틀로 진행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장회익 (2014)의 접근은 매우 선명하다. 

1장에서는 생명을 일종의 ‘물음’으로 제기하고 이 ‘물음’에 대한 핵심을 소개한다. 책 전체가 하나의 논문처럼 다루어야 할 물음을 1장에서 정확하고 적절하게 요약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에르빈 슈뢰딩거의 책 <생명이란 무엇인가>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디딤돌로 삼아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안한다. 이는 1장의 마지막 문장에 잘 드러난다.

“확실한 것은 살아 있음이라는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생명’이 어딘가에는 있어야 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이 생명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과연 생명이라는 것을 규정할 수나 있을까?”

장회익, 2014: 49.


이렇게 풀어야 할 물음을 요약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제까지 사람들이 생명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가를 살피는 것이 순서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생명에 대한 논의를 모두 백과사전적으로 망라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유의 전통에서 생명에 대한 이해를 어느 정도나 다루어야 할까? 이 책은 정확히 꼭 필요한 다섯 가지 접근을 소개한다. 이는 더도 덜도 아닌 정확히 이후의 논의를 위해 필요한 접근들이다.

먼저 일상 속의 생명 개념을 비판적으로 살핀다. 이것이 어떻게 베르나드스키의 생물권 이론으로 확장되었는지 그리고 다시 라세브스키와 로젠의 이론생물학적 논의에서 어떻게 이것이 관계론적 생물학으로 발전했는지 검토한다. 이후의 논의에서 중요한 관건이 될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자체생성성 이론을 소개함으로써 2장이 완결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제안하는 생명의 정의는 자체생성성 이론에 대한 비판적 계승이다. 3장에서 생명의 정의 문제를 요약적으로 정리하면서 왜 생명의 정의가 어려운지 해명하고 있으며, 생명을 정의하는 최근의 흐름들을 소개한다. 특히 루이스-미라소, 페레토, 모레노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원용한다.

그러나 생명을 가장 적절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엔트로피, 자유에너지, 질서, 정연성과 같은 주요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4장에서 열역학의 법칙과 자유에너지를 다루는 것은 바로 그 필요 때문이다.

특히 슈뢰딩거의 논의가 활발하게 계승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슈뢰딩거가 말한 ‘정보’와 ‘음의 엔트로피’ 중 생명의 청사진을 담고 있다는 유전정보만이 부각되어 온 면이 있다는 점에서 엔트로피 개념을 확장한 질서와 정연성의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5장이 우주의 역사 속에서 전개되어 온 질서에 주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물질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형상들에 대한 논의에 있어, 우주가 어떻게 출현하고 여기에서 기본입자들이 생겨나고 여러 상호작용들이 갈라져 왔는가 하는 것을 질서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살피고 있다.

물질 세계 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국소 질서는 어디에서든 언제이든 나타났다 사라질 수 있으며, 이것 자체가 신기한 일은 아니다. 국소 질서가 고립된 계가 아니라 일정한 흐름 안에서 유지된다면, 거기에서 매우 특별한 국소 질서가 생겨날 수 있다. 그것이 ‘자체촉매적 국소 질서’(autocatalytic local order, ALO) 또는 줄여서 ‘자촉 질서’이다. 자촉 질서는 자신과 거의 닮은 다른 국소 질서를 생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존재이다.

[그림 1] 국소질서의 형성되는 과정. 요동에 의해 준안정 상태로 전이된다. 형성된 국소질서가 사라지기 전에 자신과 대등한 국소 질서가 하나 이상 형성되는 일정한 흐름이 유지된다면 자체촉매적 국소 질서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림 : 장회익)

“이러한 국소 질서가 일단 생성되어 그 존속 시간 안에 자신과 대등한 국소 질서를 하나 이상 생성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면, 이러한 국소 질서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장회익, 2014: 163-164.


최초의 자촉 질서가 어떻게든 형성되기 위해서는 이에 앞서 충분히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일차 질서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 일차 질서 위에 우연히 만들어진 자촉 질서가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바로 그 생명이 된다. 자촉 질서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물리학자의 가장 세련된 대답이다. 이는 일반적인 수준에서 생명을 이해할 수 있는 포괄적이고 명료한 틀이다.

생명에 대한 탐구에서는 원칙적으로 개념적 접근과 역사적 접근이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실제로 지구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굳이 따지지 않고 가장 근본적인 핵심개념을 골라내고 이를 토대로 생명의 가장 본질적인 면을 찾아내는 것이 개념적 접근이다.

이와 달리 역사적 접근에서는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지구상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생명, 특히 지구상 생명체들의 공통요소인 세포가 만들어졌는지 등에 대한 경험적 증거들과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토대로 실질적인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 두 접근은 어느 하나를 버릴 수 없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상보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물리학의 눈으로 바라본 생명의 모습에 대한 이러한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틀이 갖추어진 뒤에 더 살펴 볼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생명과학의 관점에서 이 추상적인 틀이 어떻게 구체화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19세기 초에 처음 정의되어 살아 있는 자연에 대한 통합적이고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탐구가 되어 온 생물학 또는 생명과학의 연구성과들을 물리학의 눈으로 바라본 생명의 모습과 연결시키는 작업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생명과학은 생명현상에 대한 엄청나게 방대한 자료들로 가득 차 있으며 여기에서 온생명론에 대한 함의를 끌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생명과학 안에서도 다양한 접근들이 서로 이견을 제시하며 논의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통합적인 관점을 얻어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후의 논의에서는 생명과학 중에서도 생물에너지학과 생화학을 중심으로 하고, 2015년에 출판된 영국의 생화학자 닉 레인의 저서를 주된 디딤돌로 삼아 몇 가지 중요한 쟁점만을 짚어보기로 한다 (Lane, 2015).

… (4)편 “생화학의 눈으로 본 생명(자유에너지)”에 계속 됩니다.


참고자료

  • 장회익 (2014).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한울아카데미.
  • Lane, N. (2015). The Vital Question: Why Is Life the Way It Is?. Profile Books; 김정은 옮김 (2016). 바이털 퀘스천: 생명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까치.

* 이번 과학칼럼 새 연재는 ‘온생명론 작은 토론회'(2016년 아산)에서 소개된 글(김재영, 녹색아카데미)입니다. 장회익선생님의 온생명론과 공생이론, 자유에너지를 비롯한 생화학적 생명이해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