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는 무질서라는 오개념의 역사


4월 15일 자연철학세미나에서 ‘엔트로피’ 개념과 그 오용 문제에 대해 공부를 하기로 한 김에 일전에 자연사랑님이 소개해 준 엔트로피 오개념을 논하는 짤막한 논문을 우리말로 옮겨 소개합니다.

Dan Styer (2019) “Entropy as Disorder: History of a Misconception”
The Physics Teacher 57, 454 (2019); https://doi.org/10.1119/1.5126822

길지 않은 논문의 내용이 흥미롭기도 하고, 교사들을 위한 학술지에 실린 글인 탓인지 흥미로운 수업 교안을 보는 것 같아 재미있기도 하여 글 전체를 그대로 옮겨 보았습니다. 위의 원문 링크를 따라 가시면 원문 전체를 보실 수 있으니 원문과 대조해서 보시고 번역에 오류가 있는 부분은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번역: 최우석 (녹색아카데미)


엔트로피는 무질서라는 오개념의 역사 (Entropy as Disorder: History of a Misconception)

댄 스타이어(Dan Styer)

<그림 1> 한 병의 이탈리안 샐러드 드레싱은 열적 평형 상태에 있지만 고르게 섞여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엔트로피의 성질에 대해 말해주는 건 무얼까요?

이 에세이를 읽기 전에, 부엌으로 가서 이탈리안 샐러드 드레싱 한 병을 찾아 보세요. 온도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가만히 놓여 있던 병 하나를 고릅니다—열적 평형 상태에 있는 것이죠. 그러면 병의 위쪽으로는 기름이 띠를 이루고, 병의 아래쪽으로는 포도주 식초가 가라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그림 1).

드레싱을 샐러드에 뿌려서 먹기 전에 잠깐 생각을 해봅시다. 이 드레싱은 열적 평형 상태에 있으니, 최대 엔트로피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엔트로피는 “무질서”를 의미하지 않나요? 만약 10원짜리 동전 50개와 50원짜리 동전 50개가 한 무더기를 이루고 있을 때 10원짜리는 모두 위에만 있고 50원짜리는 아래에만 있다면 누구도 이걸 보고 무질서하다고 말하진 못할 겁니다. 그러면 왜 열적 평형 상태에 있는 이 샐러드 드레싱은 질서 잡힌 동전 더미처럼 분리되어 있는 걸까요?

여기에 대한 답은 엔트로피가 언제나 “무질서(disorder)”나 “고름(uniformity)”, 또는 “부드러움(smoothness)” (“부드러운 땅콩 버터”를 말할 때의 뜻으로)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에세이는 이 관련성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절에서는 엔트로피와 무질서를 연관짓는 연결이 왜 항상 적절한 것은 아닌지 드러내 보이겠습니다. 둘째 절에서는 만약 엔트로피가 무질서에 대한 척도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토록 많은 과학자들이 그러한 인상을 가지고 있는지를 질문해 보겠습니다. 셋째 절에서는 똑같은 질문을 과학자가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에 대해 던져보려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서는 이 말들에 대해서 언제 이해에 도움이 되고 또 언제 이해를 방해하는지 찬찬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엔트로피가 언제나 무질서인 것은 아니다

엔트로피가 언제나 “무질서”나 “고름”[1]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이탈리안 샐러드 드레싱[2] 사례로 보아 분명합니다. 여기 다른 예들도 있습니다.

  1. 냉동실에서 얼음을 꺼내서 후라이팬에 올린 후 열을 가해 보세요. 육면체의 얼음덩어리는 얼음으로만 되어 있던 상태에서 얼음과 물이 섞인 상태로 변하고, 완전히 물로 변했다가, 물과 수증기가 섞인 상태가 되었다가는 완전히 수증기가 되어 버립니다. 즉, 얼음은 고른 상태에서 고르지 않은 상태로 바뀌고, 다시 고른 상태가 되었다가 또 다시 고르지 않은 상태로 바뀐 후 다시 고른 상태로 바뀝니다. 하지만 이 모든 단계에서 엔트로피는 증가하죠.
  2. 냉동실에서 얼음 몇 개를 꺼내서 잘게 조각을 낸 뒤, 사발에 담아 식탁 위에 놓아 두세요.[3]  얼음 조각들은 녹아서 물이 됩니다. 얼음 조각들은 무질서하고 고르지 않습니다. 물은 고릅니다. 그러나 물이 훨씬 더 엔트로피가 높습니다.
  3. 작은 크기의 기체 표본은 고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체 표본의 크다면 그럴 수 없습니다: 한 병의 공기 또는 한 병의 순수한 질소 기체일지라도 해수면 높이에 병 바닥이 닿고 병의 꼭대기가 해발 10km에 이르게 하여 담아둔다면 아래는 밀도가 높고 위로 갈수록 밀도가 낮아져서 맨 윗 부분은 거의 진공과 다름없이 될 겁니다.
  4. 1 cm³의 공기를 일상적인 온도와 압력을 가진 1리터 부피의 진공실에 놓습니다. 공기는 진공실 전체로 퍼져 나가서 고른 상태를 이루게 됩니다. 같은 실험을 공기 대신 1 cm³의 금을 가지고 해보면 결과는 고르지 않습니다.

전형 대 평균

<그림 2>에 보이는 두 가지 배치는 엔트로피와 무질서 사이의 구분에 대한 더 깊은 통찰을 줍니다.[4]

<그림 2>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두 개의 배치 상황. 위의 것과 아래 것 중 어떤 것이 엔트로피가 더 낮은 무리를 잘 보여주는 예일까요?

각각의 배치 상황은 1225개의 칸에다 169개의 작은 네모들을 잠시 뒤에 알려드릴 어떤 규칙에 따라서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것입니다. 만약 두 배치 상황의 엔트로피가 각각 얼마냐고 묻는다면 답은 물론 0입니다: 각 네모들의 배치 상황은 정확하게 지정된 것이라서 지정 상황에 맞는 배치는 단 한 개의 배치(W=1)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엔트로피 $S = {k}_{B}\ln(W)$는 0이 됩니다. 그게 어떤 배치이건 간에 한 개 배치의 엔트로피를 묻는 것은 얼빠진 질문입니다.

대신 내가 위의 두 배치 상황을 각기 다른 규칙에 따라 결정되는 배치 상황들의 모둠(기술적인 용어를 쓰자면 배치 상황들의 “총체(總體, ensemble)”) 안에서 아무렇게나 뽑았다는 점에 주목해 봅시다. 이 규칙들에 대해서 아직까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 됩니다. 어떤 모둠(pool)이 더 큰가요? 어떤 배치가 더 큰 — 즉, 더 엔트로피가 높은 — 모둠에 속한 배치 상황들을 대표하나요? 더 읽어 나가기에 앞서 맞건 그르건 한 번 답해 봅시다.[5]

나는 이 질문을 수백명의 사람들—보통 사람, 물리학 학생, 물리학 교사, 물리학 연구자—에게 해보았는데 대부분은 아래 배치가 엔트로피가 더 큰 모둠의 전형적인 배치 상황이라고 답했습니다. 아래의 배치가 부드럽고(smooth), 고르고(uniform), 특색이 없다는(featureless) 것입니다. 위의 배치는 어떤 패턴이 떠오르는 불규칙성을 갖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나는 왼쪽 윗 부분에서 공을 잡으려는 개가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내 학생 중 하나는 오른쪽 아래에 SF영화 스타트렉에 나오는 엔터프라이즈호가 있다고 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위쪽 절반의 가운데에서 반짝이는 빈 공간을 보았습니다.

이제 규칙들을 공개할 때가 되었군요. 위쪽의 배치를 만드는 데에는 1225개 자리에 169개 네모를 아무런 규칙없이 아무렇게나 흩뿌리리라는 규칙을 가진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했습니다. 유일한 제약은 한 자리에 네모 하나씩만 놓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래의 배치를 만드는 데에는 제약 사항 한 가지를 추가했습니다. 네모가 놓인 자리 바로 옆에는 네모를 놓을 수 없다는 규칙입니다. 위의 배치가 더 수가 많은 모둠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따라서 위의 배치가 더 엔트로피가 큰 모둠을 대표하는 사례입니다. (아래의 배치는 물론 양 쪽 모둠 모두에 속합니다.)

네모들이 나란히 놓일 수 없다는 금지 규칙이 아래의 배치를 부드럽고, 단조로우며, (여러 사람에게) “높은 엔트로피”의 모양으로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위의 배치는 빈 곳과 뭉친 곳, 그리고 불규칙성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아무렇게나 뽑은 배치 하나에는 변칙성도 제멋대로 담길 수밖에 없습니다: 첫 번째 뽑은 배치가 왼쪽 윗 부분에 빈 곳을 가지고 있다면, 두 번째 뽑은 배치는 왼쪽 아래에, 세 번째는 가운데에 빈 곳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평균적인 배치는 고를 겁니다. 하지만 각각의 배치 상황은 보통 쏠려 있게 마련이고, 각각 서로 다른 방식으로 쏠려 있을 겁니다.[6]

이것이 평균의 성격입니다. 평균 키를 가진 사람들은 극히 드뭅니다: 대부분 평균 키보다 크거나 작습니다. 오직 평균적인 사람들에게만 맞는 옷을 만드는 업체가 있다면 바로 파산하고 말 겁니다.[7] 대부분의 상황에서 평균은 전형적이지 않습니다.

“무질서”는 무엇을 뜻하나?

“엔트로피는 무질서와 유사한 것이다”라는 주장은 또 다른 이유로도 옳지 않습니다: “무질서(disorder)”라는 말은 모호하기 짝이 없습니다. 엔트로피는 정확하고, 측정할 수 있는 양입니다.[8] 무질서는 정하기 나름입니다. 이 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잭슨 폴락(Jackson Pollock)[9]의 1949년 작품 34번 그림을 아래에 소개합니다. 

<그림 3> 잭슨 폴락의 34번

1950년, 미술 평론가 파커 타일러(Parker Tyler)는 34번이 “의도된 무질서(a deliberate disorder)”를 보여준다고 썼습니다[10]. 그로부터 6년 후에 미술 평론가 레이 파울너(Ray Faulkner)[11]는 34번이 “강력한 기본 구조”를 보여준다고 썼습니다. 만약 같은 존재물이 “무질서”하기도 하고 “구조 잡혀” 있기도 하다면, “무질서”라는 용어의 쓸모는 그렇게 크지 않을 겁니다.

엔트로피는 무질서: 과학계에서의 전개 과정

엔트로피가 언제나 무질서인 것은 아니라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충분히 납득시켰기를 바라지만, 여기에는 다음의 질문이 늘 따라옵니다: 왜 그토록 많은 과학자들이 엔트로피와 무질서가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걸까요?

이 역사적 질문은 (대부분의 역사적 질문들이 그러하듯이) 복잡하지만 꽤나 직접적으로 윤곽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12]: 엔트로피 개념은 1824년부터 1865년 사이 열역학을 통해서 생겨났습니다; 무질서에 대한 관념은 기체 운동 이론을 통해서 1867년부터 1872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형성되었습니다; 이 둘은 1882년 헤르만 폰 헬름홀츠(Hermann von Helmholtz)에 의해서 기체를 설명하는 맥락 가운데에서 결합되었습니다. — 그리고 외력을 받지 않는 기체의 경우 평형 상태는 정말 고르기 때문에 무질서로서의 엔트로피라는 은유가 잘 들어맞습니다.[13] (첫 절에 나왔던 “엔트로피가 무질서가 아닌” 상황들 모두는 기체가 아니거나 외력을 받는 기체인 경우입니다.) 이 절에서는 이 윤곽에 살을 붙여보겠습니다.

오늘날의 열역학 과학은 사디 카르노(Sadi Carnot)의 1824년 책 ⟪불의 동력에 관한 고찰(Reflections on the Motive Power of Fire⟫에 의하여 만들어졌습니다.[14] 카르노는 이 책을 28세에 출판했습니다; 그는 후속 저작을 내지 않은 채로 8년 후 콜레라에 걸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카르노의 기초 위에 건물을 짓는 일은 루돌프 클라우지우스(Rudolf Clausius)에게 떨어졌습니다. 그는 1850년부터 1865년까지 9개의 논문을 연속해서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들에서 클라우지우스는 뒤로 갈수록 정확성을 더해가며 열과 온도의 비(ratio)의 중요성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이 열/온도 비를 “변환-값(transformation-value)”라고 부르거나 “보상되지 않은 변환(uncompensated transformation)”, 또는 “변환되는 내용(transformational content)”라고 불렀습니다. 마침내, 1865년 “나는 변환을 뜻하는 희랍어 τροπη를 따라서 S라는 양을 대상의 엔트로피라고 부르자고 제안한다(I propose to call the magnitude S the entropy of the body, from the Greek word τροπη, transformation)”라고 쓰면서 그는 “엔트로피”라는 용어를 만들어내었습니다.[15] 이 9개 논문 어디에도 “무질서”와 “혼돈”이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기체의 운동 이론이 막 개발되고 있을 때였습니다.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의 1872년 논문 “기체 분자들 사이의 열적 평형에 대한 후속 연구”가 이정표였습니다.[16] 이 논문은 표본의 동질성(homogeneity)과 등방성(isotropy)을 예측했다기보다는 가정했는데, 이것은 외력이 없는 기체에 적합했습니다. 논문은 “엔트로피”[17]나 “무질서”의 용어를 쓰지 않고, 분자들이 “빠르고 불규칙한 운동 상태(rapid irregular motion)”에 있다(그리고 “최고로 활발한 운동 상태(the liveliest motion)”에 있다)고 말하는데,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볼츠만의 양 H를 결론으로 제시합니다. “원자 운동의 결과로 증가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잘 알려진 ∫??/?의 값에 특정 상수를 곱한 양과 일치하는 어떤 양이 언제나 존재한다”.

헤르만 폰 헬름홀츠는 1882년 논문[18]에서 다음과 같이 적으며 이 두 흐름을 결합하였습니다.

반대로, 질서없는 운동(unordered; [ungeordnete] motion)이란 각각의 개별 입자들의 운동이 다른 이웃 입자들의 운동과 아무런 유사성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과 같다. 우리는 열-운동(heat-motion)이 이런 종류의 운동이라고 믿을만한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고, 이러한 의미에서 엔트로피의 크기는 무질서(disorder; unordnung)의 척도로 특징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명시적으로 엔트로피를 무질서에 비유한 첫 번째 논문일 겁니다. 논문은 “어떤 특별한 의미에서”만 그러하다고 했는데, 그것은 이 유비가 적합한 외력이 없는 기체의 맥락에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찾아낸 엔트로피와 무질서 사이의 유비에 대한 첫 번째 비판은 사티엔드라 레이(Satyendra Ray)의 1934년 논문 “고체-기체, — 엔트로피를 무질서도로 정의하는 것에 대한 비판(The Solid-Gas, — A Criticism of the Definition of Entropy as Disorderliness”[19]입니다. 레이는 내가 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 유비를 비판합니다: 두 가지 상이 공존하는 경우의 엔트로피를 보는 겁니다. (그는 기름과 포도주 식초 보다는 기체와 고체 두 가지 상을 이용합니다만 어떤 경우나 결론은 같습니다.) 1934년 이래로 이 비판은 다양한 관점에서 여러 논자들에 의해 확장되어 왔습니다.[20][21]

엔트로피는 무질서: 대중적인 인상

마크 톰슨(Mark Thompson)의 <더 뉴요커> 2015년 2월 19일자 만화는 엄청나게 어지러진 아이 방을 보고 화난 어머니를 그리고 있습니다. 아이는 이렇게 해명합니다: “엔트로피 탓이에요.” 이 만화는 “엔트로피”라는 낱말이 이제 일상어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당신이 <더 뉴요커>에서 “쌍극자 모멘트(dipole moment)”라는 말을 볼 일은 없을 겁니다. 이 개념이 엔트로피보다 훨씬 더 단순한 개념임에도 말입니다.

<옮긴이 삽입 그림 1> 마크 톰슨의 <더 뉴요커> 2015년 2월 19일자 만화

언제, 그리고 어떻게 “엔트로피”라는 전문적인 물리학 용어가 더 넓은 세상에서 매일 쓰는 낱말로 탈바꿈했을까요? 이 질문은 앞 절의 질문보다 더 어렵습니다. 어떻게 “엔트로피는 무질서”라는 관념이 과학계의 인식 가운데 등장했는지를 알아보고자 할 때는 방대한 과학 문헌을 살펴보면 됩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인식 가운데에 그러한 연관 관계가 어떻게 떠올랐는지를 알아보려면 훨씬 더 광범위한 대중 문헌들을 찾아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컴퓨터로 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구글 N그램 뷰어(The Google Ngram Viewer)를 쓰면 구글 북스(Google Books) 전산화 프로젝트로 얻어진 방대한 양의 문헌들 가운데에서 “엔트로피는 무질서”와 같은 특정 문구가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림 4>는 이에 대한 몇 가지 검색 결과를 보여주는데, 1915년부터 1930년 무렵 어떤 시점에 엔트로피와 무질서 사이의 연관성이 대중적인 인식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그러한 연계에 불을 지폈을까요? 그 시기 동안 여러 가지 중요한 경향과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1차 세계대전; 신여성; 무성 영화; 미국 국립 공원 관리청의 설립;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이 중 어떤 사건도 엔트로피와 무질서 사이의 광범위한 연계를 촉진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 동안의 한 가지 사건은 그 범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림 4> “엔트로피”는 언제 일상용어가 되었을까?
<옮긴이 삽입 그림 2> 2021년 4월 14일 현재 entropy * disorder 문구로 다시 검색해본 Ngram Viewer 결과

1918년, 헨리 아담스의 자서전 ⟪헨리 아담스의 교육⟫[22]이 그의 사후에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의 영향력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1919년 전기 문학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고, 1999년 4월에는 미국의 유명한 고전 출판사 모던 라이브러리(Modern Library)의 영어로 쓴 20세기 최고 비소설 문헌으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과 엔트로피에 대한 대중적 인상 간의 연관성을 말하기 전에 약간의 맥락을 덧붙여 보겠습니다.

존 아담스(John Adams, 1735–1826)는 미국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하고, 미합중국 2대 대통령을 역임한 사람으로서 다음과 같은 의미 심장한 말을 남긴 바 있습니다. “사실은 아주 고집스런 어떤 것입니다; 우리의 바램이 무엇이건, 우리가 어떤 데로 기울어져있건, 우리의 감정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건, 그것들은 사실의 상태를 바꿀 수 없습니다.”[23] 그는 미국의 6대 대통령인 존 퀸시 아담스(John Quincy Adams)의 아버지이기도 했습니다. 존 퀸시 아담스는 미국 남북 전쟁 시기 영국 주재 미국 대사를 지냈던 찰스 프랜시스 아담스(Charles Francis Adams, 1807-1886)의 아버지였고, 찰스 프랜시스 아담스는 언론인이자, 역사가, 소설가이자 여기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자서전의 저자, 헨리 브룩스 아담스(Henry Brooks Adams, 1838–1918)의 아버지였습니다.

이 유명한 책은 대체 어떻게 엔트로피가 항상 무질서를 반영한다는 오개념을 부추겼을까요? 이 책은 “엔트로피”라는 말과 “열역학”이라는 낱말은 쓰지도 않았고, “무질서”라는 말을 두 번 썼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기체 운동 이론”이라는 말을 5번 쓰고, “무정부 상태(anarchy)”와 “혼돈(chaos)”라는 말을 빈번하게 씁니다. 예를 들어, 31장 “과학의 문법”에서는 “기체 운동 이론은 종국적인 혼돈에 대한 신념어린 주장(assertion)이다. 쉽게 풀어 말하자면, 혼돈은 자연의 법칙이었고, 질서는 인간의 꿈이었다”[24]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앞에서 과학의 영역 안에서 본 바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아담스는 기체 운동 이론에 관한 정확한 관찰에서 시작하여 자연의 모든 것들 — 결정체, 액체, 자성체, 초전도체, 액정, 합금, 허리케인, 나무, 식물, 별, 샐러드 드레싱 등 — 에 관한 부정확한 결론으로 끝맺습니다.

특정한 문장을 더 말하기보다 헨리 아담스의 이 책의 전반적인 논조를 짚어보자면, 만물은 쇠락의 길을 가고 있고, 이것은 자연이 원래 그렇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조는 “엔트로피”와 “나쁜 것” 사이에 명확한 연관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 아담스의 다른 저장에 훨씬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그의 1909년 에세이 “역사 단계의 규칙(The Rule of Phase Applied to History)”[25]은 역사의 “가파른 곡선” 전반에 작용하는 “자연의 동력”이 “인류 지성(Thought)을 1921년 현재의 가능성의 한계로 인도하는” 바를 계산하기 위해서 깁스의 상규칙(Gibb’s phase rule)을 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1910년 “미국 역사 교사들에게 보내는 편지”[26]에서는 “엔트로피 법칙이 우주 뿐만 아니라 신과 인류 모두를 아우른다고 생각지 않는다면 물리학자들은 물리학자이기를 그만두어야 한다”라고, “엔트로피 법칙은 정신적인 것을 포함하는 모든 에너지들에게 이 법칙에 완전 복속되는 노예 상태를 부과한다”라고 주장합니다.

결론적으로, 엔트로피가 무질서나 고르게 뒤섞인 상태의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이 잘 전달되었기 바랍니다. 엔트로피와 무질서 간의 관계 짓기는 볼츠만과 헬름홀츠 같은 과학자들이 기체를 설명하면서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적절했습니다. 이 연관 관계는 헨리 아담스에 의하여 부적절하게 대중적인 인상 안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보다 앞에도 이러한 투사들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아담스는 엔트로피 무질서론의 대표적인 투사였음이 분명하고, 나는 그가 쐐기돌을 내리 꽂아 넣은 장본인이었다고 혐의를 제기합니다.

말에 대해 곱씹어 생각하기

낱말은 대부분 하나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run”이라는 단어를 예로 들어봅시다. “마라톤 선수는 42.195 km를 뛴다(run)”라는 문장에서는 동사입니다. “그 좁은 길(the narrow run)은 그림 같은 폭포수 마냥 숲을 관통하며 굴러 떨어지듯 이어지고 있다”라는 문장에서는 길을 뜻하는 명사입니다. “샐러드 드레싱이 다 떨어졌어(run out of). 그래서 나는 식료품점으로 달려가게(run) 될 것이고, 그러면 드레싱을 더 사느라 청구서 빚이 쌓이겠지(run up).”라는 문장에서는 세 번 등장해서 세 번 모두 다른 의미로 쓰입니다.

“Force”라는 단어는 또 다른 예입니다. 옥스포드 영어 사전은 명사 “force”의 36가지 정의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130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가장 오래된 사용례에서는 “군사적인 세기나 능력(military strength or power)”의 뜻을 가졌습니다. 이로부터 3세기 반이 흘러서 1665년 토마스 샐루스베리(Thomas Salusbury)가 갈릴레오의 저작을 번역할 때 이 단어를 쓰기 전까지 “force”는 물리학적인 의미를 갖지 못했습니다.

“Force”를 물리학적인 의미로 보면, “세기나 능력”이라는 뜻은 전혀 들어맞지 않습니다: 힘(force)은 뉴턴으로 재고; 세기(strength)는 뉴턴/미터²으로 값을 매기며; 능력(power)은 뉴턴·미터/초로 측정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리학적 맥락 안에서 “힘은 세기나 능력을 의미한다”라고 말한다면 기괴한 차원 오류를 범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군사적인 의미에서 “힘은 세기나 능력을 의미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완벽하게 사리에 맞습니다.

“Force”라는 단어는 일상적 용법으로부터 멀리 떠나와서 전문적인 물리학 용어가 되었습니다. 반면 “엔트로피”는 반대 방향으로 떠나가는 여행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 용어가 1865년 클라우지우스에 의해 정확하고, 전문적이며, 정량적인 의미를 갖는 용어로 만들어졌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1910년에는 헨리 아담스가 “엔트로피 법칙은 정신적인 것을 포함한 모든 에너지들에 노예 상태를 부과한다”라고 쓰고 있었습니다. (이 문장으로 아담스가 무엇을 뜻하려 했던 것인지 제게는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열/온도의 비를 포함하는 어떤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만큼은 명백합니다.)

물리학적 의미에서 “엔트로피” 개념은 “바람직하지 않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여러 문헌에서 다음과 같은 진술을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엔트로피는 아이스크림이 녹고, 사람들이 죽는 이유이다. 차가 녹슬고 숲이 불타는 이유이다.”[27][28] 물리학적 의미에서 “엔트로피”라는 말은 “부도덕성(immorality)”나 “사악함(wickedness)”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문헌들에서 아래와 같은 진술을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애비(ABBY)에게: …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할 때, 좋은 것을 차지하는 이가 부패한 자가 아니고 썩은 것을 차지하는 이가 좋은 자라는 것은 슬픈 사실이다. 과학적인 언어의 맥락에 보자면, 모든 존재물들은 가장 낮은 에너지 수준을 찾는다. 이것은 엔트로피 개념과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사실이지 이론이 아니다. –S.A.S.[29][30]

물리학적 의미에서 “엔트로피”라는 말은 “나쁨(badness)”이나 “밋밋하여 재미없음(blandness)”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문헌들에서 보게 될 겁니다. “‘스타스키와 허치’에서부터 ‘해저드 마을의 듀크 가족’까지 70년대의 싸구려 드라마를 다시 만드는 것은 모두 영화 역학의 제2법칙을 따르는 것 같다: 다시 만들기(remake)는 엔트로피로 알려진 곱게 뒤섞여 아무 것도 생동하지 않은 채 죽은 회색 지대(state of inert uniformity)를 향해 흘러간다.”[31]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엉뚱하게 오해되고 있지만 강력한 흐름들까지 거론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창조의 흐름과 쇠락(destruction)의 흐름 같은 것 말이죠. 어떤 사람들은 쇠락의 흐름을 “엔트로피의 힘(forces of entropy)”이라고 부름으로써 세련된 척 하는 걸 좋아합니다.[32]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이 두 단어를 물리학적 의미에서 쓰는 것이 아니라는 건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힘은 줄/미터 단위로 값을 갖는 반면, 엔트로피는 줄/켈빈 단위의 값을 갖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물리학 교사들이지 언어 경찰 요원은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힘”이란 낱말을 “세기”나 “능력”을 뜻하는 데 쓰는 걸 막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학생들에게 그것이 물리학에서의 “force” 개념의 의미가 아니라는 점은 경고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이 “엔트로피”라는 단어를 “무질서”나 “쇠락” 또는 “도덕적 부패”를 뜻하기 위해 쓰는 것을 막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학생들에게 이것이 물리학의 “엔트로피” 개념의 의미가 아니라는 점을 경고해줄 수 있습니다.


각주

  1. 여기에서 “고르다(uniform)”는 말은 “거시적 수준에서 고르다(uniform on a macroscopic scale)”는 의미입니다. 모든 물질의 모든 상(phase)은 물론 원자 수준에서는 낟알 무리 모양(granular)입니다.
  2. Todd P. Silverstein, “The real reason why oil and water don’t mix,” J. Chem. Educ. 75, 116–118 (1998). 
  3. Thomas A. Moore and Daniel V. Schroeder, “A different approach to introducing statistical mechanics,” Am. J. Phys. 65, 26–36 (Jan. 1997). 
  4. D. F. Styer, “Insight into entropy,” Am. J. Phys. 68, 1090–1096 (Dec. 2000). 
  5. “휠러(Wheeler)의 첫 번째 도덕 원칙. … 모든 수수께끼를 맞춰 보라. 용기: 당신말고 누구도 당신이 생각한 답을 알 필요가 없다. 따라서 본능에 따라 재빠르게 답을 생각하라. 어림짐작한 답이 맞았다면 이 본능은 더 세진다. 추측한 답이 틀렸다면 놀라움이 뒤따를 것이다.” Edwin F. Taylor and John Archibald Wheeler, Spacetime Physics, 1st ed. (W. H. Freeman and Company, San Francisco, 1963) p. 60; 2nd ed. (1992), p. 20. 
  6. 이 결론은 “많은 수 법칙(the law of large numbers)”이나 “열역학적 한계(the thermodynamic limit)”를 떠올린다고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백만 배 많은 네모들을 백만 배 많은 자리에 흩뿌리는 경우, <그림 2>의 배치들은 전체 자리들 중 백만 번째 자리를 포함한 부분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7. 더 극단적인 예는 가족 구성원수입니다. 2010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평균 가족은 3.14명–소수점 두 자리 숫자까지의 원주율 π와 같은 숫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3.14명의 식구로 된 가족은 없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음 문헌의 <표 2>를 보기 바랍니다. Daphne Lofquist, Terry Lugaila, Martin O’Connell, and Sarah Feliz, “Households and Families: 2010,” U.S. Census Bureau, issued April 2012, at http://www.census.gov/prod/cen2010/briefs/c2010br-14.pdf
  8. 다음의 문헌이 예가 됩니다. Ihsan Barin, Thermochemical Data of Pure Substances (VCH Publishers, Weinheim, Germany, 1995). 
  9. Richard P. Taylor, Adam P. Micolich, and David Jonas, “Frac- tal analysis of Pollock’s drip paintings,” Nat. 399, 422 (June 3, 1999). 
  10. Parker Tyler, “Jackson Pollock: The infinite labyrinth,” Magazine of Art 43 (3), 92–93 (March 1950). 
  11. Ray Nelson Faulkner, Art Today: An Introduction to the Fine and Functional Arts (Holt, Rinehart and Winston, New York, 1956), p. 433. 
  12. Stephen G. Brush, The Kind of Motion We Call Heat (North-Holland, Amsterdam, 1976).
  13. “무질서”라는 단어의 모호함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평형 상태의 기체는 무질서하다”라는 문구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외력이 없는 조건의 이상 기체를 생각합시다: 원자는 용기 안의 어느 위치에나 똑같은 정도로 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 원자의 자리 차지는 다른 원자와 관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원자의 속력(velocity)은 어느 방향으로나 비슷합니다. 그러나 원자의 속도는 “똑같이 어떤 값이나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원자가 ?와 ? + ?? 사이의 속도를 가질 개연성은 맥스웰-볼츠만 분포에 의해 주어집니다. $$\sqrt{\frac{2}{\pi}\left( \frac{m}{k_{B}T} \right)^{3}}v^{2}e^{\frac{-mv^{2}}{2{k}_{B}T}}dv$$ 대조적으로, 외력이 없는 조건의 실제 기체의 경우, 원자는 용기의 어느 자리건 같은 확률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만, 원자와 원자는 서로 상관되어 있습니다. (예로 다음의 문헌을 보세요. David Chandler, Introduction to Modern Statistical Mechanics [Oxford University Press, New York, 1987], Chap. 7.)  속력은 어느 방면으로건 같지만, 속도의 개연성은 (에너지는 운동에너지만 있다는 가정에서 유도된) 맥스웰-볼츠만 분포를 따르지 않습니다.
  14. Sadi Carnot, Réflexions sur la Puissance Motrice du Feu (Chez Bachelier, Libraire, Paris, 1824).
  15. Rudolf Clausius, “Ueber verschiedene für die Anwendung bequeme Formen der Hauptgleichungen der mechanischen Wärmetheorie,” read at the Philosophical Society of Zürich on April 24, 1865. (Translated by John Tyndall as “On Several Convenient Forms of the Fundamental Equations of the Me- chanical Theory of Heat” in The Mechanical Theory of Heat, with its Applications to the Steam-Engine and to the Physical Properties of Bodies [John Van Voorst, London, 1867], pp. 327–374, at p. 357.)
  16. Ludwig Boltzmann, “Weitere Studien über das Wärmegleich- gewicht unter Gasmolekülen,” Sitzungsberichte der Kaiserli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Vienna, 66, 275–370 (1872). (Translated by Stephen G. Brush as “Further Studies on the Thermal Equilibrium of Gas Molecules” in The Kinetic Theory of Gases: An Anthology of Classic Papers with Historical Com- mentary [Imperial College Press, London, 2003], pp. 262–349; excerpts quoted here appear on pp. 262, 263, and 291.)
  17. 아마도 그 당시 클라우지우스와 우선권 다툼(priority quarrel)에 얽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다음 논문을 참고하세요. Giovanni Gallavotti, “Ergodicity: A historical perspective,” Eur. Phys. J. H 41, 181–259 (2016). 
  18. Hermann von Helmholtz, “Die Thermodynamik chemischer Vorgänge,” Sitzungsberichten der Akademie der Wissenschaften zu Berlin, 1, 23 (Feb. 2, 1882). (Translated as “The Thermodynamics of Chemical Processes.” See Ralph Baierlein and Clay- ton Gearhart, “The disorder metaphor,” Am. J. Phys. 71, 103 [Feb. 2003]. See also the translation by E. F. J. Love in Physical Memoirs Selected and Translated from Foreign Sources [Taylor and Francis, London, 1888], pp. 43–62, at p. 56.)
  19. Satyendra Ray, “The solid-gas, – A criticism of the definition of entropy as disorderliness,” Proc. Indian Sci. Congress 21, 166–167 (1934).
  20. Karl K. Darrow, “The concept of entropy,” Am. J. Phys. 12, 183–196 (Aug. 1944). Jeffrey A. Phillips, “The macro and micro of it is that entropy is the spread of energy,” Phys. Teach. 54, 344–347 (Sept. 2016). See the appendix at TPT Online, http://dx.doi.org/10.1119/1.5126822 under the Supplemental tab for 16 related critiques with publication dates between 1944 and 2016. 
  21. R. H. Fowler and E. A. Guggenheim, Statistical Thermodynam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Cambridge, UK, 1939) does not mention disorder at all, but remarks that the related concept of absolute entropy “has caused much confusion and been of very little assistance” (p. 192).
  22. Henry Adams, The Education of Henry Adams (Houghton Miff- lin Company, Boston, 1918).
  23. John Adams, “Statement for the Defense at the Boston Massacre Trial” (Dec. 3-4, 1770), see http://founders.archives.gov/documents/Adams/05-03-02-0001-0004-0016
  24. Reference 22 at p. 451.
  25. Henry Adams, “The Rule of Phase Applied to History,” written Jan. 1, 1909, published on pp. 264–311 of The Degradation of the Democratic Dogma (Macmillan, New York, 1919), excerpts quoted here appear on pp. 302, 305, and 308. 
  26. Henry Adams, “A Letter to American Teachers of History,” written Feb. 16, 1910, published on pp. 134–263 of The Degradation of the Democratic Dogma (Macmillan, New York, 1919), excerpts quoted here appear on pp. 209 and 251. 
  27. Gilbert L. Wedekind, Spiritual Entropy (Xulon Press, Fairfax, VA, 2003), p. 68. 
  28. Using the rusting of iron to illustrate entropy arguments is particularly common and particularly specious. The rust reaction is 4 Fe + 3 O2 → 2 Fe2O3. Anyone can look up the entropy values of iron, oxygen, and iron oxide at room temperature and atmospheric pressure. (See Ref. 8, pp. 675, 1239, and 702.) The entropy of the reactants is 724.6 J/K, the entropy of the products is 174.8 J/K. The rust reaction results in an entropy decrease! Of course, this doesn’t mean that when a car rusts, the entropy of the universe decreases: although the entropy of the iron plus oxygen decreases, the entropy of the surroundings increases by even more. But the same observation holds for the reverse re- action: in a blast furnace, oxygen is stripped from iron oxide to produce elemental iron. In this process, too, the entropy of the universe increases. 
  29. Abigail Van Buren, “Dear Abby: Improving ‘Rotten Apples,’” Los Angeles Times (Aug. 31, 1970), p. C5. 
  30. 이 말은 특히 나에게 해가 되었는데, 고등학교 화학 수업 때 막 엔트로피 개념을 소개받은 직후의 여름에 이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 때에는 엔트로피에 대한 나의 이해가 약했는데, S.A.S.에 의해 이 진술을 읽고 난 후에는 엔트로피을 도무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어떻게 도덕성이 엔트로피 수치 표 상의 항목들과 관계될 수 있을까? 어떻게 도덕성이 줄/켈빈 단위로 측정될 수 있을까? 15살 때의 나는 이 이해의 빈약함이 내가 아니라 S.A.S.에 속한 것이라는 점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31. Alessandra Stanley, “Red Update Alert: Poseidon Goes Belly Up Again,” New York Times (Nov. 18, 2005). 
  32. Editorial Board, “No Justice, No Police,” New York Times (Jan. 6, 2015).

댄 스타이어(Dan Styer)는 오버린 대학 쉬퍼(Schiffer)좌 물리학 교수입니다. ⟪The Strange World of Quantum Mechanics⟫와 ⟪Relativity for the Questioning Mind⟫라는 책을 썼습니다. ⟪Invitation to Quantum Mechanics⟫라는 제목의 대학 2학년 수준의 교과서를 만드는 등의 프로젝트를 하고 있고, 배낭여행으로 미국 50개주 모두를 다 가보려고 애쓰고 있기도 합니다. (Dan.Styer@oberlin.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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