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정의(Climate Justice)란 무엇인가?

이 글은 예일 클라이밋 커넥션스의 기사 “What is ‘climate justice’?”(Daisy Simmons. 2020. 7. 29. Yale Climate Connecitons)를 옮긴 것입니다. 원문은 기사 제목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기후변화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문제이다. 수많은 방식으로 일상생활을 완전히 뒤집어엎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 피해를 동등하게 입는 것은 아니다. 뒤처진 사람들, 공공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폭염이나 혹한, 해수면 상승 등 기후변화의 영향을 항상 더 많이 받아왔다.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는 사회운동이라기 보다는 용어이다. 기후변화가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사람들에게 사회적, 경제적, 의료상의 그리고 기타 좋지않은 영향을 더 많이 미칠 수 있음을 인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후 정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기후변화를 막고 변화된 기후에 적응하는 장기적 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불평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그림 1] “기후변화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문제이다.” 기사 본문 중에서. (출처: Yale Climate Connections)

다음은 기후 정의를 다룰 때 고려해야할 핵심 사항이다.

(1) 기후 정의는 핵심 그룹들이 기후변화의 영향을 차별적으로 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유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 NAACP(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 등 많은 단체들이 시민의 권리와 기후변화를 연결시키고 있다. 유엔은 웹페이지에서 ‘기후 정의’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모두에게 똑같이 혹은 정당하게 기후변화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여자든 남자든, 나이많은 세대든 젊은 세대든.”

“기후변화는 지금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고 있다. 어떤 나라도 어떤 집단도 피해갈 수 없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이,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고통받고 최악의 피해를 당한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흐스

게다가 기후변화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 다수가 그 원인이 되는 이산화탄소를 덜 배출했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한다. 특히 일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주요 오염국가들보다 더 적은 개발국가들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전세계의 젊은 세대들은 현재 지구를 데우고 있는 이산화탄소에 대한 책임이 훨씬 적다.

(2)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은 불평등한 사회적 조건들을 더 불평등하게 악화시킬 수 있다.

소득이 적은 사람들, 유색인, 원주민, 장애가 있는 사람들, 노인이나 아주 어린 아이들, 여성. 이들은 모두 기후재난에 더 취약할 수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재난은 폭풍이나 홍수, 대규모 산불, 폭염, 대기오염, 음식과 물을 구하는 일, 해수면 상승 등 다양하다.

다음은 특정한 집단의 사람들이 어떻게 기후 재난으로 인한 영향을 더 많이 받는지, 피해 복구에 필요한 자원부족 상황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미국호흡기연합(American Lung Association) 등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 사는 유색인들은 대기오염에 노출될 위험이 더 높다.
  • 노인들, 장애가 있는 사람들,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폭염을 견뎌내기 힘들 수 있고, 폭풍이나 대규모 화재가 일어났을 때 안전하게 대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 소득이 적은 사람들은 정부 지원을 받는 주택에 사는 경우가 많고, 이들 주택은 홍수 때 침수가 잦은 지역에 위치(미국)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주택은 단열이 부족하거나 구조가 약하거나 냉방이 안되는 집들이 많아 폭염이나 강력한 폭풍을 견뎌내기 어렵다.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가구들은 홍수나 화재에 대비해 보험을 들기도 어렵고, 재난을 당한 후에 집을 고칠 돈도 없고, 병원에 갈 돈도 없다.
  • 이민자들은 언어 장벽으로 인해 위험에 더 취약하다. 폭풍이나 대규모 들불 등 기후 재난을 알리는 조기 경보를 받지 못할 수 있고, 대피 명령을 제대로 받지 못할 수도 있다.
  • 원주민 공동체 몇몇은 해수면 상승과 가뭄으로 이미 집과 자신들의 동네가 사라지는 것을 봐오고 있다. 빌록시-치티마차-촉토 부족의 땅(Isle de Jean Charles. 루이지애나)은 이미 사라져버렸고, 고지대로 살 곳을 옮기고 있다.
  • 가뭄과 홍수가 길어지면 음식을 공굽하고 분배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사람들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음식을 충분히 못 구할 수도 있다.
  • 오늘을 살고 있는 젊은 세대들 그리고 미래 세대들은 기후변화가 계속 더 악화되어감에 따라 그 영향을 더 심각하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직접적인 건강상의 문제에서부터,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온난화 속도를 낮추기 위해 필요한 재정적 부담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림 2] 빌록시-치티마차-촉토 부족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기후 난민이 되었다. 아일 드 쟝 샤를, 루이지애나.  (출처: The New York Times)

(3) 기후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힘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기후정의연합(Climate Justice Alliance)같은 단체들이 인종, 젠더, 계급 문제를 기후운동의 장의 한가운데에 끌어오려고 애쓰고 있다.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일에 함께 하고 있으며, 먹거리 정의(food justice)와 평등한 이동권 그리고 재난관리에서 시민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과정에서 깨끗한 에너지를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엔과 IPCC도 이러한 기후 정의 문제를 더 많이 강조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2020년 6월 29일자 신문의 헤드라인은 “기후변화는 인종적 정의 문제이기도 하다.”(Climate Change is also a racial justice problem”)였다. 사라 카플란 기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인간의 행위로 교란된 지구에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후변화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부정의하고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경험과 지식 없이는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사라 카플란, 워싱턴 포스트.

기후변화와 기후 정의 문제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중요한 의제로 등장하고 있다. 기후 정의의 개념을 한 가지 방식으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인종 문제, 젠더 문제, 빈부격차 문제 등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운동들과 더불어, 기후 정의는 기후변화로 인해 제기되는 수많은 사안들 중에 점점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번역: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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