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와이드웹과 다이너북: 4.재매개화와 메타매체성 & 5.마무리 글


월드와이드웹과 다이너북

1.여는 글. 2020. 5. 20. 

2.CERN의 꿈과 정보의 소통
   (1)부시 보고서와 유럽 내 과학연구의 통합. (2020. 5. 27.)
   (2)실험데이터의 수집과 컴퓨터의 사용. (2020. 6. 3.)
   (3)인터넷, 월드와이드웹, HTTP. (2020. 6. 10.)
   (4)월드와이드웹과 소통. (2020. 6. 17.)

3.앨런 케이의 다이너북
    (1)미멕스와 PARC. (2020. 6. 17.)
    (2)앨런 케이의 다이너북. (2020. 6.24.) 
    (3)미멕스의 꿈과 전지구적 정보의 연결. (2020. 7. 1.)

4.재매개화와 메타매체성. (2020. 7. 8.)

5.마무리 글. (2020. 7. 8.)


이 글에서는 과학기술과 새로운 문화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기 위하여 월드와이드웹과 랩톱 컴퓨터라는 과학기술적 성과물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전개되었는지 살펴보고, 이러한 새로운 매체가 가져온 사회문화적 변화의 의미를 찾아봅니다. 이를 통해 소통의 연결점과 (하이퍼)텍스트 쓰기의 문제와 매체성 개념을 비판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과학칼럼은 매주 수요일 업로드됩니다.
김재영 (녹색아카데미)


4.재매개화와 메타매체성

다이너북과 월드와이드웹은 얼마만큼 새로운 매체인 것일까? 디지털 수렴은 매체 자체가 소멸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매체가 새로운 방식으로 탈바꿈하면서, 이를 통해 오히려 새로운 문화생산의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볼터와 그루신(Bolter & Grusin 1999)의 재매개화(remediation) 개념이 담아내려는 것이 바로 이러한 매체의 탈바꿈이다. 

볼터와 그루신이 제안한 재매개화의 개념은 모든 매체가 결국은 다른 매체의 재현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재매개화는 매개의 매개(mediation of mediation)이며, 매개와 실재는 분리되지 않는다.

재매개는 대개 재형성(reform)의 방식으로 일어난다. 매개와 실재의 분리불가능성은 곧 무매개성(immediacy)으로 이어진다. 매개의 매개임을 명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매개화를 직접 다룰 수 있게 하는 것이 하이퍼매개성(hypermediacy)이다.

볼터와 그루신이 매체의 전개를 바라보는 시각의 핵심은 흔히 새롭다고 말하는 매체가 사실은 그다지 새롭지 않다는 생각이다. 새로 등장한 매체는 언제나 과거 매체의 흉내를 내면서 개조(re-fashion)하고 개선(improve)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즉

“새로운 매체와 새로운 장르는 과거의 형태를 개조하는 방법을 검토함으로써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Bolter 2000: 62.

가령 비질로(Kathryn Bigelow)의 영화 「이상한 나날들」(1995)에 등장하는 ‘와이어’는 텔레비전보다 조금 더 나은 것이 아니라 그 이상(not like TV only better)이라고 주장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영화보다 더 나을 게 없다(film only better).

[그림 1] 영화 <이상한 나날들>의 만화 버전. 주인공은 SQUID라는 기억장치에 기록된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암거래하던 중, 범죄자들의 기억을 손에 넣으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출처: MyComicShop)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가령 톨킨의 소설을 영화 『반지의 제왕』으로 만든 피터 잭슨이 소설을 곧이곧대로 영화로 만들지 않은 것처럼, 매체는 언제나 과거의 형식을 재매개한다. 

볼터와 그루신에 따르면, 매체의 발전은 투명성(transparency)과 하이퍼매개 사이에서 진동한다. 투명성은 다른 말로 하면 무매개성 또는 직접매개이고, 하이퍼매개는 곧 불투명성이다.

투명성은 매체와 대상이 섞여서 구분하기 힘들 만큼 일치해 가는 것을 가리키며, 하이퍼매개는 반대로 매체와 대상이 명백하게 구분되어 서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가리킨다. 

[그림 2] ‘아센델프트 교회’ 피터 생레담, 1649년. (출처: wikipedia)

“이전의 전자 매체와 인쇄 매체는 우리 문화 속에서 그 지위를 재확인하려 애쓰고 있는 반면, 디지털 매체는 그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 새로운 매체이든 과거의 매체이든 모두가 그 자신과 서로를 다시 만들려는 노력 속에서 직접매개와 하이퍼매개라는 이중의 논리를 요청하고 있다.”

Bolter & Grusin 1999: 5.

볼터와 그루신은 직접성(투명성)과 하이퍼매개는 모두 디지털 미디어의 도입과 더불어 시작된 것이 아니라고 본다. 17세기 화가 생레담(Pieter Saenredam)의 그림, 웨스턴(Edward Weston)의 사진, 선형원근법 등은 모두 컴퓨터 그래픽이나 가상현실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직접성(투명성)에 대한 욕구를 드러내고 있다.

[그림 3] ‘배추 잎’ 에드워드 웨스턴, 1931년. (출처: edward-weston.com)

또한 중세의 그림이 있는 서적이나 17세기 베일리(David Bailly)의 그림, 1910년대의 코니아일랜드 우편엽서 등을 보면 문자와 이미지는 고의로 분리되어 있는데, 이것이 곧 하이퍼매개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볼터가 인정하고 있듯이, 이러한 이분법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는 모더니즘 이론가 그린버그가 환상주의적 회화의 투명성과 현대예술의 반성적 실천 사이에 설정한 이분법, 그리고 매클루언이 꽉 짜여 있는 핫 미디어와 빈 구석이 많은 쿨 미디어를 구분한 것, 그리고 벤야민이 아우라가 있는 예술과 아우라가 없는 예술을 나눈 것과도 상통한다(Bolter 2007: 27).

매클루언은 모든 매체의 ‘내용’은 언제나 또 다른 매체임을 주장한다. 가령 쓰기의 내용은 말하기이고, 이것은 단어가 인쇄의 내용이며, 인쇄가 전보의 내용인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McLuhan 1964: 23-24).

[그림 4] 코니 아일랜드 우편엽서. (출처: Westland.net)

볼터는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 HCI)의 전문가들은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를 인지과학이나 사회과학과 연관시키려 한다. 언론정보학 배경의 연구자들은 경험적 또는 이론적인 접근을 전통적인 매스미디어의 관점에서 분석하려 한다.

문학사나 예술사의 인문학자들은 새로운 매체를 논의하는 데 포스트모던 이론을 끌어들인다고 평가한다(Bolter 2007:  28). 결국 자신들이 재매개를 내세운 것은 이런 모든 접근을 아우르겠다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려던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볼터와 그루신은 새로운 매체가 어떤 점에서 새롭다고 말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나중의 매체가 먼저의 매체를 흉내 내면서 개조하는 방식에서의 새로움이다(Grusin 2004: 17). 이렇게 개조하는 방식에서의 새로움은 근본적인 새로움이 아니다. 볼터에 따르면,

“많은 뉴미디어 광신자들은 모더니즘 미학이론으로부터 본질주의와 절대적 독창성의 가정을 물려받았다. 이들은 모든 매체가 본질적인 특징들의 유일한 집합으로 구성되며, 디자이너의 과제는 ‘매체를 정의하게’ 될 인공물을 창조함으로써 이러한 특징들을 개척하는 것이라고 가정한다.”

Bolter 2007:  25.

결국 볼터와 그루신이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려던 것은 바로 그러한 본질주의적인 가정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매체는 새롭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들의 주된 관심은 컴퓨터 그래픽이나 월드와이드웹 같은 비주얼 기술이다. 이런 새로운 매체들은 이제까지의 매체들(회화, 사진, 영화, 텔레비전, 인쇄)과 꼭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다른 매체의 개조되고 개선된 판본으로 드러낸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모든 매체들은 다른 매체와 고립된 채 문화적 작품이 되는 일이 없고, 사회적 및 경제적 힘으로부터 분리되어 작동하지도 않는다. 새로운 매체가 새로운 것은 과거의 매체를 개조하는 특정의 방식 그리고 과거의 매체가 새로운 매체의 도전에 직면하여 스스로를 개조하는 특정의 방식에 있다.

재매개화 개념에 대해 비판적인 마노비치는 디지털 매체의 특성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Manovich 2001).

  • 첫째, 디지털 매체는 수치적으로 재현된다. 뉴미디어의 대상은 수학적으로 기술할 수 있으며, 조작할 수 있다. 매체는 프로그램화할 수 있다.
  • 둘째, 디지털 매체는 모듈성을 보인다. 즉 뉴미디어의 대상은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요소들로 이뤄진다.
  • 셋째, 디지털 매체는 자동화할 수 있다.
  • 넷째, 디지털 매체는 가변성을 지닌다. 뉴미디어의 대상은 하나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무한한 판본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동일한 복사본 대신 많은 다른 판본들을 발생시킬 수 있다.
  • 다섯째, 디지털 매체는 문화적 층위의 약호와 컴퓨터 층위의 코드(데이터) 사이의 트랜스코드화(transcoding)의 특징을 보인다. 

마노비치에 따르면, 디지털 미디어는 수치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언제나 상호변환될 수 있는 가변성을 지닌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의미의 재매개화에 불가한 것은 아니다. 또한 매체들 사이의 차이가 사라져 통일되어 버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디지털 수렴의 다음 단계로서 새로운 매체가 창출되면 이를 통해 새로운 단계의 디지털 발산이 마련된다고 볼 수 있다.

키틀러는 디지털 매체에서 나타나는 매체간 특성의 붕괴를 잘 지적하고 있다. 

“정보와 채널의 일반적인 디지털화는 개별적인 미디어들 사이의 차이를 지워버린다. 컴퓨터에서 모든 것은 숫자가 되어 버린다. 즉 이미지도 없고 소리도 없고 단어도 없는 양이 된다. 광섬유망이 예전에는 분리되어 있었던 데이터 흐름을 표준화된 일련의 숫자들로 환원시킨다면, 그 어떤 매체도 다른 매체로 번역될 수 있다. 숫자가 있으면 불가능한 것은 없다. 변조, 변형, 동조; 지연, 기억, 전위; 스크램블링, 스캐닝, 매핑. 디지털의 기반 위에 있는 모든 미디어의 총체적 연결은 매체 자체의 개념을 지워버린다.”

Kittler 1987[1999]: 1-2.

키틀러에 따르면, 디지털화를 통해 매체 각각의 고유한 특성의 벽이 무너진다. 컴퓨터가 야기한 디지털 수렴의 문제는 상호매체성의 의미 규정이라는 문제와 직접 맞닿아 있다. 우리가 이제까지 논의해 온 바, 랩톱의 과학학적 연구를 바탕에 둔 고찰은 재매개화와 상호매체성 개념의 비판적 확장에 디딤돌이 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케이와 골드버그가 1970년대에 상상했던 다이너북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마노비치는 “다이너북에서 가장 중심적인 관념은 시뮬레이션”이라는 케이와 골드버그의 서술을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를 보편적인 매체 기계의 가능성으로 해석한다.

즉 다이너북과 같은 새로운 종류의 컴퓨터를 통해 모든 종류의 매체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튜링이 이론적으로 정의한 보편적 튜링 기계는 사실상 매체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케이와 골드버그의 논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보편적 매체 기계의 가능성이 제시되었다는 것이다(Manovich 2007).

[그림 5] 앨런 튜링. 영국의 수학자, 컴퓨터과학자, 논리학자, 암호학자, 철학자이자 이론 생물학자. ‘튜링 기계’를 통해 알고리즘과 컴퓨테이션(computation) 개념을 만들었다. 사진은 1928년 16세 때. (출처: wikipedia)

다이너북은 단순히 군사용이나 전문적인 과학기술자를 위한 계산도구가 아니다. 그 주된 사용자가 어린이로 상정되었고, 무엇보다도 문서 편집(쓰기)과 그림그리기(보기)와 음악의 작곡 및 연주(듣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케이와 골드버그가 메타매체(metamedia)라는 개념을 거론하는 것은 보기ㆍ듣기ㆍ읽기의 통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이너북을 하나씩 갖고 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런 기계가 고안되어 그 어떤 소유자라도 자신의 필요에 맞추어 그 기계의 능력을 만들어 내거나 바꿀 수 있게 된다면, 전혀 새로운 종류의 매체가 창조될 것이다. 그것이 메타매체(metamedia)이며, 그 내용은 기존의 매체와 아직 발명되지 않은 매체의 광범위한 영역이 될 것이다.”

Kay & Goldberg 1977[2003]: 403.

메타매체의 가장 중요한 정의적 특징은 매체가 그 고유의 성격에 머물러 있지 않고 사용자가 무엇인가를 덧붙임에 따라 전혀 새로운 종류의 매체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이는 곧 확장된 의미의 재매개화이며, 매체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이너북은 군사적인 목적이나 과학기술자들의 계산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재매개화의 도구로서의 컴퓨터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새로운 매체를 창출하는 메타매체로서 고안되었던 것이다.

다이너북의 예를 통해 케이나 골드버그 같은 선구자들의 관점을 살펴본다면, 볼터와 그루신이 제안하는 재매개화의 틀은 적어도 랩톱 컴퓨터에는 매끄럽게 적용되지 않음이 분명해진다. 나아가 월드와이드웹의 경우에도 앞에서처럼 구체적인 역사적 전개를 살펴보면 재매개화의 틀은 적합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다이너북과 월드와이드웹이라는 새로운 매체는 단순히 과거 매체의 흉내를 내면서 개조하고 개선한 것이 아니다. 다이너북과 월드와이드웹이 메타매체라는 것은 기존의 매체를 뛰어넘는 전혀 새로운 창조성이 내재해 있다는 의미이다.

5. 마무리 글

이 글에서는 1980년대 말에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소통양식으로 제안된 월드와이드웹이 유럽의 통합된 입자물리학 연구를 위해 설립된 CERN에 뿌리를 두어 만들어져 가는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고, 1970년대 초에 랩톱 컴퓨터의 모델로 제시되었던 다이너북의 역사적 전개를 살펴봄으로써 월드와이드웹과 랩톱 컴퓨터에서 나타나는 메타매체성의 한 측면을 검토하고자 했다. 

CERN은 ‘끝없는 최전선’의 진작을 위해 유럽의 여러 나라가 연합한 기관이었으며, 개별 국가가 할 수 없는 연구가 가능했던 것은 이렇게 국제적인 규모의 연구소를 설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CERN에서 제안된 월드와이드웹은 물리학자들 사이의 통신에 국한되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배니버 부시가 1945년에 제안한 특수한 연구지원기관은 거대과학을 낳았고, 유럽은 CERN이라는 거대규모 연구소를 발족시킴으로써 이에 화답했다. 같은 무렵에 부시가 보여준 미멕스의 꿈은 CERN에서 월드와이드웹의 탄생으로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공동의 지식을 함께 만들어가고자 했던 부시와 버너스-리의 소박한 열망은 점점 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컴퓨터는 처음에 등장할 때 계산기로서 나타났고 주된 용도는 군사적인 것이었으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수치적 표현을 통한 시늉내기(시뮬레이션)이기 때문에 다이너북과 같은 랩톱 컴퓨터의 모델에서 근본적인 상호매체성을 구현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읽을 수 있는 것(텍스트)과 볼 수 있는 것(이미지)과 들을 수 있는 것(소리)이 하나의 매체로 통합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텍스트-이미지-소리의 상호변환가능성과 매체간 특성의 차이가 붕괴되는 현상은 새로운 개념의 메타매체의 가능성으로 연결된다. 메타매체는 단순히 과거의 매체를 시늉내는 것만도 아니고 재매개화하는 것만도 아니라, 사용자의 사용과 확장을 통해 전혀 새로운 매체로 발전할 수 있는 고유한 특징을 지닌다. 

월드와이드웹과 랩톱 컴퓨터의 사회문화적 측면에 대한 더 심도 깊은 연구를 통해 메타매체와 디지털 발산에 대한 의미 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월드와이드웹과 다이너북” 연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 김재영 (2010). “CERN의 월드와이드웹과 앨런 케이의 다이너북: 최초의 랩톱컴퓨터와 메타매체와 소통”, 탈경계인문학. 3(2): 249-289.
  • Bolter, J.D. (2000). “Remediation and the desire for immediacy”, Convergence 6: 62-71.
  • __________ (2007). “Remediation and the language of new media”, Northern Lights 5: 25-37.
  • Bolter, J.D. & Grusin, R. (1999). Remediation: Understanding New Media, The MIT Press.
  • Grusin, R. (2004). “Premediation”, Criticism 46(1): 17–39.
  • Kittler, F. & Ofak, A. (2007). Medien vor den Medien, Fink.
  • Manovich, L. (2001). The Language of new media, The MIT Press.
  • ___________ (2007). “Alan Kay’s universal media machine”, Northern Lights 5: 39-56.
  • McLuhan, M. (1964). 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 New American Library, Times Mirror.
  • 이 글은 녹색아카데미 웹진을 위해 김재영(2010)을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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