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와이드웹과 다이너북: 3-(3)미멕스의 꿈과 전지구적 정보의 연결

월드와이드웹과 다이너북

1.여는 글. 2020. 5. 20. 

2.CERN의 꿈과 정보의 소통
   (1)부시 보고서와 유럽 내 과학연구의 통합. (2020. 5. 27.)
   (2)실험데이터의 수집과 컴퓨터의 사용. (2020. 6. 3.)
   (3)인터넷, 월드와이드웹, HTTP. (2020. 6. 10.)
   (4)월드와이드웹과 소통. (2020. 6. 17.)

3.앨런 케이의 다이너북
    (1)미멕스와 PARC. (2020. 6. 17.)
    (2)앨런 케이의 다이너북. (2020. 6.24.) 
    (3)미멕스의 꿈과 전지구적 정보의 연결. (2020. 7. 1.)

4.재매개화와 메타매체성. (2020. 7. 8.)

5.마무리 글. (2020. 7. 8.)


이 글에서는 과학기술과 새로운 문화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기 위하여 월드와이드웹과 랩톱 컴퓨터라는 과학기술적 성과물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전개되었는지 살펴보고, 이러한 새로운 매체가 가져온 사회문화적 변화의 의미를 찾아봅니다. 이를 통해 소통의 연결점과 (하이퍼)텍스트 쓰기의 문제와 매체성 개념을 비판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과학칼럼은 매주 수요일 업로드됩니다.
김재영 (녹색아카데미)


다이너북의 진정한 역동성은 월드와이드웹과의 결합에서 나올 수 있었다. 월드와이드웹은 매우 국지적인 영역에서만 얻을 수 있었던 정보들을 공간적 한계를 넘어서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을 마련해 주었다. 버너스-리의 의도는 아주 복잡한 정보와 다양한 구동체계를 넘어서는 소통의 방식을 마련하는 것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세계 규모의 정보가 연결된 것은 아니었다. 

월드와이드웹은 무엇보다도 먼저 과학자들에게 대단히 유익한 정보의 장을 열어주었다. 대표적인 예로서 SLAC SPIRES 전자도서관과 arXiv.org의 사례를 살펴보자.

1962년 설립된 미국 스탠포드 선형가속기센터(SLAC, Stanford Linear Accelerator Center)는 독일 가속기연구소(DESY, Deutsches Elektronen-SYnchrotron)와 연합하여 입자물리학 분야의 방대한 자료를 갖춘 도서정보체계를 열었다. 1974년에 시작된 SPIRES(Stanford Public Information REtrieval System)는 컴퓨터를 통해 입자물리학 분야의 주요 프리프린트의 목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림 1] 스탠포드 선형가속기센터. 길이 3.2 km. (출처: wikipedia)

입자물리학 분야에서는 논문이 학술지에 출판되기 전에 프리프린트(preprint)의 형태로 회람되고 있었다. 전 세계의 주요 대학이나 연구소들은 학술지에 실리기에 앞서 초고를 따로 인쇄하여 일련번호를 붙여 관리하는 프리프린트 발행체제를 대개 갖추고 있었다.

도서관들은 프리프린트의 목록을 다른 도서관에 보내 주었고, 목록에 있는 제목을 보고 흥미롭게 여겨지는 논문의 초고를 우송해 달라고 하면, 프리프린트를 보내 주는 식이었다. 프리프린트의 목록 우송도 편지를 통해서였고, 도서관에 초고를 요청하는 것도 편지를 통해서였으며, 최종적으로 프리프린트를 보내 주는 것도 항공우편을 통해서였다. 

SPIRES의 아이디어는 한편에서는 모든 도서관에 발행되는 프리프린트의 사본을 SLAC 도서관으로 보내달라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 목록을 SPIRES를 통해 쉽게 검색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림 2] SPIRES 데이타베이스. 웹사이트 화면 갈무리. (출처: SPIRES)

SPIRES-HEP의 데이터베이스에 처음 올라간 프리프린트 목록은 5천편이 채 안 되었지만, 점점 더 많은 프리프린트가 SLAC 도서관으로 몰려들었다. 1985년 무렵에는 매주 100편 이상의 프리프린트가 우송되었고, 데이터베이스의 목록은 14만 개 이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훌륭한 입자물리학의 데이터베이스를 전 세계의 학자들이 모두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월드와이드웹이 도입되기 전 SLAC SPIRES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직접 스탠포드 선형가속기센터를 방문하여 IBM VM/CMS 컴퓨터의 터미널에 로그인을 하거나, BITNET에 기반을 둔 QSPIRES를 통해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SLAC SPIRES는 1991년 12월 12일에 처음 월드와이드웹을 통해 방대한 네트의 세계에 연결되었다. 이제 입자물리학의 연구자들은 스탠퍼드 선형가속기센터에 가지 않고도 미국 대륙을 가로질러 그리고 대서양을 건너 자신이 속한 연구소의 컴퓨터 터미널을 통해 방대한 프리프린트 목록과 중요한 입자물리학 데이터들을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SLAC SPIRES가 월드와이드웹을 통해 더 넓은 세계로 가게 되었지만, 이는 논문 자체가 아니라 논문의 목록에 지나지 않았다. Memex의 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목록으로 그칠 수 없었다.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을 모아보자는 야심찬 기획이었다면, 1991년 8월에 시작된 arXiv.org는 월드와이드웹 위에 건설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었다.

[그림 3] TeX와 LaTeX 매크로를 이용해 만든 샘플 문서. (출처: wikipedia)

1991년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의 진스파그(Paul Ginsparg)는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많은 훌륭한 논문들이 학술지에 실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심지어 실리지 못하는 상황을 바꾸어 보려는 노력을 시작했다(Ginsparg 1994).

1979년 스탠퍼드 대학의 너쓰(Donald Knuth)가 TeX이라는 과학전문 문서편집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입자물리학 분야에서는 논문을 TeX을 이용하여 작성하는 것이 관례로 확립되어 있었다.

진스파그는 끈이론을 연구하는 동료들을 설득하여 새로 쓴 논문의 TeX 원천파일을 hep-th@xxx.lanl.gov라는 주소로 보내게 했다. 원천파일은 이  논문 아카이브에 자동으로 저장되고, 이 논문을 원하는 사람은 이 아카이브에 요청 메일을 보내면, 자동으로 TeX 파일을 받을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림 4] 초기 arXiv 화면. 1994년. (출처: wikipedia)

처음에는 200명이 안 되는 회원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메일링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여기에 월드와이드웹이 연결되면서,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나오는 논문들(의 프리프린트)을 많은 사람들이 공간적 제약을 넘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진스파그의 노력의 바탕에는 연구결과의 공유에 대한 강한 믿음이 깔려 있었다. 그의 선구적인 노력에 많은 물리학자들이 동조했다. 처음에는 입자물리학 분야에 국한되었던 것이 점차 물리학의 여러 분야로 확대되었고, 실제적으로 물리학의 대부분 영역을 포괄하게 되었다. 여기에 수학과 컴퓨터과학이 동조했고, arXiv.org는 이제 매달 수천편의 논문이 업로드되는 방대한 도서관이 되어가고 있다.

[그림 5] arXiv.org에서 ‘COVID 19’로 검색한 결과. 웹사이트 화면 갈무리. (출처: arXiv.org)

처음 월드와이드웹은 통합적 과학연구의 산실이던 CERN의 물리학자들을 위해 제안되었다. HTTP라는 프로토콜이 만들어진 것은 하이퍼텍스트 서버와 클라이언트들 사이의 광대한 네트워크를 연결함으로써 다양한 컴퓨터 시스템들 사이의 통신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입자물리학 연구를 진작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1994년 말 CERN이 공식적으로 월드와이드웹의 지원을 멈추면서, 월드와이드웹은 오히려 입자물리학이 아닌 다른 영역으로 확장되어 나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새로 출시되는 플랫폼인 Windows 95에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탑재시키기로 한 것은 시대의 흐름을 읽어낸 결정이었다.

놀라운 속도로 월드와이드웹이 생활의 곳곳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관들은 앞을 다투어 자신을 알리는 홈페이지를 만들기 시작했고, 전자통상거래가 갈수록 커져갔다. 이메일은 보통의 편지보다 더 많은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Chun & Keenan 2006). 

1970년대에 앨런 케이가 상상하고 정교한 고안을 제시했던 다이너북의 꿈은 마침내 월드와이드웹과 만나면서 국지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에 머물지 않는, 말 그대로 지구적 규모의 지식의 창고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군대나 과학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린이들을 위해 고안된 다이너북처럼, 월드와이드웹과 만난 랩톱 컴퓨터는 생활 속에서 듣기와 보기와 쓰기(읽기)를 결합하는 새로운 매체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 “4.재매개화와 메타매체성”로 계속됩니다.


참고문헌

  • 김재영 (2010). “CERN의 월드와이드웹과 앨런 케이의 다이너북: 최초의 랩톱컴퓨터와 메타매체와 소통”, 탈경계인문학. 3(2): 249-289.
  • Chun, W.H.K. & Keenan, T. eds. (2006). New media old media: A history and theory reader, Routledge.
  • Ginsparg, P. (1994). “First Steps Towards Electronic Research Communication”, Computers in Physics, Vol.8, No.4, Jul/Aug 1994, p. 390.
  • 이 글은 녹색아카데미 웹진을 위해 김재영(2010)을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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