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선생님을 생각하며

김종철 선생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다들 그러했겠지만 저 역시 며칠 전 비보를 접하고는 잠시 멍한 느낌이었습니다. 직접 만난 적 없는 분의 초상집에 좀처럼 가지 않는 저이지만 선생님 부음에는 빈소라도 찾아가 뵈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선생님 남기신 글 몇 편이라도 찾아 읽는 것이 지성인을 추모하는 방법이겠다 싶어 가득히 쌓여만 있던 ⟪녹색평론⟫들을 뒤적여 봅니다.

제가 처음 ⟪녹색평론⟫을 만난 것은 아마도 90년대 후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창간호가 나온 1991년 11월보다 한참 뒤였습니다. 첫 1년간의 ⟪녹색평론⟫에서 중요한 글들을 추려 담은 ⟪녹색평론선집 1⟫이 제가 처음 손에 쥔 ⟪녹색평론⟫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보았던 책인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더군요. 하는 수 없어 ⟪녹색평론⟫ 홈페이지에 들어가 목차를 보았더니 제가 크게 감명받았던 글들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우리는 결국 모두 형제들이다>라는 제목의 시애틀 추장의 연설, 이반 일리치의 <간디의 오두막>을 읽으며 뭉클한 감동을 받았던 날이 생각나고,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을 여기서 처음 접했다는 사실도 문득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장회익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삶과 온생명⟫이 아니라 여기에 실렸던 <우주생명과 현대인의 암세포적 기능>이란 글이었나 새삼 갸웃하게 되고,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와 천규석 선생님, 제레미 리프킨 등의 이름도 여기에서 처음 본 건가 기억을 더듬게 됩니다. 흐릿한 기억 가운데 무엇이 맞는 것인지 몰라도 시애틀 추장의 지혜로운 이야기를 접하게 된 것은 분명 김종철 선생님 덕분입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는가?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 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다. 사슴, 말, 큰독수리, 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풀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 가족이다.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짐승이 사라져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맺어져 있다. 만물은 마치 한 가족을 맺어주는 피와도 같이 맺어져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생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그물의 한 가닥에 불과하다. 그가 그 그물에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곧 자신에게 하는 짓이다.

⟪녹색평론선집 1⟫ 가운데 <시애틀 추장 연설문> 중에서

이제 김종철 선생님의 ⟪녹색평론⟫ 창간사 <생명의 문화를 위하여>를 열어 봅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지금부터 이십 년이나 삼십 년쯤 후에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라는 묵시록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글은 바로 오늘 2020년을 앞서서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선생님은 소위 ‘환경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아래와 같이 이야기하였습니다.[1]

환경재난이 제기하는 보다 근원적인 물음으로부터 자꾸만 도피한다면, 모처럼 이 위기가 인간의 자기쇄신이나 성숙을 위하여 제공되는 진정한 도전에 성실하게 응답하지 못하는 결과가 될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이 생태학적 재난은 결국 인간이 진보와 발전의 이름 밑에서 이룩해온 이른바 문명, 그 중에서도 특히 서구적 산업문명에 내재한 논리의 필연적인 결과로서의 사회적, 인간적, 자연적 위기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사람이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지구상에서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올바른 방식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할 것을 요구하는 진실로 심오한 철학적, 종교적 문제에 직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녹색평론⟫ 창간사 <생명의 문화를 위하여> 중에서

김종철 선생님 스스로도 그러한 꼬리표가 따라다닌다고 하였지만 제가 생각하는 김종철은 ‘근본주의자’입니다. 발본색원(拔本塞源)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문제’를 공해, 오염의 문제로 보아왔고, 처리하고 정화하면 될 문제로 보았습니다. 물론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조금 더 나아가서 불평등과 불공정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정치적 문제로 보는 사람도 있었고, 이것을 당대의 문제에서 세대간의 문제로까지 더 확장하여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환경재난이 “사회적, 인간적, 자연적 위기”임을 일깨우고, “사람이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지구상에서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올바른 방식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성찰을 요구하는 문제임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김종철 선생님의 노력으로 비로소 하나의 흐름을 이루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절망적인 심정 속에서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기도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망설임 끝에 결국 이 잡지를 내기로 결정한 것은 그것이 크게 가치 있거나 많은 사람들의 필요에 부응할 수 있으리라는 자기도취적인 낙관이 있어서가 아니다. … 우리가 ⟪녹색평론⟫을 구상한 것은 지극히 미약한 정도로나마 우리 자신의 책임감을 표현하고, 거의 비슷한 심정을 느끼고 있는 결코 적지 않을 동시대인들과의 정신적 교류를 희망하면서, 민감한 마음을 지닌 영혼들과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 위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녹색평론⟫ 창간사 <생명의 문화를 위하여> 중에서

그 후 10년 동안 ⟪녹색평론⟫은 많은 사상과 대안, 의제들을 우리 사회에 내밀었습니다. 과학기술, 특히 유기농 운동 및 생명운동과 대척점에 있는 유전자조작과 생명공학 기술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도 자주 등장하였고, 공동체운동, 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 반세계화와 지역자립경제, 소농 중심 유기농업 등등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졌습니다. 그 사이 세계화의 광풍이 불었고, 우루과이 라운드가 있었고, IMF 환란이 있었고, 수평적 정권 교체도 있었습니다. 창간 후 10년이 된 시점에서 어떤 소회를 이야기하셨는지 ⟪녹색평론⟫ 2001년 11-12월 통권 제61호를 펼쳐보았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녹색평론⟫을 통하여 우리가 일관되게 이야기해온 것이 있다면, 그것은 끝없는 성장, 팽창을 내재적인 요건으로 할 수밖에 없는 산업경제, 산업문화가 물러나고, 새로운 차원의 농업중심 사회가 재건되는 것만이 생태적, 사회적 위기와 모순을 벗어나는 유일하게 건강한 길이라는 논리였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이 근본적으로 옳은 것이라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더 가난해지고, 또 평등하게 가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공존공영(共存共榮)이 아니라 공빈공락(共貧共樂)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올바른 방향이라는 것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
그러나,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면, 그 기간은 대부분 거의 절망적으로 농업중심 순환형 사회로의 꿈이 가차없이 깨지는 과정이었다. ‘세계화’의 거센 압력 밑에 사실상 주권을 포기한 정부는 우리 삶의 토대 중의 토대인 농업적 기반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간단히 방기하고, 이 땅을 근본적으로 기업식민지로 전락시키는 데 부심해왔다. 이 나라의 지배 엘리트들은 우리가 땅의 자식들이라는 사실, 우리의 모든 정신적, 물질적 부가 궁극적으로 땅을 공경하고 보살피는 우리의 능력에 있다는 기초적인 사실을 간단히 망각하고, 농사를 이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는 일로 만들어버리는 데 앞장서왔다. 이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이다.

⟪녹색평론⟫ 2001년 11-12월 통권 제61호 <창간 10주년을 맞이하며> 중에서

김종철 선생님을 통하여 90년대 우리 사회는 간디를 재발견하고, 이반 일리치를 재발견하였습니다. 자기파괴적 성장과 풍요를 반성하고, 자발적인 가난의 가치를 재발견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흐름은 흐름을 이루었으되 여전히 미약했고, 미친 듯한 90년대의 세계화 신자유주의 물결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세계를 이끌어갔습니다. 마침내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나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어느모로 보나, 지금 이 세계의 폭력의 주된 원천은 바로 미국적 생활방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 일찍이 간디는 서구문명에 대하여 그것은 ‘문명’이라는 이름에 값할 만한 게 못된다고 일갈한 바 있다. 간디에 의하면, 참다운 문명이란 자발적으로 물욕을 포기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 … 간디는 사람들의 기본욕구의 충족을 위해서는 이 지구는 극히 풍요로운 곳이지만, 탐욕 앞에서 지구는 지극히 결핍된 곳이라는 뜻의 말을 하였다. … 우리가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본뜨고, 그것이 사회발전의 모델이라고 여겨온 미국적 생활방식의 근간에 있는 것은 결국 배타적인 탐욕이다. … 9월 11일의 테러는 테러의 직접적인 동기와 상관없이, 미국뿐만 아니라 오늘의 이른바 문명사회 전체에 대한 하나의 분명한 경고였다.

⟪녹색평론⟫ 2001년 11-12월 통권 제61호 <창간 10주년을 맞이하며> 중에서

그러나 미국은 9/11을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고 2000년대를 이라크 전쟁의 수렁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또 한 편 ⟪녹색평론⟫이 창간 무렵부터 줄곧 경고해왔던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석유문명의 위태로움 역시 2000년대에 또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아무런 반성없이 2000년대 내내 질주하던 미국 중심의 세계는 이윽고 2007년의 석유정점과 2008년 그 결과로 뒤따라온 금융위기로 큰 굉음을 내고 말았습니다. 이 즈음은 ⟪녹색평론⟫이 100호를 내던 때가 됩니다.

사실, 창간 이후 ⟪녹색평론⟫이 줄곧 말해온 ‘고르게 가난한 사회’ 혹은 ‘공생공락의 가난’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생각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 입장을 막론하고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생산력의 증대 혹은 경제성장이라는 것을 인간의 역사적·사회적 진화의 불가결한 전제조건으로 파악하는 한, 전통적 의미에서 좌우의 정치적 이념은 서로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
⟪녹색평론⟫이 계속 말해온 ‘공생공락의 가난’은 결코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적 논리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들은 본질적으로 보다 많은 자본, 기술혁신, 생산성 제고 따위로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관계의 발본적인 변혁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공존공영’이라는 개념을 포함하여, 무릇 모든 형태의 물질적 ‘번영’이라는 개념 자체가 공생의 논리와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는 근본적 인식의 공유일 것이다. 이것은 인간다운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물질적으로 부유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광범위하게 뿌리깊이 퍼져있는 맹목적인 믿음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녹색평론⟫ 2008년 5-6월 통권 제100호 <100호를 내면서> 중에서

김종철 선생님의 시각에서는 좌와 우 모두, 신자유주의 뿐아니라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진보진영도 모두 산업사회의 성장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녹색의 전환을 위해서는, ‘공생’을 위해서는 발전, 성장, 번영, 풍요, 진보, 모두 극복해야 하는 가치였습니다. 이 점에서 탐욕을 버리고, 물욕에 얽매이지 않고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 향할 줄 아는 정신적인 대혁명이야말로 문명의 위기 앞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선생님은 지령 100호에 이르도록 줄곧 이야기해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목소리에 아랑곳하지 않던 산업문명, 석유문명은 2000년대 후반부터 대대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100호 이후 20주년을 맞기까지 김종철 선생님과 ⟪녹색평론⟫은 석유문명의 대위기 앞에서 토건국가로 회귀한 이명박 정부의 가장 저열한 막개발을 줄곧 목도하며 싸워야 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녹색평론⟫이 20여년 동안 가꾸어 온 ‘녹색’의 개념을 저들의 난개발에 분칠을 하는 용도로 훔쳐갔으니 분통이 터지는 시절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색평론⟫은 2009년 무렵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집중적으로 ‘기본소득’ 개념을 소개하는 등 선도적으로 의제를 제기하였지만 상당수의 언론은 입을 다물고 지식인들은 부역을 하며 공공의 것을 아무렇지 않게 팔아 제끼는 더욱 암담한 지경이었습니다. 때문에 20주년 기념호에서는 ⟪녹색평론⟫이 해온 일들을 다시 한 번 깊게 곱새기는 글을 쓰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원래 언론·출판행위란 ‘반역’을 위해 시작된 활동이라는 사실이다. ‘반역’이란 물론 주류의 가치, 즉 지배적인 제도와 관습과 문화를 전면적으로, 뿌리에서부터 의심한다는 뜻이다. 서양에서 출판을 가리키는 말(edition)과 반역행위를 가리키는 말(sedition)이 동일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
⟪녹색평론⟫ 독자들 중에는 ‘평론’이라는 이름에 위화감을 느끼는 이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평론’이라고 굳이 고집해온 까닭이 없지 않다. 그것은 이 잡지 창간의 주요 목적이 ‘저항’에 있었기 때문이다. ‘평론’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상을 상대화하면서 철저히 의심하고, 질문하는 행위, 따라서 근원적인 의미의 저항을 뜻한다. 처음부터 ⟪녹색평론⟫이 의도한 것은 무엇보다도 오늘날 한국사회와 세계 전체가 직면한 위기에 맞서서, 이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올바르게 질문하는 것이었다. 올바른 질문을 통해서만 올바른 방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실로 다양한 의견 ― 현실에 대한 분석과 진단, 해법들이 개진되고 있다. 우리가 묻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분석, 진단, 해법들이 과연 안심하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인 좌우의 이념과 논리를 가지고는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정당하게 설명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다는 판단 밑에서 작업해왔다. …
시급한 것은 경제성장, 생산력 증대, 대량생산/대량소비를 통한 ‘발전’ 혹은 ‘진보’의 추구라는 낡은 공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우리의 생활방식을 자연의 본성과 리듬에 순응하는 순환적인 패턴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요컨대 산업자본주의 이전, 인류의 오랜 생활방식이었던 순환경제 시스템의 복구·재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중요한 것은 재생 불가능한 자원인 지하(地下)자원 ― 원자력을 포함한 ― 에 의존하지 않고, 영구적 지속이 가능한 태양에너지 중심의 지상(地上)자원에 의존하는 생활패턴의 선택이다. …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 더 많은 성장을 통해서 극복한다는 방법은 이미 효력을 상실했다. ‘복지국가’ 시스템을 통한 극복이라는 것도, 그것이 불가피하게 더 많은 성장을 전제로 하는 시스템인 이상, 역시 지속 불가능한 방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산업사회의 주류였던 방법, 즉 대규모 산업시스템 속에서 일자리와 생계를 구하는 것을 그만두고, 소규모 지역 중심, 자립적 생산·생활협동체들을 광범하게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틀 속에서 태양에너지에 기반을 둔 순환경제를 구축하면 되는 것이다.

⟪녹색평론⟫ 2011년 11-12월 통권 제121호 <창간 스무돌을 맞이하며 – 좋은 사회는 어떻게 가능할까> 중에서

김종철 선생님은 ⟪녹색평론⟫ 10주년을 맞아서도, 20주년을 맞아서도 몇 년이나 할 수 있을까 하던 일이 여기까지 왔다고 하셨지만 별 일이 없었다면 여건의 어려움 따위에는 아랑곳없이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2021년 11-12월호에 창간 30주년 기념사를 쓰셨을 겁니다. 물론 창간 30주년 기념사 역시 밝은 심정으로 쓰실 수는 없었겠죠. 어쩌면 30년 전 창간사에서 두려워했던 바로 그 시점에 이르러 보람보다는 참담함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19년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라는 책을 펴낸 뒤 한 강연에서 같은 제목으로 선생님과 ⟪녹색평론⟫의 문제의식을 다시 말씀한 이야기가 2019년 9-10월호에 실렸습니다.

제가 ⟪녹색평론⟫창간사에서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지금부터 20~30년쯤 뒤에는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게 우리들에게 축복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저주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도, 이게 설마 30년 후의 실제 현실이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실로 엄중하게 돼버렸습니다. …
생태위기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삶의 어딘가에 부분적으로 고장이 난 사태가 아니라, 지난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성장을 해온 자본주의 산업문명, 즉 ‘근대문명’의 존립 방식이 총체적으로 빚어낸 재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근대문명 그 자체를 근원적으로 묻는 작업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
지금 근대문명이 벼랑 끝에 이르렀다는 것은 누구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인류가 살아남고, 인간다운 삶이 최소한이나마 유지될 수 있는 상황을 지속시키려면, 근대문명을 넘어서 생태문명을 재창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생태문명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벽은 우리들 뇌리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 고정관념, 즉 역사는 보다 나은 단계로 발전해간다는 이른바 발전사관과 이에 결부된 시대구분입니다. 근대문명의 본질을 정확히 포착하고, 생태문명을 재창조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발전이니 진보니 하는 관념적 장벽부터 깨뜨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역사는 일직선적으로 전개되는 것도 아니고, 어떤 목표를 향해서 발전적으로 나아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냉철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 제가 볼 때, 인간 역사를 굳이 시대적으로 구분해야 한다면, 단순히 ‘비근대’와 ‘근대’로 나눌 수 있을 뿐입니다. … 자연 만물과 사회적 약자들을 오로지 자신의 이기적 욕망 충족의 이용 대상으로만 간주하여 끊임없이 수탈·착취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존립기반 자체를 스스로 허물어뜨리고 있는 자멸적인 체제가 바로 근대문명입니다. 그런 시스템을 오랫동안 ‘문명적’인 것으로 간주해왔다는 사실이야말로, ‘근대인’의 정신상태가 얼마나 정상이 아닌지를 단적으로 알려주는 증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녹색평론⟫ 2019년 9-10월 통권 제168호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 우리는 왜 질문해야 하는가> 중에서

김종철 선생님은 ⟪녹색평론⟫을 통해서 30여년간 근대문명의 지속불가능성과 그 자기파괴적인 속성을 고발하고 나의 내면으로부터 전체적인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대전환을 하자는 이야기를 일관되게 해왔습니다. 또한 그때 그때 중요한 의제를 발굴해서 제시하고, 다양한 대안을 찾아내는 한편, 사회정치적인 실천까지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말부터 선도적으로 제기한 ‘기본소득’ 개념이 그 한 사례이고, 2011년 녹색당 창당 운동에 뛰어든 것도 또 한 가지 사례입니다.

어쩌면 온생명 속의 하나의 낱생명으로서, 그리고 우리가 문명을 통해 이루고 있는 집합적 지성의 한 부분으로서 낱생명 김종철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낸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느 누가 근 30년간 이토록 집요하고 이토록 성실하게 인류의 정신적 도약을 위해 일관된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김종철의 세례를 받은 한 사람으로서, 또 어쩔 수 없이 지식을 탐구하고 전파하고 살을 보태는 것으로 세상에 이바지할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의 먹물로서 저는 제 소임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과 자괴감이 듭니다. 저는 김종철 선생님의 근대문명 진단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는 길이 반드시 ‘소농중심사회’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의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 또한 선생님의 길을 따라서 새로운 길을 깊이 탐구하고 또 다른 갈래의 방향을 정립하려 애를 썼어야 했는데 그러하지 못하였습니다.

생태문명의 재창조란 ‘근대’가 이 세계를 전면적으로 지배하기 이전의 거의 모든 토착적 혹은 전통적인 삶의 복구를 통해서 또하나의 ‘비근대적 문명’을 창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복구는 단순한 복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근대’를 통과해오는 동안 불가피하게 손상된 자연적 및 사회적 질서를 수선·치유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인류 사회에 축적되어온 갖가지 창조적인 지혜와 경험과 기술을 살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가 ‘재창조’라는 용어를 강조하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생태문명을 재창조해야 한다면, 그 문명은 기본적으로 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문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 역사를 돌아볼 때에도, 대부분의 문명적 생활은 기본적으로 농사에 의존하는 생활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농사 중심의 생활은 자연의 순리에 따른 ‘순환적인 생활방식’으로서 거의 유일한 삶의 형태입니다. … 농업문명 시기 동안에 인간이 쌓아온 덕성들, 예를 들어 자연에 대한 공경과 순응적 태도, 근면성과 인내심, 자기절제와 겸손, 예의작법 그리고 무엇보다 평등과 자치, 자립의 관념 등등은 인간다운 사회를 위해서는 결코 빠뜨릴 수 없는 매우 소중한 덕성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오늘 이 자리에서 제가 근대문명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생태문명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여기서 생태문명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4천 년간의 농부》라는 책이 말하는 순환적인 농사에 토대를 둔 문명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 농경적 감수성의 회복입니다.

⟪녹색평론⟫ 2019년 9-10월 통권 제168호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 우리는 왜 질문해야 하는가> 중에서

새로운 생각이나 누군가의 생각에 대한 깊은 공감 모두 치열한 대결 끝에 얻어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공감할 수 없는 만큼 다른 발상, 다른 방향이 있을지 열심히 궁리해보아야만 새 길을 찾아내거나 정말 이 길밖에 없구나 하고 마음 깊이 동의하게 될 것입니다. 김종철 선생님을 흠모하고 그 노고에 깊이 감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선생님과 다른 방향의 길을 모색해보고, 그리하여 선생님 생전에 ⟪녹색평론⟫에 대한 ‘평론’을 내놓으면서 선생님과 대결을 해보려 시도라도 해보았어야 했는데 아둔하고 게을러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던 사이 선생님께서는 먼저 가버리셨습니다.

이제 선생님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선생님 남기신 글과 2백권에 가까운 ⟪녹색평론⟫을 김종철의 유산으로 받아들고 기후대변동 시대의 초입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과연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낸 대파국 앞에서 지혜로운 존재로 거듭날지, 아니면 상상하기 힘든 상황으로 휘몰려 들어가게 될지 초초할 뿐입니다. 사실 한동안 ⟪녹색평론⟫ 읽기를 등한시해왔습니다. 뭔가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그에 대한 제 대안을 또렷하게 이야기할 수 없어 김종철 선생님의 방향 제시마저도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 다시 선생님의 유산을 디딤돌로 삼기 위해서 찬찬히 들여다보고 곱씹는 시간을 가져 보렵니다. 아마도 선생님 남기신 것들을 깊숙히 들여다볼수록 생전에 선생님께 더 다가가 보려 하지 않았던 나태함이 원망스러워질테지만 한편으로는 그래도 선생님이 계셔서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자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선생님.

— 녹색아카데미 최우석

[읽은 글들]

[주석]

[1] 어법으로 보아 하십시오체가 맞겠지만 너무 높임말이 많이 등장하면 읽기에 좋지 않을 듯하여 하십시오체의 술어는 최소로 하였습니다.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