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와이드웹과 다이너북: 2-(1)부시 보고서와 유럽 내 과학연구의 통합

월드와이드웹과 다이너북

1.여는 글. 2020. 5. 20.

2.CERN의 꿈과 정보의 소통
   (1)부시 보고서와 유럽 내 과학연구의 통합. (2020. 5. 27.)
   (2)실험데이터의 수집과 컴퓨터의 사용. (2020. 6. 3.)
   (3)인터넷, 월드와이드웹, HTTP. (2020. 6. 10.)
   (4)월드와이드웹과 소통. (2020. 6. 17.)

3.앨런 케이의 다이너북
    (1)미멕스와 PARC. (2020. 6. 17.)
    (2)앨런 케이의 다이너북. (2020. 7. 24.) 
    (3)미멕스의 꿈과 전지구적 정보의 연결. (2020. 7. 1.)

4.재매개화와 메타매체성. (2020. 7. 8.)

5.마무리 글. (2020. 7. 8.)


이 글에서는 과학기술과 새로운 문화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기 위하여 월드와이드웹과 랩톱 컴퓨터라는 과학기술적 성과물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전개되었는지 살펴보고, 이를 통해 이러한 새로운 매체가 가져온 사회문화적 변화의 의미를 찾아봅니다. 이를 통해 소통의 연결점과 (하이퍼)텍스트 쓰기의 문제와 매체성 개념을 비판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과학칼럼은 매주 수요일 업로드됩니다.
김재영 (녹색아카데미)


20세기는 세계대전과 냉전의 세기일 뿐 아니라 물리학의 세기이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의 끝자락에 숨겨져 있던 물리학의 위력을 드러낸 사건은 다름 아니라 맨해튼 프로젝트였다. 이는 겉보기에는 원자폭탄의 제조라는 군사과학 상의 집단연구였지만, 사실 그것은 이후 50여 년의 과학기술 연구의 기본 틀이 되는 거대과학의 시작을 알리는 봉화이기도 했다. 

1945년 7월 미국 과학연구개발국(Office of Scientific Research and Development, OSRD)의 국장이던 배니버 부시(Vannevar Bush)는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 「과학, 그 끝없는 최전선」에서 연구비를 장악한 국가기관(연방정부 또는 국립연구재단)이 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체제를 제안했다(Bush 1945a; Zachary 1999).

이 국가기관은 “과학연구와 과학교육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있으며, 폭넓은 관심과 경험을 지닌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하고, 또한 “장기적인 연구프로그램을 지원할 수 있을 만큼 재정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나아가 이 기관은 “탐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함을 인지하고 있어야 하며, 정책과 인적 구성과 연구 방법 및 범위에 대한 내부적인 통제를 탐구가 수행되는 기관에 모두 맡겨야” 한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제안이었다.

부시 자신은 과학연구가 전쟁기간 동안 특정 기관에 집중되었던 일은 일시적인 것이며,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거대규모의 과학 프로젝트를 자문위원회의 망이 행정적인 면을 맡는 개별적이고 인간애적인 연구로 바꾸어 가야 한다고 줄곧 강조했지만, 현실은 부시의 소망과 반대의 방향으로 발전해갔다(Galison & Hevly 1992: 14). 소규모의 대학 실험실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과학기술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연구의 중심에 입자물리학이 있었다.

[그림 1] CERN의 웹페이지 갈무리 (출처: CERN)

입자물리학의 연구가 중심이 되는 CERN은 유럽의 여러 나라가 연합하여 1954년 설립한 연구기관으로서, 가속기 등을 써서 원자핵을 구성하는 기본입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실험적으로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 오고 있다(Hermann et al. 1987/1990/1996).

1949년 거대 규모의 공동연구가 가능한 기관을 설립하자고 공식적으로 처음 제안한 것은 루이 드브로이(Louis de Broglie)였다*. 왕족이기도 했던 드브로이가 이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하나가 되는 유럽을 향한 과학자들의 열망에 새로운 유럽 전체의 공동연구기관을 제안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드브로이는 로잔에서 열린 유럽문화회의에 부득이 참석할 수 없었다.  드브로이의 제안을 대신 낭독한 사람은 원자력 위원회(Commissariat à l’Energie Atomique, CEA)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던 라울 도트리(Raoul Dautry)였다. 

[그림 2] 루이 드 브로이. 1892-1987. (출처: wikipedia)

“우리의 관심은 이 새로운 국제적인 단위(연구소 내지 기관)를 발전시키는 문제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여러 나라들이 참여하는 틀을 넘어서는 과학연구가 수행될 수 있습니다. 유럽의 어떤 나라도 혼자서는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연합된 유럽은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틀림없이 아주 훌륭하게 해 낼 것입니다.”(Gillies & Cailliau 2000: 48)

드브로이의 제안에 현실적인 힘을 실어준 것은 미국의 이시도어 라비(Isidor I. Rabi)였다(Pestre & Krige 1992).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라비는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Brookhaven National Laboratory, BNL)의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라비는 1950년 유네스코의 미국 대표로 피렌체에서 열린 연례회의에 참석하여, 자신이 속해 있던 컬럼비아 대학을 비롯하여 미국 동부 연안의 대학들이 연합하여 1947년에 설립한 BNL이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연합하여 입자물리학 연구소를 설립하자는 드브로이의 제안에 좋은 모형이 될 수 있음을 역설했다.

[영상 1] CERN 소개 영상. (출처: CERN YOUTUBE)

여기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프랑스의 코와르스키(Lew Kowarski), 스위스의 프라이스베르크(Peter Preisswerk)와 같은 핵물리학자들과 프랑스의 오제(Pierre Auger), 이탈리아의 아말디(Edoardo Amaldi)와 같은 우주선 연구자들이었다. 여기에 도트리와 이탈리아의 콜로네티(Gustavo Colonnetti), 벨기에의 빌렘스(Jean Willems) 등과 같은 과학행정가들이 화답했다.  

CERN은 1954년 9월 29일에 공식적으로 개소했다. 그런데 CERN의 설립은 다른 유사한 성격의 공동연구 프로젝트(가령 미국의 로렌스 복사 연구소나 프랑스의 CEA)처럼 조직적ㆍ체계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경제공동체를 확립하려 하던 정치가들과 단일 국가로서는 결코 지원할 수 없는 거대 규모의 물리학 실험실을 원했던 핵물리학자들의 관심사가 맞아떨어지긴 했지만, CERN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벽이 많았다.

[영상 2] “CERN: 세상을 바꾼 60년” (니콜라우스 가이르할터 감독). (출처: EBS YOUTUBE)

* 1924년에 드브로이는 양자역학이 성립하기 전에 전자와 같은 입자가 물질파를 이룬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이것이 데이비슨-저머-톰슨의 실험으로 입증됨에 따라, 드브로이는 노벨물리학상의 영예를 안았다. 


참고문헌

  • 김재영 (2010). “CERN의 월드와이드웹과 앨런 케이의 다이너북: 최초의 랩톱컴퓨터와 메타매체와 소통”, 탈경계인문학. 3(2): 249-289. 
  • Bush, V. (1945a). A Report to the President by Vannevar Bush, Director of the Office of Scientific Research and Development, July 1945, United States Government Printing Office.
  • Galison, P. & Hevly, B. eds. (1992). Big Science: The Growth of Large-Scale Research, Stanford University Press.
  • Gillies, J. & Cailliau R. (2000). How the Web was Born: The Story of the World Wide Web, Oxford University Press.
  • Hermann, A., Krige, J., Mersits, U., & Pestre, D. eds. (1987/1990/1996). History of CERN, Vols. I-III, North-Holland.
  • Pestre, D. & Krige, J. (1992). “Some thoughts on early history of CERN”, in Galison & Hevly (1992), pp.78-99. 

  • 이 글은 녹색아카데미 웹진을 위해 김재영(2010)을 편집한 것입니다.
  • 알림: 웹사이트 스킨 문제로 댓글쓰기가 안되고 있습니다. 댓글이나 의견 등은 녹색아카데미 페이스북 그룹트위터인스타그램 등을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부모임 게시판에서는 댓글을 쓰실 수 있습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 녹색아카데미 
[그림 3] CERN의 로고. (출처: CE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