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 탈인간중심, 툴루세 – (1)인류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과학칼럼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3회에 걸쳐, 인류세의 개념을 상세하게 검토한 뒤 우주와 자연사에 대한 과학의 역사에서 전개된 탈인간중심주의 전통을 살펴보고, 다나 해러웨이가 제안한 ‘툴루세’의 개념과 내용을 중심으로 인류세라는 이름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해봅니다.

“인류세, 탈인간중심, 툴루세”

1.인류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020. 4. 28.
2. 인간중심주의로부터 멀어져 온 과학의 역사. 2020. 5. 6.
3. 툴루세에서 불편하더라도 함께 살기. 2020. 5. 13.

김재영 (녹색아카데미)


독일 뮌헨의 박물관 도이체스무제움은 2014년 12월부터 2016년까지  “인류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illkommen im Anthropozän!”라는 제목의 특별전을 열었다. 1903년에 처음 설립된 이 박물관은 독일 바이에른 지역의 과학자, 기술자, 공학자들이 함께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만날 수 있는 뛰어난 성과들을 집대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세계 최대의 과학기술박물관에서 “인류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특별전을 연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인류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표어는 2012년에 열린 ‘리우+20’(유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국제회의)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았다. 도이체스무제움의 특별전이 환경과 사회를 위한 레이첼 카슨 센터와 공동주최한 것이라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영상 1] “인류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도이체스무제움의 특별전(2014-2016) 소개 영상. (출처: 도이체스무제움)

이제 ‘인류세’라는 이름은 최신의 문화에서 뜨거운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이름이 학계에 공식적으로 처음 나타난 것은 2000년의 일이었다. 대기 오염과 오존층의 관계를 밝힌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네덜란드의 대기 화학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은 미국의 생태생물학자인 유진 스토머(Eugene Stoermer)와 함께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시대의 명명을 제안했다. ‘인류세’라는 이름의 의미를 음미하기 위해서는 지질시대의 명명을 잠시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지질시대의 공인된 이름은 홀로세Holocene이다. 2009년에 국제층서위원회는 홀로세는 지금으로부터 약 11,650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정의를 내렸다. 지질시대는 ‘누대(累代, Aeon)’, ‘대(代, Era)’, ‘기(期, Period)’, ‘세(世, Epoch)’, ‘절(節, Age)’로 구별된다.

명왕누대, 시생누대, 원생누대를 거쳐 약 5억 4100만년 전부터 지금까지는 현생누대에 속하며, 현생누대는 다시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나뉜다. 가령 중생대에 속하는 쥐라기는 트라이아스기와 백악기 사이에 놓인다.

세계지질지도위원회(CGMW)는 각 지질시대에 RGB 코드를 할당하여 국제시간층서도표(International Chronostratigraphic Chart)를 매년 제작하고 있다.

[그림 1] 국제시간층서도표. (출처: 국제층서위원회)

신생대는 영어로 Cenozoic Era인데, 이 말은  ‘새로운’ 또는 ‘최근의’라는 뜻의 καινός(카이노스)와 ‘생명’을 의미하는 ζωή(조에)를 붙여 19세기 중반에 영국의 지질학자 존 필립스가 제안한 말이다. 신생대에 속한 ‘세’는 모두 7개로서, 가장 오래된 것부터 팔레오세(Paleocene), 에오세(Eocene), 올리고세(Oligocene), 마이오세(Miocene), 플리오세(Pliocene),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 홀로세(Holocene)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런 이름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까닭은 찰스 라이엘을 비롯한 19세기의 지질학자들이 당시 유행에 따라 그리스어를 이용하여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뭔가 생소해 보이지만, 그리스어로 보면 자연스러운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하면 각각 Paleocene(“오래된 새로운”), Eocene(“새벽처럼 새로운”), Oligocene(“조금 새로운”), Miocene(“덜 새로운”), Pliocene(“더 새로운”), Pleistocene(“가장 새로운”), Holocene(“완전히 새로운”)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신생대에 속한 일곱 개의 ‘세’ 중 플라이스토세와 홀로세를 제4기로 묶는다. 플라이스토세는 홍적세(洪積世)라고도 한다. 플라이스토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빙하의 흐름을 중심으로 한 빙기와 간빙기의 반복이다. 그래서 플라이스토세는 흔히 그냥 ‘빙하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국제지질과학연맹은 2009년에 플라이스토세가 약 258만 8천 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확정했다. 그 전까지는 제4기의 시작 즉 플라이스토세의 시작을 약 180만 6천년 전으로 보았는데, 그렇게 하면 지구상의 기후와 해양과 식생의 변화를 고려할 때, 플리오세에 포함시켰던 시기 일부에도 빙기와 간빙기의 반복이 있게 되어 혼동이 생긴다. 그런 이유로 제4기의 시작을 258만 8천년 전으로 옮기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지질학자들이 합의했던 것이다. 

제4기의 시작은 우리 인류가 속한 호모 속이 나타난 시기와 대략 겹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공인된 고인류학에서는 처음 석기를 사용한 호모 하빌리스가 약 210만 년 전부터 150만 년 전까지 살았다고 보고 있다. 플라이스토세 내내 살았던 것으로 여겨지는 호모 에렉투스의 가장 오래된 화석은 약 180만 년 전의 것이다. 2012년에는 약 100만 년 전에 처음 불을 사용한 흔적이 보고되었다. 호모 에렉투스와 구별되는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난 것은 대략 30만 년 전이다.

[그림 2] 사람족(Homonini) 종족사. 세로축 단위: 1백만 년. (출처: wikipedia)

홀로세는 바로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뒤부터 시작되었다. ‘충적세(沖積世)’라 부르기도 한다. 국제지질과학연맹이 2009년 홀로세의 시작을 11,650±699년 전으로 특정하게 된 것은 그린란드에서 시추한 빙하 시료에서 급격한 기후변화의 증거를 찾아냈고, 정교한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을 이용하여 연대를 알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홀로세의 처음은 인류가 중석기 문명으로 발전할 무렵이다. 신석기 문명은 기원전 1만 년경에 시작되었다.

크뤼천과 스토머의 제안은 홀로세라는 이름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질시대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지질학적 변화에서 인류의 역할이 너무나 지대하기 때문에 지금 시대를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한국어에서 인류세로 번역되는 Anthropocene은 신생대에 속하는 기존의 여러 ‘~세’들이 -cene으로 끝나는 약속을 따른 것이고, 그리스어로 ‘사람’이라는 뜻의 ‘안트로포스ἄνθρωπος, anthropos’를 앞에 붙인 것이다.

인류세라는 새로운 이름은 곧 현대 사회에서 가장 심각하게 지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존재가 바로 인류라는 점에 주목한 결과이다. 실제로 1870년대 이후 지구 환경과 생태는 분명하게 눈에 띄는 강도와 규모로 달라지고 있다. 일부 비판자들과의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지구온난화’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그보다 더 중립적인 ‘기후변화’라는 개념을 쓰더라도 이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가장 첨예한 문제가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막대한 기후변화는 다름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라 부르는 우리 인류의 엄청난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류는 산을 깎고 바다를 메우는 것뿐 아니라 광범위한 건축과 건설로 지질학적으로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는 이제까지 지구상에 존재한 그 어떤 종도 가지지 못한 커다란 영향력이다.

[그림 3] 사람족 연대표. (출처: wikipedia)

그러나 지구환경의 심대한 변화와 위기를 상기시키는 이 용어를 모두가 환영하며 찬성한 것은 아니다. 특히 지질학자들을 비롯한 여러 지구 시스템 과학 연구자들이 인류세라는 용어가 과학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이거나 문화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신생대의 일곱 ‘~세’들은 모두 급격한 기후변화의 증거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연대를 정밀하게 측정하여, 이를 지질시대 구분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이에 비해 인류세라는 개념은 상징성과 시사성을 적절하게 지니고 있지만, 급격한 지질학적 변화를 명료하게 나타내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특히 홀로세와 인류세를 구별하는 경계가 불분명하다. 어떤 사람은 300년 전을 제안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70년 전으로 정하는 것이 더 좋다고 주장한다. 또한 최소 몇백만 년쯤 되는 지질시대의 길이를 염두에 두면 기껏해야 500년도 안 되는 시기를 별도로 이름 붙여 구분하는 것이 불필요해 보이며, 홀로세라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인류세라는 이름은 지질학 및 기후학 등의 지지 없이 문화적인 코드로서 제시된 것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다른 한편, 자연과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이 용어를 불편해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미국의 환경사학자이자 역사지리학자 제이슨 무어는 이에 반대하여 ‘자본세Capitalocene’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기후변화와 지질학적 및 생태학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 것은 추상적인 ‘인류’가 아니라 인류가 만들어낸 자본주의와 그 안에서 이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버리는 강력한 힘인 ‘자본’이라는 것이다. 추상적인 수준에서 ‘인류’라는 중립적 용어를 씀으로써 지구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가져오고 있는 ‘자본’의 무서운 힘이 감춰진다는 비판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반인간세Neganthropocene’와 ‘엔트로피세Entropocene’를 설파하고 있고, 프랑스의 과학사회학자 크리스토프 보뇌이와 장-바티스트 프레소는 ‘인류세’라는 개념이 지니는 다양한 측면과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논의하면서, ‘열세Thermocene’, ‘죽음세Thanatocene’, ‘탐식세Phagocene’, ‘지혜세Phronocene’, ‘무지세Agnotocene’, ‘자본세Capitalocene’, ‘논쟁세Polemocene’와 같은 대안적인 이름들을 상세하게 고찰하고 있다. 심지어 온실가스의 배출과 심각한 환경오염이 영국과 미국 탓이라면서 ‘영어세Anglocene’이란 이름까지 농담처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논쟁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숨어 있다. 인류가 현재의 거대한 기후변화에 주된 요인 중 하나가 되고 있음은 분명히 인정하지만, 이 시대를 ‘인류세’로 불러야 할 만큼 인류가 중심적인 존재일까? 인류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이름에 ‘인류’라는 말이 들어 있긴 하지만 실상 인간중심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류세는 오히려 인류가 인류 이외의 수많은 생명체들과 나아가 지구 전체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인간을 넘어서는 생태중심주의의 견해를 제시하고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실상 그만큼 인류가 강력하며 이 지구 생태계의 운명을 인류가 좌우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 안에 깔려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세계 최대의 과학기술박물관이 인류세 특별전시를 기획한 것에는 실상 인류의 과학기술이 그렇게 대단하다는 자만심도 한몫을 했다고 말하는 게 지나치지는 않다. 게다가 이름이 한번 붙으면 사람들은 그 이름에 대한 세세한 내력을 천천히 이해하고 살피기보다는 바로 이름에 대한 이미지와 직관적 이해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이름을 내세우는가 하는 문제는 의외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참고문헌

  • http://www.stratigraphy.org/index.php/ics-chart-timescale
  • https://savageminds.org/2016/11/18/staying-with-the-trouble-making-kin-in-the-chthulucene-review/
  • Christophe Bonneuil, Jean-baptiste Fressoz (2013) L’Événement Anthropocène. La Terre, l’histoire et nous. Points.
  • Heather Davis and Etienne Turpin, eds. (2015) Art in the Anthropocene: Encounters Among Aesthetics, Politics, Environments and Epistemologies. Open Humanities Press.
  • Donna Haraway (2016) Staying with the Trouble: Making Kin in the Chthulucene. Duke University Press.
  • Bruno Latour (2015) Face à Gaïa. Huit conférences sur le nouveau régime climatique. Éditions La Découverte.
  • Jason W. Moore, ed. (2016) Anthropocene or Capitalocene? Nature, History, and the Crisis of Capitalism. PM Press.
  • Bernard Stiegler (2018) The Neganthropocene. Open Humanities Press.

*이 글은 아트인포스트 zer01ne 디지털 매거진에 실렸던글(김재영)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알림: 웹사이트 스킨 문제로 댓글쓰기가 안되고 있습니다. 댓글이나 의견 등은 녹색아카데미 페이스북 그룹트위터인스타그램 등을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부모임 게시판에서는 댓글을 쓰실 수 있습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 녹색아카데미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