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문명이야기 (18) 상하수와 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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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언가를 쓰고 버리면 ‘쓰레기’가 생긴다. 지구상의 모든 물질과 마찬가지로 형태나 상태가 바뀔 뿐 쓰레기를 구성하고 있는 원소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구는 (물질적으로) 닫힌 계이기 때문이다.

이 쓰레기가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사용하던 돌도끼일 경우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가르 드 쿠즈(Gare de Couze)의 구석기 시대 유적에는 석기 도구 1~200만 개가 길이 270미터 폭 55미터 공간을 지금도 차지하고 있다.

인류가 정착 사회를 이루고 살면서 지금까지도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가 사람과 가축의 똥오줌을 처리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깨끗한 상수를 확보하는 일과도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하수와 똥오줌을 상수와 제대로 분리하지 못하면서 인류는 지난 1만 여 년 동안 여러 가지 질병과 감염병에 시달렸다.

영국 케임브리지셔의 폭스턴이라는 작은 마을의 기록에 그 어려움이 남아 있다. 이 마을 중앙을 흐르는 시내는 식수원이자 하수 도랑 역할을 동시에 했기 때문에 수질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저녁 8시 전에는 똥오줌을 포함한 오물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조례를 만들어 관리하려고 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아 1541~1698년 사이에 조례를 여덟 번 다시 만들어야 했다고 전해진다.

[그림 1] 모헨조-다로의 대형욕조. 우물과 빗물로 이 욕조를 채웠다. 길이 11.88, 너비 7.01 미터, 최대 깊이 2.43미터. (출처: wikipedia)

기원전 2,600년 전 모헨조다로나 하라파같은 인더스 강 유역에 위치한 도시들은 대형 욕조(The Great Bath)와 물 저장 탱크를 만들었다. 상하수를 구분하려는 거의 최초의 시도이다.

도시 밖에서 물을 끌어오는 수도관을 처음 만든 도시는 그리스 사모스이다. 지하터널(Tunnel of Eupalinos)을 지나 사모스로 들어온 물은 도로 위로 솟은 수도관을 통해 도시에 공급되었다. 이 시스템은 스페인과 프랑스 남부, 카르타고, 알렉산드리아 등 지중해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림 2] 사모스에 상수를 공급하던 지하터널. 이 터널의 기울기는 3%에 불과할뿐만 아니라 산의 양쪽에서 동시에 터널을 파들어간 것을 보면 당시 토목 기술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eupalinos-tunnel.gr)

로마인들도 상수를 도시 밖에서 끌어다 썼다. 기원전 312년 티베르 강이 너무 오염되자 로마인들은 수도관을 만들었다. 약 300년 동안 로마인들이 만든 수도관은 9개, 총 길이 420킬로미터에 달한다. 로마제국이 만든 중앙집중식 상수 공급 시스템, 즉 공공장소에 샘이나 수도꼭지를 만들어 길어다 쓰는 시스템은 19세기 말까지 유럽의 거의 모든 도시에서 사용되었다.

[그림 3] 로마시대 카라칼라 대형목욕탕. 기원전 212년. 그림은 F.A. Genzmer. 1899년. (출처: wikipedia)

11세기를 지나 북서유럽에서 발달한 도시들도 상하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런던의 템즈 강은 13세기 초에 이미 오염되었기 때문에 납으로 된 수도관을 이용해 도시 밖에서 물을 끌어와야 했다. 1300년경 이탈리아 시에나의 캄포 광장의 쓰레기는 돼지 5마리가 먹어치워 청소했다. 

중세와 근대 초기까지도 궁전과 성의 화장실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똥오줌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마룻바닥에 구멍을 뚫어 놓은 곳이었다.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휴대용 변기를 사용하였고, 루브르나 재판소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건물 구석에서 일을 봐야했다. 하녀들은 창문에서 아래로 똥오줌을 내던져 건물 외벽이 온통 오물 얼룩이었다.

1637년 한 여행객의 기록에 남아있는 마드리드의 모습은 다음과 같았다.

“언제나 더러웠다. 창문으로 모든 쓰레기를 내던지는 풍습 때문이다. 겨울철에는 짐마차들이 나무통에 물을 길어와 쓰레기와 더러운 것들을 씻어내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이 더러운 물이 흘러 지나가던 사람 앞길을 막으며 악취로 숨막히게 하는 일은 종종 있었다.”

『녹색세계사』, p.424.

18세기경 파리에서는 물을 양동이로 배달하는 사람들이 2만 명에 달했다. 1837년 빅토리아 여왕이 버킹검 궁으로 이사했는데 그때도 목욕탕이 없었다. 1908년 당시 영국 수상 관저인 다우닝 가 10번지에도 목욕탕은 없었다. 1962년 파리의 경우에도 7집 중 1집은 수도가 없었다.

19세기 초 공업도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위생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1847년 런던 하수위원회 기술자였던 존 필립스는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대도시에는 배수시설이라곤 없는 집 수백 채가 있는데 대부분 악취를 풍기며 넘쳐나는 똥오줌 구덩이가 있다. 수많은 거리와 궁정과 복도에도 배수구가 없다. 나는 방이며 지하실이며 뒷마당에 오물이 너무나 두껍게 쌓여 있어서 치울 수도 없게 된 곳을 여러 군데 보았다.”

『녹색세계사』, p.426.

수세식 변기가 발명되면서 오염문제는 장소만 옮겨 다시 나타났다. 1815년 영국은 수세식 변기에서 나오는 물을 지표수로 방류할 수 있도록 합법화했고, 1847년 의무사항으로 만들었다. 곧바로 강은 시궁창으로 변했다. 런던의 하수구는 플리트 강으로 연결되고 이 강은 템즈 강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림 5] 1858년 7-8월 템즈강에서 올라오는 엄청난 악취로 질병과 사망이 이어지는 “대악취 사건”이 발생했다. 그림은 당시 Punch 매거진에 실린 만화 “The Silent Highwayman”. 1858년. (출처: wikipedia)

더운 계절이면 템즈 강에서 엄청난 악취가 솟아올랐다. 1858년에는 ‘대악취 사건'(The Great Stink)이 일어나 하원의 개원이 취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물 회사들은 템즈 강에서 취수를 했고, 사람들은 장염과 콜레라에 감염되었다.

생활오수뿐만 아니라 산업시설에서 나오는 오폐수와 해운으로 템즈 강은 1957년 생물학적으로 죽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후 주변 지역의 산업이 무너지고 도클랜드로 지역으로 들어가는 해운도 사라지고 하수처리 시설이 개선되면서 점차 수질이 좋아졌다. 2005년에는 템즈 강에서 물개와 돌고래 등 물고기 100여 종이 나타났다고 보고되었다.

수세식 변기를 사용하게 되면, 똥오줌이 그 몇 배 되는 물과 함께 섞여 강과 바다나 오수처리시설로 흘러간다. 폐기물 처리를 위해 첫 번째로 해야하는 일은 제거하고자 하는 오염물질을, 그것을 포함하고 있는 물이나 공기나 흙 등으로부터 분리해내는 것이다. 똥오줌은 그 자체가 분리된 상태로 배출되는데 이것을 다시 물에 섞어버리는 수세식 변기는 쓰레기 처리의 기본에 어긋나는 장치이다. 이용과 수거에 약간의 편이만 있을 뿐 이로 인해 처리는 더 어렵고 복잡해지고 비용은 상승하게 된다.

현재 선진국 도시에서는 대부분 상수도를 통해 물이 충분히 보급되고 있지만, 19세기 후반 정수 시설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똥오줌 등으로부터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을 구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수많은 개발도상국이나 분쟁지역에서도 상하수 문제는 해결해야할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이다.

20세기 후반 이후에는 주로 산업폐수에 포함된 독성물질과 중금속, 농경지에서 씻겨 나와 상수원으로 섞여드는 비료, 살충제, 제초제가 상수도와 지하수를 사용하는 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참고자료

  • <녹색세계사>, 클라이브 폰팅 지음. 1991; 이진아/김정민 옮김. 2007. 그물코. (15장)

“그림으로 읽는 문명이야기”에서는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와 녹색문명을 고민해봅니다.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세계사>를 읽어가면서, 현재의 환경문제와 기후위기 상황 그리고 석유에 기반한 현대도시문명을 다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그림으로 읽는 문명 이야기’는 매주 수요일 업로드됩니다.


발췌, 요약: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2020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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