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철학 세미나⟩ 서울 모임 첫 모임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장회익. 2019. 추수밭.

어제 11월 28일에 있었던 <자연철학 세미나> 서울 모임의 첫 모임 간단히 정리해 봅니다.

어제 서울 모임에는 장회익 선생님을 포함하여 총 24분이 함께 모였습니다. 이날 처음 뵙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요, 교수분부터 학생분까지, 과학기술분야에 계신 분부터 철학과 인문분야에 계신 분까지, 직업적인 지식인부터 자유롭게 지식을 탐구하는 교양인까지 아주 다양하게 참여해주셨습니다. 분야와 배경이 다 다르지만 왠지 단단하게 느껴지는 분들이 모이셔서 앞으로 서로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모임이라 대략 1시간 20여분 정도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 말씀을 나누고, 그 뒤 휴식없이 1시간 40여분 정도 ‘제1장 소를 찾아 나서다: 앎의 바탕 구도’ 부분 읽은 이야기를 두서 없이 자유롭게 주고 받았습니다.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와중에 모임에 대한 기록을 잘 못하였는데요, 기억에 남는 이야기와 질문 몇 가지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 이야기를 할 때 장회익 선생님께서 우리가 다루는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책과 세미나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은 취지로 해주셨습니다. (정확하게 옮긴 것은 아니니 이 비슷한 이야기라고만 여겨 주세요.)

올해로 물리학을 한 지 62년이 되었는데 시작할 때부터 “이 한 권만큼은 꼭 읽어라”하고 나 자신에게 권할 만한 책을 찾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찾지 못해서 결국은 내가 써버렸다.

앎이라는 것을 통째로, 가장 중요한 것을 바탕과 연결해서 정리해보면 어떻게 되겠나 하는 것에 대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보았다. …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쉬운 책이 아니다. 최대한 쉽게 쓰려고 했지만 이 이하로 내릴 수는 없었다. 최소한이지만 수학을 쓴 수식이 적잖이 나와서 혼자서는 끝까지 막힘 없이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모여서 인내를 가지고 도움주고 도움을 받아가면 내가 60년 기다려 얻은 결과를 모두 얻을 수 있으리라 본다.

일찌기 C.P. 스노우 <두 문화>라는 책에서 인문 문화와 과학 문화 사이의 높고 두터운 장벽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 장벽은 인문학 쪽에서는 뚫기 매우 어렵다. 과학 쪽에서도 자기 분야에 갇혀 과학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쉽지 않다. 현재까지 문명이 이루어낸 앎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이해’가 가장 중요한데 이런 이해를 추구하는 흐름 자체가 세계적으로 희귀하다.

우리가 길을 한 번 열어보자. 우리는 굉장히 독특한 위치에 있다. 우리 풍토에는 동아시아의 지적 전통이 깔려 있고, 우리가 이루어낸 것은 아니지만 서구 과학을 비롯한 서구 지식 문화가 현재 앎의 중심을 이룰만큼 다 들어와 있다. 인문학과 과학의 벽에 구멍을 뚫고, 우리의 풍토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가지고 서구의 것을 얹어서 다시 우리의 답을 얻어보고자 노력한다면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지적인 성취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 날은 가볍게 1장 중심으로 읽은 느낌이나 간단한 의문 등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다음과 같은 질문과 이야기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동양의 고전에는 왜 관심을 두시는가?
  • 누구는 왜 떨어지는가를 묻고, 누구는 왜 떨어지지 않는가를 묻는다는 대비는 아주 흥미로왔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무거운 것은 빨리 떨어진다는 이야기와 장현광의 왜 대지는 떨어지지 않는가 하는 의문은 비슷한 이야기로 볼 수 있는가?
  • 장현광이라는 인물과 그 시대가 매우 흥미롭다. 서구의 문물이 들어오기 직전이라 서구에 영향을 받지 않은 동아시아만의 지적 전통 위에 있었을텐데 그 전통과 다른 점이 상당히 있는 것 같다.

이런 주제들에 대해 오고간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 공간에 대한 바탕 관념의 차이가 있다. ‘차원’이라는 함께 차원을 이루는 여러 축들이 모두 대등하다, 즉 자연법칙이 함께 차원을 이루는 모든 방향으로 같아야 한다는 것인데, 장현광은 공간을 2차원 + 1차원으로 본 것이라면 뉴튼은 공간을 3차원으로 본 것이다. 장현광에게 앞뒤좌우는 대등하지만 위아래 방향은 별도의 특별한 성질이 있는 방향이다. 하지만 뉴튼에게 위아래 방향에만 별도로 적용되는 자연법칙이란 없고 그 때문에 앞에서 뒤로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도 떨어지지 않는데 왜 유독 위에서 아래로는 사물이 떨어지는지를 설명해야 했다. 장현광에게 위아래 방향은 원래 떨어지는 방향이므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설명해야 했던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는 차원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서구에서는 어느 때인가부터 공간을 3차원으로 보는 데에 대한 암묵적 합의가 생긴 게 아닌가 싶다. 뉴튼이 최초로 “왜 사과가 떨어지는가?”하는 걸 물은 건 아닌 것 같다.
  • 서구에서는 차원의 대등함보다는 케플러나 뉴튼 이래로 천상의 운동과 지상의 운동이 다르지 않다는 자연법칙의 대등함이 더 중요한 과제였던 것 아닐까?
  • 장현광의 시기는 서구 문물이 전해지기 직전, 또는 사신이나 일부 지식인을 통해 막 유입은 되었지만 전파되지는 못한 시기이다. 때문에 장현광의 사고는 모두 동아시아 지적 풍토 위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서구의 영향 없이 현상을 살펴보고 사물의 리(理)를 찾으라고 명시적으로 촉구한다는 점에서 근대과학에서 볼 수 있던 태도가 동아시아에서도 자생적으로 출현하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과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과학철학, 자연철학은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정리에 한계가 있습니다. 여하튼 가볍게 이야기를 시작하였기 때문에 1장의 중요한 이야기인 ‘앎의 바탕 구도’에 대해서는 말씀을 거의 나누지 못하였는데요, 다음 시간에 고전역학을 다루면서 장현광으로부터 얻게 되는 앎의 바탕 구도도 함께 다루어 볼 계획입니다. 자기 소개를 마치고 난 뒤 1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때부터는 아래 페이스북 녹색아카데미 그룹 (비공개그룹)에 동영상을 올려두었습니다. 녹색아카데미 그룹에 가입을 하셔야 볼 수 있습니다만 필요하신대로 참고하시지요. (다음 시간부터는 조금 더 효과적으로 동영상 기록을 올리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보려 합니다.)

녹색아카데미 페이스북 공개그룹 : 모임 동영상 등이 업로드됩니다.
https://www.facebook.com/groups/greenacademykr/

녹색아카데미 페이스북 공개그룹 : 웹진과 모임 공지 등이 업로드됩니다.
https://www.facebook.com/groups/greenacademyopen/

다음 모임은 바로 한 주 뒤인 12월 5일 목요일입니다. 이날은 ‘제2장 소의 자취를 보다: 고전역학’ 편을 중심으로 공부할 계획입니다. 장회익 선생님 적으신 글과 더불어서 고전역학의 핵심적인 내용을 수학적으로도 이해해볼 계획입니다.

정리 최우석 (녹색아카데미)

자연철학 세미나-서울, 첫 모임 인증샷입니다. 프라이버시를 위해 아주 작게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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