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브기술 이야기 (3) – 열회수배기

최우석
(녹색아카데미/파시브기술연구소)

현대적이고 수준 높은 파시브기술을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중 비교적 드물지 않게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현대 파시브기술은 열회수배기 기술입니다. 보급율이 90% 가까이 이른다는 유럽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콘덴싱 보일러는 꽤 많은 집에서 이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콘덴싱 보일러가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파시브기술 장치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액티브기술과 파시브기술의 융합 기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 1> 열회수배기를 위해 연통에 코일을 감은 난로 (출처: navitron.org.uk/forum)

열회수배기의 원리는 단순합니다. 화석연료나 바이오매스를 태워 열을 이용하는 연소장치는 연소 후 기체를 배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배기의 열이 보통 100 ℃ 이상 고열인데 이 열을 되찾아오는 것이 바로 열회수 배기입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의 공기나 물이 배기와 간접적으로 접촉하게 하여 열을 빼앗아 오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단순 열교환 방식의 열회수배기 기술은 구현이 간단해서 집의 난로, 보일러의 연통이나 굴뚝에 직접 적용해볼 수도 있습니다.

 배기의 열을 더 효과적으로 빼앗아오기 위해서는 공기나 물의 견줌열 뿐아니라 숨은열을 이용해야 합니다. 물의 견줌열(비열; specific heat)은 4.184 J/gK이고, 숨은열(잠열; latent heat)은 2259.36 J/g 입니다. 열을 회수하는 입장에서 봅시다. 배기와 접촉하여 0℃의 물 1g의 온도를 100℃까지 올릴 수 있다면 418.4 J의 열을 회수하게 되지만 100℃의 물 1g을 같은 온도의 수증기로 증발시키면 2259.36 J, 즉 5배의 열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액체에서 기체로, 기체에서 액체로 물질의 상태가 변화되면 훨씬 더 많은 열을 찾을 수 있는 겁니다. 배기의 열을 빼앗아오는 물이 증기로 기화되면 많은 양의 열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고온의 배기가 나오는 산업용 보일러의 배기관에 설치하는 증기발생기가 이런 일을 합니다. 이와 반대로 배기 안에 포함된 수증기를 물로 맺히게 하면 꼭 같은 양의 열이 회수됩니다. 바로 이것이 콘덴싱 보일러, 달리 말해 서림(응축) 보일러의 원리입니다.

<그림 2> 물의 견줌열(비열; specific heat)과 숨은열(잠열; latent heat) 그래프 (출처: hyperphysics.phy-astr.gsu.edu)

콘덴싱 보일러로 들어오는 물은 먼저 배기를 만나서 불을 만나기 전에 미리 데워집니다. 이 때 배기 안의 수증기가 물로 서리면서 많은 양의 열에너지가 배기에서 보일러 안의 물로 이동하죠. 제조사의 설명에 따르면 일반 보일러에서는 120℃ 정도 된다는 배기의 온도가 45℃ 내외의 따뜻한 수준의 온도로 뚝 떨어집니다. 배기의 열로 미리 데워진 물을 가지고 가스나 기름, 또는 나무를 태운 연소열로 원하는 온도의 난방온수와 급탕온수를 만듭니다. 서림 현상이 없는 일반 보일러에서는 그냥 버려질 배기의 열을 상당히 이용하기 때문에 콘덴싱 보일러는 효율이 높고 연료를 적게 씁니다. 이산화탄소 등 온실 기체도 적게 생깁니다. 일반적인 보일러의 효율이 80% 내외인 데 반해 콘덴싱 보일러의 효율은 최소 90% 이상, 제조사들에 따라서는 95~98%까지도 나온다고 합니다. 이런 장점 때문에 네덜란드와 독일에서는 이미 꽤 오래 전부터 콘덴싱 보일러 사용을 의무화하였고, 한국도 2020년 4월부터는 의무화 됩니다.

<그림 3> 일반 보일러와 콘덴싱 보일러의 작동원리 비교 (출처 : 한국일보 2018년 11월 24일자 기사 “[생생과학] 우리집 보일러는 왜 가스비가 더 나올까”)

유의할 점은 서림 현상을 이용하기 때문에 물이, 그것도 상당량 나온다는 것입니다. 콘덴싱 보일러를 함부로 의무화하기 힘든 이유는 보일러 설치 장소에 물빠짐 시설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보일러가 실외에 있다면 보일러에서 나온 물이 얼어버릴 수도 있어서 주의해야 합니다. 또 서린 물은 산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보일러 내부에 부식이 생길 수 있어 세심하게 설계하고 부식이 생기지 않는 자재로 제조해야 한다는 가격 상승 요인도 있습니다. 아울러 콘덴싱 보일러는 물을 데우는 보일러에서만 가능하다는 점도 나름의 한계입니다. 공기를 데워서 공기 난방을 하는 보일러에서는 서림을 만들 수 없어서 서림 열회수를 할 수가 없습니다.

온도차 열회수이건 서림 열회수이건 열회수배기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곳은 비단 가정용 보일러 뿐이 아닙니다. 연소로 인한 배기열이 많이 발생하는 사업장이나 공장 등에서도 온수를 생산하여 자체 사용하거나 주변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열회수를 할 수가 있습니다. 덴마크의 엑소드라프트 exodraft라는 회사는 열회수배기 전문업체인데 이 회사의 솔루션을 적용할 수 있는 사업장들의 예가 재미있습니다. 작은 동네 빵집이나  빵공장, 음료 공장, 금속 처리 공장, 섬유 염색 시설, 열 가공 공장, 시멘트 생산 시설, 알루미늄 생산 시설 등에 이 회사의 열회수배기 솔루션을 적용할 수가 있다는군요. 열회수배기 기술은 이처럼 작은 산업 생태계를 설계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유력한 기술이기도 합니다. 마침 한국설비기술협회지 <공조 냉동 위생> 2019년 11월호는 산업시설의 열회수배기 기술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그림 4> Exodraft의 빵굽는 오븐용 열회수배기 장치 (출처: Exodraft 빵공장 솔루션 페이지)

화석연료 연소장치의 대표격인 내연기관에도 열회수배기 기술은 없을 수가 없습니다. 최근 BMW사의 차량 연쇄 사고 소식 때문에 종종 듣게 되는 EGR(exhaust gas recirculation; 배기 재순환)이라는 장치도 일종의 열회수배기 기술 장치입니다. 최근의 차량, 특히 하이브리드 차량의 경우 배기열을 이용해서 냉각수와 엔진을 예열하거나 실내 난방열, 김서림 방지열 등에 쓰고 있고, 열전발전(TEG; thermoelectric generation)에 이용하는 방안도 연구되고 있다 합니다.

열회수배기 기술은 다른 파시브기술에 비하여 많이 연구되고 많이 이용되는 기술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기술은 과도기적 기술입니다. 건축물의 에너지성능이 파시브하우스 표준 수준까지 이르게 되면 연소 장치를 이용한 난방과 급탕은 매력이 없습니다. 연소 장치는 너무 강력하고 비효율적입니다. 우리가 파시브하우스와 같은 에너지성능이 좋은 건축물로 기후 위기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가게 된다면 에너지효율이 300%에 이르는 히트펌프로 난방과 급탕을 하게 될 겁니다. 연소 장치가 사라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열회수배기 기술도 필요치 않게 됩니다. 열회수배기 기술은 그 때를 향해 가는 징검다리와 같습니다. 물론 꽤 뒤의 이야기입니다. 연소열을 이용하는 동안은 열회수배기 기술을 최대한 발전시키고 이용해야 화석연료 소비량과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대기 오염을 줄여나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