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상대성이론 100+4년 – 제2회.절대공간은 존재할까?

2015년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나온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특수상대성이론이 100세가 된 것은 10년 앞선 2005년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은 과학이론의 본성이 무엇인지 잘 드러내 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고, 시간과 공간과 우주와 물질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이론이면서도 동시에 실증적으로 권위를 인정받은 이론이기도 하다.

그만큼 역사적인 맥락이 풍부하며, 또한 문화적 영향도 다양하다. 무엇보다도 시간과 공간에 대한 철학적 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녹색아카데미 과학칼럼에서는 일반상대성이론이 만들어지고 다듬어지는 역사적, 철학적 과정을 9회에 걸쳐 살펴본다.(매주 화요일 업로드됩니다.)

  1. 뉴턴이여, 나를 용서하시길! (8/13)
  2. 절대공간은 존재할까? (8/20)
  3. 아인슈타인과 가우스와 비유클리드 기하학 (8/27)
  4. 드디어 일반상대성이론이 만들어지다 (9/3)
  5. 일반상대성이론을 푼다는 것 (9/10)
  6. 일반상대성이론의 수용, 오해, 해석 (9/17)
  7. 르메트르와 앨퍼 : 허블과 가모프에 가려진 우주론자들 (9/24)
  8. SF와 상대성이론 (10/1)
  9.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론 (10/8)

    과학칼럼은 매주 화요일 업로드됩니다.

글 : 김재영 (녹색아카데미)
2019년 8월 20일

고풍스러운 전축을 상상해보자. 전축 위에는 LP판이 천천히 돌고 있다. 그 한 가운데에 물이 반쯤 찬 유리컵이 놓여 있다. 유리컵은 손잡이가 없고 좌우대칭이다. 유리컵이 LP판을 따라 돌면서 물 표면이 오목하게 들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뉴턴이 라이프니츠에게 말한다.

[그림 1] 뉴튼의 회전하는 양동이 사고실험 (사진 : 과학동아)

뉴턴 : 자 봐, 물 표면이 오목하게 들어갔지?
라이프니츠 : 그게 뭐?
뉴턴 : 운동이란 건 항상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네가 가만히 있어야 내가 시속 10km로 뛴다고 말할 수 있잖아. 그치?
라이프니츠 : 아 글쎄, 그게 어쨌다는 거야?
뉴턴 : 아휴, 답답해. 지금 물이 ‘회전운동’을 하고 있잖아. 그래서 원심력 때문에 표면이 오목해진 거고. 근데 도대체 뭘 기준으로 운동을 하고 있는 거냐고?
라이프니츠 : 전축? 지구? 그거야 움직이지 않는 무언가를 기준으로 하고 있겠지.
뉴턴 : 지구 밖에서 유리컵을 돌려도 물 표면은 똑같이 오목해질 텐데? 그러니까 내 말은, 물이 ‘절대공간’을 기준으로 돌고 있다는 거야. 
라이프니츠 : ……

아이작 뉴턴과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가 전축이 있던 시대에 살았더라면 아마 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까. 실제 뉴턴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 아래 <원리>)에서 이와 비슷한 ‘양동이의 사고실험’을 예로 들었다.(그림 2) 회전하는 양동이에서 오목해진 물 표면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물이 공간 자체에 대해 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원리>에서 뉴턴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새롭게 제시했다. 

“나는 시간, 공간, 장소, 운동 등은 정의하지 않는다. 이 모두가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보통의 사람들이 이러한 양들을 생각할 때, 감각할 수 있는 물체와의 관계 속에서만 이러한 개념들을 생각한다는 점이다. (중략)

I. 절대시간, 참된 시간, 수학적 시간은 그 자체로 그 본성으로부터 외부에 있는 어떤 것과 관계를 맺지 않고, 균일하게 흐른다.
다른 이름으로 지속이라 한다. 상대시간, 겉보기 시간, 상식적 시간은 운동을 통해 감각적이고 외부적인(정확하든 불균일하든) 방식으로 지속을 측정하는 것이다. 보통 참된 시간 대신에 쓰인다. 시,일,년 등이 그것이다.

II. 절대공간은 그 본성상 외부에 있는 그 어떤 것과도 관계를 맺지 않고 항상 똑같이 확고부동하다.
상대공간은 다소 변동될 수 있거나 절대공간의 측도이다. 상대공간은 우리 감각이 물체의 위치로부터 확정하는 것이며, 대개 확고부동한 공간으로 간주된다. 지상의 공간이나 공기 중의 공간이나 별 사이의 공간 등이 그것이며, 지구에 대한 그 위치로부터 정해진다. 절대공간과 상대공간은 모양과 크기 면에서 똑같지만, 숫자상으로도 똑같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지구가 움직인다면, 지구에 대해 상대적으로 항상 정지해 있는 공기의 공간은 한 때는 공기가 지나가는 절대공간의 한 부분이 되지만, 다른 시점에서는 다른 부분이 된다. 따라서 절대적으로 이해했을 때, 공기의 공간은 끊임없이 변할 것이다.”

– 뉴턴, <원리>


뉴턴 이전에는 운동이라는 개념이 어떤 종류의 변화이든 변하는 것을 다 가리켰지만, 뉴턴은 운동이라는 것은 단지 ‘위치의 이동’(motus localis)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물질의 양’(massa)이 존재하는 일종의 그릇이 필요했는데, 바로 그것이 ‘공간’이었다.

뉴턴이 제안한 공간의 개념은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시간과 공간의 4차원 연속체로 확장되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다름 아니라 바로 이 4차원 시공간이 어떻게 물질로부터 정해지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물질이 어떻게 운동하는지를 말해 주는 가장 아름다운 이론이었다. 공간 개념을 둘러싼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논쟁을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일반상대성이론의 참된 의미를 더 잘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림 2] (1)멈춰있던 양동이의 줄을 꼬았다가 풀면 (2)처음에는 양동이만 돌다가 (3)물과 양동이가 함께 돌다가 (4)마지막으로 마찰에 의해 양동이가 멈추고 나면 물만 돈다. 물이 양동이를 기준으로 상대적인 운동을 한다면 (3)의 경우처럼 함께 회전할 때 물 표면이 오목하게 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뉴턴의 양동이 사고실험은 물의 운동이 절대공간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실험이다. (사진 : ResearchGate)

시공간은 실체인가 관계인가

공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철학자들의 답변은 크게 실체론(substantivalism)과 관계론(relationalism)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대략 말해서 어떠한 형태로든 (선험적으로든 자연과학적이든 유물론적이든) 공간과 시간의 실재성을 주장하는 반면, 후자는 공간이나 시간의 문제를 마치 우정이나 사랑처럼 물체나 사건 간의 관계로 ‘환원’하고자 하는 입장이다. 

전자의 관점(실체론)을 대변하는 이로서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이나 데카르트, 스피노자, 뉴턴, 변증법적 유물론 등을 들 수 있고, 후자(관계론)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라이프니츠, 마흐 등을 들 수 있으며, 그 중간 정도에 놓을 수 있는 철학자로서 칸트, 푸앵카레, 베르그송, 라이헨바흐, 그륀바움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그 각자의 주장은 그렇게 쉽게 이분법적으로 분류하기에는 훨씬 미묘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선천적 순수직관형식’으로 설정한다. 우리의 순수이성이 대상을 인식할 때 물자체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형식을 매개로 감각에 주어진 것로부터 개념을 가지게 된다는 점에서 시간과 공간은 물자체의 속성이 아니지만, 경험으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며, 그 어떤 개념이나 범주와도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공간’이라는 용어에서 직관적으로 상기하는 개념은 다음 절에서 살펴볼 뉴턴이 제시한 절대공간의 개념이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우주는 좌우, 앞뒤, 위아래로 무한히 펼쳐져 있는 허공 속에 외따로 혼자 떨어져 있는 별들이 다른 별들의 중력을 느끼며 쉬지 않고 움직이는 “허공과 별”의 우주이다. 

데카르트는 물질을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res extensa)으로 이해한다. 물질이 곧 공간이라는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데카르트는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 즉 진공(vacuum)을 인정할 수 없었고, 그 대신 공간은 곧 충만(plenum)이라고 주장해야 했다. 

[그림 3]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1596~1650 (사진 : wikipedia)

그러나 뉴턴에게는 물질과 공간은 같지 않다. 공간 속에 물질이 들어 있으며, 가장 이상화된 경우로서 전혀 부피를 차지하지 않는 물질(질점)을 상정할 수 있다는 것이 뉴턴의 생각이다. 물질을 대변해 주는 것은 단지 ‘물질의 양’(質量, quantity of matter, massa)일 뿐이며, 물질은 공간 속에 들어 있는 무엇이다.

뉴턴의 ‘텅 빈 절대공간’이라는 관념은 곧 라이프니츠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뉴턴의 제자 클라크(Samuel Clarke 1675-1729)와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는 편지교환을 통해 공간을 물질과 분리시켜 사고할 수 있는지 논쟁했다. 새뮤얼 클라크는 뉴턴의 <광학>(Opticks)을 라틴어로 번역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원래의 서신교환은 라이프니츠는 프랑스어로 쓰고 클라크는 영어로 썼는데, 출판된 책은 두 쪽의 편지를 모두 상대방의 언어로 번역해서 실었다. 라이프니츠의 편지는 클라크가 직접 영어로 번역했고, 클라크의 편지는 드라로슈가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라이프니츠 사후인 1717년에 <A Collection of Papers, Which passed between the late Learned Mr. Leibnitz, and Dr. Clarke, In the Years 1715 and 1716, Relating to the Principles of Natural Philosophy and Religion>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라이프니츠는 먼저 ‘시간’을 사건들의 ‘먼저’와 ‘나중’으로 이해해야 함을 지적했다. 물질적 존재들 사이에 나타나는 두 사건을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사람들이 꽉 차 있는 강의실과 어지럽게 글씨가 가득 차 있는 칠판 외에는 아무도 없는 텅 빈 강의실을 생각해 보면, 두 사건 사이의 선후 관계가 분명하다. 이와 같이 사건들의 진행을 눈여겨본다면, 항상 먼저 발생하는 사건과 나중에 발생하는 사건을 구분할 수 있다. 

이런 논리를 확장하면 모든 사건들에 대해 일련의 순서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순서가 다름 아니라 시간이다. 시간은 이렇게 사건들의 선후를 가르는 기준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간은 사건들 사이의 선후 관계를 모두 모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물질이 없다면 사건이 없을 것이고, 사건이 없다면 그런 선후 관계도 없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시간이란 것을 말하는 것이 전혀 무의미하게 된다. 

[그림 4] 라이프니츠 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사진 : wikipedia)

이제는 물체들이 절대적인 공간 속에서 모두 나란히 옆으로 옮겨지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원래의 물체들의 배치를 ‘세계1’이라 하고, 모든 물체들이 나란히 옆으로 옮겨진 새로운 배치을 ‘세계2’라 하자. 모든 논증은 서로 동의하고 공유하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

클라크와 라이프니츠의 서신교환에서는 (1) 모든 것에는 그래야 하는 필연적 이유가 있다는 원리(충분한 이유의 원리 principium rationis sufficientis)와 (2) 구별할 수 없는 것은 동일하다는 원리(principium identitatis indiscernibilium)가 그 공유된 전제였다.

이 두 원리에 비추어 ‘세계1’과 ‘세계2’를 비교해 보자. 우리는 ‘세계1’에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세계2’에 살고 있는 것일까? 모든 물체들이 나란히 옆으로 옮겨진 것이므로, 사실 ‘세계1’인지 아니면 ‘세계2’인지 판가름할 수 있는 필연적 이유가 없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우리가 직접 공간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물체들만 보아서는 ‘세계1’과 ‘세계2’를 구별할 방법이 전혀 없다. 따라서 앞의 두 원리에 동의한다면, ‘세계1’과 ‘세계2’는 같은 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렇게 해서 라이프니츠는 공간이란 사실상 물체들 사이의 관계일 뿐임을 명쾌하게 증명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므로 물질이 없다면 사건도 없고 ‘공간’도 없다. 텅 빈 채 누군가 물질이 채워 주길 기다리고 있는 그런 ‘공간’은 없다. 물질세계가 저기가 아니라 여기에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므로, 결국 텅 빈 절대공간이라는 관념은 무의미한 것이 된다.

얼핏 보면 공간에 대한 실체론과 관계론의 논쟁은 스콜라적인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차피 실체론에서도 공간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눈에 보이게끔 공간을 인지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험적으로 확인되는 부분에 관한 한 실체론의 주장과 관계론의 주장은 똑같은 내용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두 쪽 다 공간에 대한 옳은 견해일까? 그런데 실체론과 관계론은 대등한 입장이 못 된다. 적어도 ‘오컴의 면도날’을 갖다 댄다면 명백하게 실체론이 더 불리한 입장에 있다. 굳이 공간을 실체라고 주장할 필요가 없는데도 실체로서의 공간을 가정하는 것은 불필요한 형이상학적(존재론적) 가정의 낭비일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아서는 분명히 라이프니츠가 논쟁의 승리자인 듯했다. 클라크의 반박은 잘못된 이해로 가득했고, 논점도 불분명했다. 하지만 클라크의 스승인 뉴턴은 이미 1689년에 실체론을 옹호하는 강력한 논변을 제시했었다. 앞서 나온 양동이 논변이다. 회전하는 물체에 작용하는 원심력을 보면, 그 운동이 절대적인 참된 운동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것이 뉴턴의 주장이었다. 이른바 관성운동(inertial motion)의 경우에는 물체가 정지해 있는 경우와 일정한 속도로 반듯하게 움직이고 있는 경우를 판가름할 방법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회전과 같은 비관성운동(non-inertial motion)의 경우에는 무엇이 움직이는 것이고 무엇이 움직이지 않는 것인지 명료하게 말할 수 있다. 즉 회전한다는 사실로부터 절대적인 참된 운동과 물질들 사이의 상대적인 운동을 구분할 수 있으며, 이로부터 실체로서의 절대공간이 존재함을 추론할 수 있다. 절대적인 가속도는 절대공간의 존재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절대공간은 진짜 있을까

라이프니츠는 뉴턴의 논리에 제대로 반박을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물이 돌고 있다는 것도 사실은 절대공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른바 항성천구 내지는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에 대해 돌고 있는 것이라고 보지 못할 까닭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19세기 독일로 훌쩍 넘어가서 에른스트 마흐의 논의를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림 5] 마흐 Ernst Mach. 1838~1916 (사진 : wikipedia)

마흐의 아이디어는 우주에 있는 멀리 떨어져 있는 별이나 은하들이 물에 모종의 힘을 작용하기 때문에 물 표면이 오목해진다는 것이다. 만일 물질이 전혀 없다면 그리고 단지 유리컵 속의 물만 있다면 물이 제아무리 돈다고 하더라도 물 표면은 오목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 표면이 오목해지지 않는다면 어떤 방법으로도 절대운동인지 아닌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자연스럽게 절대공간의 유무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뉴턴의 사고실험을 고려하더라도 실체론적 공간 개념을 양보할 필요는 없다.

이 문제는 상대성이론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쟁점으로 다루어졌다. 특히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의 사상적 또는 원리적 뿌리에 마흐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아인슈타인의 생각은 1952년에 출판된 <상대성: 특수 및 일반 이론>의 15판 서문에서 잘 드러난다.

“나는 이 개정판에 다섯 번째 부록으로 덧붙인 글에서 공간 일반의 문제와 상대성이론의 관점의 영향에서 비롯된 공간에 관한 우리 관념의 점진적인 변화에 대한 내 견해를 제시했다. 나는 시공간이 물리적 실재인 실제 물체들과 무관하게 독자적인 존재를 부여할 수 있는 어떤 것이어야만 하는 것이 아님을 보이려 했다. 물체는 공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체들이 공간적으로 연장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텅 빈 공간’이란 개념은 그 의미를 잃어버린다.”

아인슈타인은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논쟁에 대해 라이프니츠의 편을 들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정말 일반상대성이론이 실체론이 아니라 관계론을 지지하는 것일까? 1980년대 이래 물리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살펴보면서 그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냈다. 다음 편에 전개될 비유클리드 기하학 이야기에서 바로 이 문제를 상세하게 다룰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됩니다. – 제3회 “아인슈타인과 가우스와 비유클리드 기하학” (8/27)

[그림 6] 뉴턴 Isaac Newton. 1642~1726 (사진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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