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를 위한 북한안내와 통일론

녹색문명공부모임 8월 모임(8/10)에서는 서의동기자(경향신문)의 “다음 세대를 위한 북한 안내와 통일론”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의동기자 소개 : 경향신문 논설위원. 1999-2002년 통일부와 외교부에서 취재. 2011-2014년 도쿄 특파원.
* 북한 관련 취재
신의주. 2000년 4월 10-12일. 우리민족서로돕기 대북지원 점검 동행.
평양. 2000년 8월 15-18일. 제1차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 취재.
함경남도 신포. 2002년 8월 6-8일. 북한 경수로 원자력발전소 취재.
금강산 방문. 1999, 2002, 2003년.
* 저서
[다음 세대를 위한 북한안내서], 2018, 너머학교.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2019, AK커뮤니케이션즈.

서의동기자의 강연을 요약하고, 사진자료와 설명을 추가하여 정리하였습니다. 그럼 이야기 시작합니다.


강연 정리와 요약, 사진 편집 :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2019년 8월 12일

<그림 1> 평양 시내 대표적 주거지역인 ‘동대원 구역’ 당창건기념탑 일대의 2005년 모습(왼쪽)과 지난 11일(2018년) 동일한 지역을 촬영한 모습이 대조적이다. ‘잿빛 도시’ 평양의 놀라운 변화상을 두고 김정은 정권의 체제 선전용이라는 해석도 있으나 김정은 집권 이전인 2000년대 이후 꾸준한 도시 개발과 정비가 이루어진 결과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지닌다. (사진: 평양=한국일보 자료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1.다음 세대를 위한 북한 안내

북한의 변화

2002년 이전과 현재를 비교하면 크게 달라진 점은 도시의 색깔, 전력사정, 취재 통제 등이다. 콘크리트색이었던 평양의 아파트가 파스텔톤으로 바뀌었고(그림 1), 전력사정은 훨씬 좋아졌다.

약 20년 전에는 수 천 명이 들어가는 공연장에서 한여름에 공연을 할 때에도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았었는데, 최근 평양 시내에 대동강 수산물 시장이 생긴 것을 보면 전력 사정이 크게 호전된 것으로 보인다.

취재 통제는 이제 거의 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숙소 밖으로는 마음대로 나갈 수도 없었는데 이제는 이른 아침 길거리에서 시민들과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그림 2> 평양 대동강수산물 시장. 2018년 7월 30일 문을 열었다. (사진 : 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시대의 북한

일본의 북한전문가인 와다 하루키 교수는 북한을 두고 ‘유격대 국가’라고 지칭한 바 있다. 김정은시대의 현재 북한은 ‘유격대국가’에서 정상국가로 변모 중이다. 우선 정상화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4월 28일에 기념하고 있던 군창건일을 원래 날짜인 2월 8일로 바로 잡았다. 

북한식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있다. 협동농장, 공장, 기업에서 인센티브를 도입하고 전국 각지에 특구(개발구)를 조성하였다.

예전에는 절대 있을 수 없었던 ‘고개 숙인 최고지도자’의 모습을 드러냈다. 2017년 1월 1일 신년사 도중, 작년 계획에 대한 성과 부족에 대해 사과했는데 이는 김정은시대 이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남한에서도 유명한 모란봉악단은 2012년 7월 만들어졌다. 당시는 김정은 취임 후 6개월 후로, 서양음악도 연주하고 활동도 자유롭게 구사하는 새로운 악단이다. 체제 선전 노래가 많지만 그렇지 않은 음악도 선보이고 있으며, 대중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림 3> 모란봉 악단. 2016년 5월 11일 북한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7차 노동당 대회 폐막 축하 공연이 열린 가운데 북한판 걸그룹인 모란봉악단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 : 한국일보. AF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면 공연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북한 체제 변화

김영환은 2018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2018년 5월 7일)에서 북한에 대한 시각을 아래와 같이 드러냈다.(김영환 : ‘주사파의 대부’로 불리기도 했으나 북한 방문 이후 실망을 하고, 현재 북한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김정은을 믿지 못하지만 그가 헛소리를 한 적은 없다. 그는 집권 6년 반 동안 북한의 경제 개혁에 집중했다. 집단농장을 농가단위로 바꾸는 ‘포전담당제’를 도입(2012년 6.28 조치)하였고, 2년 뒤 여러 지역을 조사해 보니 대부분 완료 상태였다. 억압 조치라고 볼 만한 정부 발표나 행정조치, 간부들의 움직임이 없었다. (김정일 때는 농업 개혁정책을 펼치고는 6개월만에 개혁에 앞장선 사람들을 반동으로 몰기도 했다.”

북한 체제는 시장경제로 조금씩 옮겨감으로써 국가 수익을 높이고자 애쓰고 있다. 북한은 1980년대까지는 사회주의식 계획 경제를 유지했었다. 이때는 국가가 교육, 의료, 생필품과 식량을 무상으로 제공하였다.

1990년대 중반에는 식량난으로 인해 무상공급 체제가 붕괴되었고, 장마당이 출현하면서 시장경제가 확산되었다. 2000년대 이후가 되면 시장경제가 공식화된다. 시장이 합법화되고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병행하는 체제가 되었다. 이로써 경제적 격차가 확대되고 부정부패 등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북한 청소년들의 생활

북한은 12년제 의무교육제이다. 유치원 높은반 – 소학교 5년 – 초급중학교 3년 – 고급중학교 3년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년단 가입은 의무이다. 담임선생님은 바뀌지 않는다. 장단점은 있겠지만, 학생의 적성과 상황 등을 담임선생님이 완전히 파악할 수 있으며, 선생님을 부모처럼 친구를 형제처럼 여기는 문화가 있다.

소조(동아리) 활동이 활발하다. 1인 1악기를 연주할 수 있도록 하며 체육활동도 활발히 한다. 군사훈련과 농촌지원 활동을 하면서 단체활동을 한다.

대학시험은 단 한번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재수생은 없다. 군대 제대 후 혹은 직장을 다니다가 대입시험을 볼 수 있다. 고급중학교 졸업 후 바로 보는 대입시험(직통생)은 좀 더 어려우며, 떨어질 경우 재수는 불가능하다.

<그림 4> 북한 교원대학의 로봇교육, 영어교육 (사진 : SBS뉴스. 이미지를 클릭하면 뉴스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북한 교육 현장과 발전 전략

김진호기자(경향신문)의 방북기 : “입학생 실력은 김일성대학보다 낫다”(평양교육대학 학장). 북한은 고등교육보다, 지능의 80% 이상이 형성되는 12세 이하 교육에 방점을 둔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최첨단 교육시설을 완비하고 교육을 한다. 교육의 핵심 주제는 종합지능과 과학기술이다. 

북한은 ‘개혁개방과 비핵화 – 경제 성장 – 체제 안정’이라는 중국과 베트남이 이미 성공한 바 있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여 국제사회로 복귀하고,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남북 경제협력을 본격화하고자 한다. 미래세대를 육성함으로써 과학기술에 의한 경제발전을 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북한은 특히 이공계를 중시하는 정책을 통해 과학자를 특별대우한다. 2012년에는 과학자 전용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과학기술전당 내에는 과학자 전용 호텔이 있다. 또한 은하과학자 거리, 미래과학자 거리처럼 과학자, 기술자를 위한 신도시를 조성했다.

북한에서는 청소년 장래희망 1위가 과학자이다. 북한은 교육개혁을 통해 수학과 과학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그림 5> 평양 미래과학자 거리 (사진 :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그림 6> 평양, 과학자를 위한 미래상점 (사진 : 통일뉴스)

북한의 ICT 현황

북한은 핸드폰이 일상화되면서 장마당에서 변화가 일고 있다. 핸드폰을 통해 가격 정보 등이 공개되기 때문이다. 북한의 핸드폰 가입자 수는 약 5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5분의 1에 달한다. 비싸지만 사업도구이기 때문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은 안되지만 인트라넷을 통해 소통한다.

아리랑, 진달래 등 브랜드는 세계시장 휴대폰과 성능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용도는 문자메시지(통보문), 게임, 내비게이션, 사진 및 동영상 촬영, 음악 감상 등이다. 노동신문이나 각종 도서 열람도 가능하기 때문에 지식 경제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림 7> 북한의 핸드폰 ‘진달래 3호’. 만경대 정보과학기술에서 2017년 6월 설계, 제작했다고 알려져있다. (사진 : 나무위키)
<그림 8> “요리대회를 지켜보며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는 평양 시민들” (사진 : BBC news 코리아)

북한의 문화 

북한은 전통악기를 개량하여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다. 장새납, 고음저대, 어은금 등이 있다. 장새납은 태평소를 개량한 것올 12음계 연주가 가능하다. 고음저대는 플루트와 비슷한데 박달나무로 만들고 금속키를 부착해 키옮김 속도를 높였다. 어은금은 만돌린 모양으로 생긴 4줄 악기이다.

북한영화는 대체로 진지한데, 2012년 개봉된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Comrade Kim goes flying)는 코믹영화이다. 영국, 벨기에, 북한 합작 영화로, 시골탄광 여성광부 김영미가 교예단(서커스) 배우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2012년 37회 토론토 영화제에 초청돼 해외에 처음으로 공개되었으며, 2018년 7월 부천 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공개되었다.

<그림 9>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사진 : Daum 영화, 이미지를 클릭하면 영화 클립을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을 알기 위한 바람직한 태도

북한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역지사지, 즉 상대방의 처지에서 헤아려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북한알기’도 친구를 사귈 때처럼 주의와 주장만이 아니라 시시콜콜한 일상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간에는 우리가 모르는 이면사가 적지 않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7726명. 1952년과 1972년 사이에 북파됐다가 죽거나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다.(2000년 국감 때 민주당 김성호의원이 밝힘)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북한도 체제 보호때문에 공개하지 않는 일이 훨씬 많다.

2.다음 세대를 위한 통일론

통일이냐 평화로운 분단이냐

양안관계(중국, 대만)는 남북관계에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1987년 이후 친척 방문을 시작으로 자유왕래는 물론 결혼까지 할 정도로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활발하다. 2010년에는 중국과 대만간 경제협정을 체결하였다.

그 사이, 1995년~1996년에는 미사일 위기가 있었다. 최근 시진핑 주석이 ‘대만 흡수통일’을 공언하기도 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을 활용하려고 하기때문에 어려움이 적지 않다.

경제, 사회 교류협력은 한계가 많다.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정치, 군사적 긴장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어렵다. “항구적인 평화는 통일없이는 불가능”하다.(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통일이 되면 막대한 분단비용과 징병제 폐해를 없앨 수 있다. 국방비를 앞으로 10년간 GDP대비 2.0%로 낮춘다면 200조 원을 아낄 수 있다. 현재 GDP의 2.6%는 평화배당금으로 활용되고 있다.

1980~1995년 5월까지 사망한 장병은 8951명(매년 577명)이다. 2018년에도 86명이 사망(자살 56명)했다. 남북 분단은 정치적 비용도 크다. 남북관계가 민의를 왜곡할 있기 때문이다.(1997년 총풍사건. 영화 [공장]의 모티프가 됐다.)

근본적인 분단 비용은 정의보다 불의와 기회주의가 더 득세하게 되는 역사이다.
“분단은 형제 간 증오와 대결을 부추겨오면서 민족 전체의 정신적 불구화를 초래했다. 형제간의 증오에 편승해 친일세력이 등장할 수 있는 밑받침 역할을 했다. 도덕적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민족 고유의 정의 관념을 파괴하고 자신의 이기적 이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표변할 수 있는 기회주의 문화”를 만들었다. – 이종석 전통일부 장관. [통일을 보는 눈] (개마고원) 

<그림 10> 이종석, 2012. [통일을 보는 눈] (사진 : YES24알라딘)

오스트리아의 통일 사례

오스트리아는 나치의 독일제국에 합병된 상태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패전하면서, 4개 연합국으로부터 분할통치되었다.(그림 10) 38선으로 남북을 나눠 미, 소가 분할 점령했던 한반도와 흡사한 경우이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의 경우에는 연합국 군정과 오스트리아 임시정부가 처음부터 공존했다.

패전 직전 전직 총리 카를 레너(사회당)가 친나치 계열을 뺀 모든 정파를 아우른 임시정부를 세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카를 레너는 여운형과 비슷한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보수계 국민당은 1945년 11월 총선에서 50%를 득표해 제1당이 되었고 그후 단독정부 수립 대신 사회당, 공산당과 ‘대연정’을 구성했다. 분단 위기를 딛고 통일독립을 이루려면 정치권이 단합해야한다는 시국인식이 좌우합작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그림 11> 오스트리아와 빈의 연합국 통치령, 1945-1955년. (사진 : 위키피디아)

소설가 최인훈도 오스트리에 주목한 바 있다. 그의 소설 [총독의 소리]에는 지하에서 활동하는 일본 총독의 목소리를 빌어 이렇게 말한다. “반도인들은 자신들을 분단 독일에 비유하면서 통일을 논하고, 구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비겨 내란의 전국을 말하려 합니다. 염치없고도 눈 없는 자들입니다. 반도는 강국이 아니었고, 반도는 아 제국(일본)의 점령군과 교전한 적이 없습니다. 반도는 독일도, 베트남도 아니며 가능적 오스트리아입니다.” (소설 내에서 일본 총독의 말 중. 최인훈, [총독의 소리])

<그림 12> 최인훈, 소설 [총독의 소리] (사진 : 알라딘YES24)

한반도 중립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코스타리카의 중립화 예를 보자. 코스타리카는 군대가 없다. 국제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 영세중립국으로 ‘중앙아메리카의 스위스’로 불린다. 1812년에 스페인에서 독립했으나 내전과 쿠데타가 자주 일어났다. 1948년에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대농장주 호세 페게레스는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군대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코스타리카 북쪽에는 니카라과가 위치하고 있다. 1979년 이곳에서 산다니스타 혁명 정부가 수립되었고, 이어 반군이 조직되었는데 미국이 이들을 지원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은 반군 지원을 위한 군사기지가 필요했고 이를 코스타리카에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코스타리카는 1983년 국제분쟁에 개입하지 않는 영세중립국을 선언하며 미국의 압력을 막아냈다.

한반도의 중립화 논의는 역사가 길다. 구한말 개화사상가 유길준과 고종이 제안한 바 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해방 후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중립화를 주장했다. 2012년에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제안했다.

북한도 19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 구상에서 블록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김정일은 “통일된 한반도가 ‘스위스식 무장중립’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정부 관료, 정치인과 학자, 군인들 사이에서도 논의된 바 있다. 미국의 알버트 웨드마이어 장군은 1947년 7월, “한국의 영구적인 군사중립화 추구”를 제안하기도 했다.

요한 갈퉁(평화학자)은 1989년에, 4대 강국과 유엔이 협조하여 통일을 전제로 하는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림 13> 유길준 (사진 : 위키피디아)
유길준(1856-1914)는 1885년(고종 22년)에 [중립론]을 집필. 갑신정변 연루를 이유로 당시 미국 유학 중 국내로 소환되었고, 이때 [중립론]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일본과 청 중 한쪽이 일방적으로 강하지 않아 유길준의 중립론이 묵살되었으나, 세력이 변하면서 1897년 대한제국 등장 이후 고종을 중심으로 다시 추진되었다.(설명 : 국사편찬위원회)

남한의 역대 정부는 한반도의 중립화 통일방안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한미동맹에 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영세중립화를 추구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영세중립화는 외세 침략을 받을 가능성이 크고, 중립화가 해당 국가뿐만 아니라 이웃나라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는 경우에 가장 필요하다. 

한반도는 열강에 둘러싸여 있고, 식민피지배 역사가 있고, 분단상태라 전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바로 한반도에 필요한 것이 영세중립국 선언이다. 지금도 열강들의 이해가 충돌하면서 우리가 피해를 보고 있다. 사드 갈등, 미국 중거리미사일 배치 문제 등이 그렇다.

남북 통일논의의 첫 단추 6.15 선언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위원장이 6.15선언을 한 것이 2000년이다. 이때 ‘남과 북은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 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
이때 우리 정부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자주, 평화, 민주 3대 원칙 하에서 3단계로 추진하는 것이었다.

  • 1단계 (화해협력 단계) : 남북이 상호 실체를 인정하고 다각적인 교류협력을 추진.
  • 2단계 (남북연합) : 상호신뢰와 의존도가 커지면 적절한 시점에서 남북연합 선포. 남북정상회의, 남북각료회의, 남북평의회, 공동사무처 등이 남북 공동의 업무를 수행.
  • 3단계 (통일완성) : 여건이 무르익은 시점에서 통일헌법을 마련하고 민주적 총선거를 실시해 통일정부와 국회를 구성.
<그림 14> 6.15선언 기념 티셔츠.
2000년 당시 회담 후 김대중-김정일 캐리커처 티셔츠가 제작돼 인기를 얻기도 했다.(사진 : 연합뉴스, 프레시안)

백낙청의 남북연합론

백낙청은 비핵화와 남북연합을 동시에 추진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남북연합이 북한의 안전보장 장치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한은 자신들이 리비아의 전철을 밟게 될까 두려워 비핵화를 주저한다는 것이다. 남북연합이 일단 이루어지고 나면 미국은 한국에 대해 적대행위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북한에 대해서도 미국이 적대정책을 펴기 어려워진다는 계산이다.

통일을 위한 준비

통일을 위해서는 우선 관용과 포용이 필요하다. 고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는 1994년 10월 한겨레 1면을 통해 남한이 가져야할 태도에 대해 말했다.“북한이 동독만큼 되기를 요구하려면 남한도 서독만큼 돼야하지 않을까? 서독은 언제나 정부 예산에서 국민 보건과 사회복지 및 보장을 위한 지출이 군사비의 거의 두 배가 됐다. 남한은 그동안 거꾸로 군사비가 보건 사회보장 및 복지를 위한 지출의 3배를 넘었다. 무슨 자격으로 북한한테만 동독처럼 되기를 요구할 수 있을까? – 고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 1994년 10월 8일 한겨레 1면 칼럼.

남한의 군사주의 문화가 해소되어야 한다. 박노자교수는 남한에 일상적으로 퍼져있는 군사주의 문화를 이렇게 지적했다.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안보보다 탈군사화가 국정의 핵심과제로 부상해야 한다. 탈군사회를 이루자면 한국 사회는 먼저 몇 가지를 이해해야 한다. 군복 입고 해병대 훈련을 받는 초등학교 꼬마들은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볼 수 있다는 점, 상명하복 하는 위계질서의 내면화는 개인과 사회를 황폐화시킨다는 점, 대한민국이 미군 무기상들에게 건네는 돈의 절반이라도 남북경제 협력에 썼다면 이미 남북 평화공존의 시대에 진입했을 것이라는 점 등을 인지해야 한다.” – 박노자. [전환의 시대] 중.

<그림 15> 박노자 [전환의 시대] (사진 : YES24알라딘)

박명림교수는 우리가 가진 소국의식과 피해사관에서 벗어나야한다고 말한다. “한국 민족은 항상 국제 분단의 피해 때문에 전쟁이 난 것처럼 얘기하지만 분단되었다고 전쟁한 나라는 몇 나라 안됩니다. … 이승만, 김일성이 상호 방문하지 못해 세계 냉전을 앞당겨 고착시키고 전쟁까지 치르면서 얼마나 무고한 세계 청년들이 죽어야 했습니까. … 우리는 그 사실에 대해 사과하거나 반성한 적이 없습니다. 일본이 철저한 과거청산을 하지 못하고 세계에 당당하게 복귀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전쟁 때문입니다.” – 박명림교수(연세대학교)


*강연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강연 중간중간 그리고 발표 이후에도 토론이 1시간 30분 정도 더 이어졌습니다. 북한과 통일 문제에 대해 더 관심있으신 분들께서는 서의동기자의 책 [다음 세대를 위한 북한안내서](너머학교)와 곧 출간될 [다음 세대를 위한 통일론]을 참고해주세요.

서의동기자의 책은 더 재밌으니 꼭 읽어보시기를 강추합니다. 조선시대 연행사와 김구선생의 ‘백범로드’부터 시작하는 도입부가 아주 흥미롭습니다. 이야기가 술술 풀리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북한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일텐데요, 책을 읽고 강연을 들어보니 우리가 예상보다 북한에 대해서 아는 것도 많고 알아야할 필요성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를 공유하고 같은 말을 쓰고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운명이라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림 16> 서의동 [다음 세대를 위한 북한안내서] (사진 : 알라딘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