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의 공리와 새로운 존재론
고전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이론이 동역학(dynamics)이라 하면, 초미의 관심사는 상태를 계산하는 것입니다. 해밀턴을 따라 고전역학의 상태(더 정확히 말하면 운동의 상태)를 특정 시각에서의 위치와 운동량의 값으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즉 $(q(t), p(t))$가 시간 $t$에서의 상태입니다. 이 상태는 해밀턴 방정식 $$\frac{\mathrm{d}q}{\mathrm{d}t}= \frac{\partial H[q, p]}{\partial p} , \quad \frac{\mathrm{d}p}{\mathrm{d}t}= -\frac{\partial H[q, p]}{\partial q}$$에 따라 변화합니다. 해밀터니언 범함수가 $$H[q, p] = \frac{p^2}{2m} + V(q)$$로 주어진다면, 해밀턴 방정식은 결국 뉴턴 방정식과 동등합니다.
고전역학에서 상태의 변화는 언제나 연속적이며 예측가능하며 인과적입니다. 현재의 상태를 알면 해밀턴 방정식과 같은 운동방정식을 풀어서 미래의 상태이든 과거의 상태이든 언제라도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림 출처: Penrose, R. (1990). The Emperor's New Mind]
그런데 다른 모든 면에서 과거의 이론을 넘어서는 탁월한 동역학인 양자역학에서는 상태의 변화가 좀 이상해집니다. 이를 가장 잘 정리하고 있는 것이 폰노이만의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를 다룬 1932년 저서입니다.
J. von Neumann (1932) Mathematische Grundlagen der Quantenmechanik. Springer.
폰노이만은 이 저서에서 양자역학의 상태 변화에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말합니다.
[출처: J. von Neumann (1932) Mathematische Grundlagen der Quantenmechanik. Springer. S. 186]
첫 번째 상태 변화[흔히 독일어 표현을 따라 (1.)으로 표기]는 측정에 따른 임의적인(willkürlich) 변화로서 $$U \rightarrow U' = \sum_{n=1}^{\infty} (U\varphi_n , \varphi) \cdot P_{[\varphi_n]}$$과 같고, 두 번째 상태 변화는[독일어 표현을 따라 (2.)으로 표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동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후자에서는 $$U \rightarrow U_t = e^{-\frac{2\pi i}{h} t H} U e^{\frac{2\pi i}{h} H}$$와 같이 상태가 변화합니다.
내용은 꽤 테크니컬해서 더 설명하려면 조금 어려운 면이 있지만, 주장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상태 변화의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1.)에서는 측정의 순간에 상태가 불연속적으로 변화하는 반면, (2.)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태가 연속적으로 변화합니다. 후자의 상태변화는 소위 시간 의존 슈뢰딩거 방정식을 따라갑니다. 일반적으로는 굳이 슈뢰딩거 방정식을 쓰지 않더라도 해밀터니안만 알면 처음 상태로부터 나중 상태가 유일하게 규정됩니다. 즉 (2.)의 상태변화는 고전역학의 경우처럼 지금 상태를 알면 나중 상태를 완전하게 알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 상태변화의 원리 또는 운동방정식이 다른 것으로 바뀌더라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1.)에서 말하는 측정의 순간입니다. 슈뢰딩거는 1935년에 발표한 논문 "양자역학의 현재 상황"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측정은 ?함수의 연속적인 시간적 변화를 지배하는 법칙을 따르지 않고, 아무 법칙의 지배도 받지 않으며 측정결과에 의해 서술되는 전혀 다른 변화를 겪는다.” (Schrödinger 1935)
그러면서 측정의 전후에 기대값 목록이 불연속적으로 변화함을 강조합니다.
1. 측정에 따른 기대값 목록의 불연속 변화는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측정이 의미를 가지려면 여하튼 측정값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2. 이 불연속 변화는 인과적 법칙에 지배를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측정된 값에 따라 달라지며, 측정된 값은 미리 결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3. 이 변화에는 일종의 지식의 손실이 생기지만, 지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상이 변화해야 하며, 이는 예측할 수 없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측정의 전후에 상태가 어떻게 규정되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해집니다.
<자연철학 강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공리4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공리4: '측정'에서 상태의 변화이것이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에서는 다음과 같이 다르게 표현됩니다.
대상이 상태 $$\Psi = \sum_{i} c_i \phi_i$$에 있을 때, 지점 $j$에 해당하는 위치에 '측정장치'(변별체)를 놓아 대상과 접촉시키면
(1) 확률 $|c_j |^2$으로 '측정장치'에 흔적을 남기고 대상은 $$\Psi'=\phi_j$$로 전환되거나
(2) 확률 $1-|c_j |^2$으로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phi_j$가 빠진 새로운 상태 $$\Psi'' = \sum_{i\not=j} c'_i \phi_i$$로 전환된다.
측정의 공리: '측정'에서 상태의 변화이것은 폰노이만의 상태 변화 (1.)을 별도의 '측정의 공리'로 제시하겠다는 선택입니다. 폰노이만은 수학적 형식체계로서 도무지 (1.)을 (2.)으로부터 유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상태 변화에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말하면서 일종의 심신평행론을 가지고 나옵니다. 이와 달리 장회익 선생님의 접근은 이 '측정의 공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난 뒤 이 측정의 공리로부터 기존의 다른 접근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새로운 존재론을 수용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이 측정의 공리에 대해 더 깊이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대상이 $\Psi_Q=\sum{j} c_j \delta_{ij}(\xi_i)$로 표현된 상태에 있을 때, 지점 $?$에 해당하는 자리에 변별체를 설치해 이 대상과 조우시킬 경우, 이 대상은
(1) 확률 $|c_l |^2$으로 $\delta_{il}(\xi_i)$만을 가진 상태, 곧 $\Psi'_Q = \delta_{il}(\xi_i)$로 전환되면서 변별체 위에 흔적을 남기거나[사건 형성],
(2) 확률 $1-|c_l |^2$으로 $\delta_{il}(\xi_i)$가 빠진 새로운 상태 $\Psi''_Q = \sum_{j\not=l} c'_j \delta_{ij}(\xi_i)$로 전환되면서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빈-사건 형성].
소위 코펜하겐 해석이라 부르는 접근에서는 측정의 순간에 불연속적인 파동함수 붕괴가 일어나며, 이러한 붕괴를 일으키는 것이 관찰자의 행위라고 봅니다. 이 양자도약은 불연속적이며 비인과적이며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물리학자라면 받아들이기 힘든 선택지이지만, 신기하게도 많은 물리학자가 별 생각 없이 자신은 그냥 코펜하겐 해석을 따른다고 말합니다. 막상 그 코펜하겐 해석의 내용이 무엇인가 물어보면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코펜하겐 해석을 영상으로 잘 묘사한 것이 있습니다. 2004년에 나온 다큐멘터리 비슷한 영화인데, 제목이 What tнē #$*! D̄ө ωΣ (k)πow!?입니다. 제목 자체를 읽기가 어려운데, What the Bleep Do We Know!?(위키피디어 설명)를 수식처럼 써서 일부러 읽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아래 두 스틸컷은 이 영화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주인공은 <작은 신의 아이들(Children of a Lesser God)>(1986)이란 영화로 유명한 배우 말리 매틀린(Marlee Matlin)이 맡았습니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수화와 구화를 하지만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뒷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합니다.
이 스틸컷의 위에서는 '양자소년'이 농구를 하고 있는데 모든 가능성들이 다 겹쳐져서 중첩되어 있습니다. 중첩(重疊)이라는 낯선 한자어는 영어 superposition을 번역한 것입니다. 흔히 일본어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일본어로는 重ね合わせ(かさねあわせ) 즉 '겹침'이라고 씁니다.
주인공이 뒤돌아 보는 순간 그 여러 가능성들 중 하나만이 구현됩니다. 즉 주인공이 관측 또는 측정이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하여 그것으로 오그라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그라드는 것을 '상태함수의 붕괴(崩壞)'라 부릅니다. 붕괴(崩壞)는 영어 collapse 또는 reduction인데, 중첩상태로 여러 가능성이 함께 있다가 어느 하나로 축소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영상은 매우 직관적이어서 여러 사람들이 이를 인용합니다. 이 상태함수 붕괴(수축)이 소위 코펜하겐 해석에서 가장 핵심적인데, 그 이름과 달리 닐스 보어의 관점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오히려 이 해석을 내세우고 주도한 사람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입니다. 하이젠베르크는 다소 심한 실증주의자로서 겉으로 드러난 것 외에는 그 배후에 무엇인가 있다고 보면 안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물리량도 측정의 순간에 구성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 해석에서는 측정을 하는 의식적 주체가 상태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양자역학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그 결과만을 가져오려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았습니다. 지금도 양자역학의 신비주의적 접근에 이러한 접근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화 Quantum Bleep Do We Know!?도 앞부분에서는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다루고 뒷부분에서 마음의 문제를 다루면서, 결국 양자역학이 실재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곧 마음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 미국 서부에서 널리 퍼졌던 뉴에이지 과학(신과학 운동)이 바로 여기에 주목했습니다.
휴 에버렛이 '상대상태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측정에서의 상태변화에 대해 이야기한 이후 브라이스 드윗이나 존 아치볼드 윌러가 측정의 순간 세계가 갈라진다는 난해한 존재론의 여러 세계 해석(Many World Interpretation)을 들고 나왔습니다. 다세계 해석이라고도 하고 뭇세계 해석이라고도 합니다. 종종 이 해석과 유사하게 보이는 초끈 이론의 멀티버스(우주가 실제로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는 믿음)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둘은 매우 다르지만, 세계가 여럿 있다는 특이한 존재론적 믿음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통하는 면도 있습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가 이런 재미있는 SF의 상상을 잘 보여주지만, 측정의 문제를 해결한 것은 전혀 아닙니다.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의 포스터)
양자역학에서 측정의 문제를 다루는 교과서적인 고전으로 다음과 같은 책이 있습니다.
Paul Busch, Pekka J. Lahti, Peter Mittelstaedt (1996). Quantum Theory of Measurements. Springer.
이 책에 다음과 같은 흐름도가 있습니다.
[출처: Busch-Lahti-Mittelstaedt (1996). p. 6]
먼저 '최소의 해석(Minimal Interpretation)'이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양자역학은 근본적으로 확률적인 물리이론이며, 이 때의 확률은 빈도의 극한으로서 순전히 측정결과에 대한 통계적 정보를 주는 것에 불과하며, 양자역학은 근본적으로 인식적(epistemic) 이론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측정의 상황에 대해 굳이 새로운 접근을 할 필요가 없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이 최소의 해석에 만족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 접근을 더 발전시킨 것이 양자 베이즈주의(Quantum Bayesiansim, Q-Bism)입니다. 확률 해석에서 베이즈주의는 확률이 주관적 정보와 믿음직함의 정도를 말해 줄 뿐이라고 보는데, 그러한 확률 해석을 양자역학으로까지 발전시킨 것이 양자 베이즈주의입니다.
조금 더 들어가면 양자역학이 무엇에 대한 이론인가 하는 선택이 나옵니다. 양자역학이 단지 측정결과에 대한 이론이라고 보는 인식적(epistemic) 선택지에서는 측정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사라집니다. 이와 달리 양자역학이 여하간 물리적 대상에 대한 이론이라고 보는 존재적(ontic)/실재적(realistic) 선택지에서는 여하간 양자역학이 개별적인 대상이 지니는 속성을 다룬다고 봅니다. 이제 이 선택지에서는 측정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됩니다.
그 다음의 선택은 양자역학이 완전한 이론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하여 양자역학의 완전성을 믿지 않은 사람들은 양자역학은 최종이론이 아니며, 우리가 아직 찾아내지 못한 더 근본적인 이론이 있다고 봅니다. 이 더 근본적인 이론을 흔히 숨은 변수 이론(hidden variable theories)이라 부릅니다. 양자역학은 불완전하며 우리가 아직 모르는 감추어진 변수들이 있다고 보면, 양자역학은 더 근본적인 이론에 대한 통계적 이론이 됩니다. 즉 양자역학은 개별 대상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그러한 대상이 수없이 많이 있는 앙상블에 대한 이론이라는 것입니다.
이 접근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양자역학과 관련된 여러 역설과 논쟁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편안한 존재론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는 측정의 문제도 생기지 않습니다. 겉보기에 두 가지 상태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측정에서의 불연속적인 변화는 우리가 아직 정립하지 못한 더 근본적인 이론에 대한 통계적 처리의 결과라고 보면 됩니다. 주사위를 던질 때 실질적으로는 주사위의 각도와 손으로 주는 충격량과 방향 등을 모두 세밀하게 계산하면, 어떤 눈금이 나오게 될지 100퍼센트의 확률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굳이 그렇게 세밀하게 계산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여섯 가지 경우로 뭉뚱그리면, 각각의 눈금이 확률 1/6으로 나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혹스럽게도 이러한 숨은 변수 이론에 대한 금지 논변들이 꽤 많습니다. 널리 알려진 벨 부등식 논변을 비롯하여, 글리슨의 정리, 코첸-스페커의 정리, GHZ 논변 등 금지 논변들을 피해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금지 논변에서는 숨은 변수 이론이 지니는 당연해 보이는 조건들이 양자이론과 충돌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게다가 어떤 것은 실험을 통해 숨은 변수 이론의 한 형태(국소 실재 숨은 변수 이론)가 실험과 충돌한다는 점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 실험결과가 양자역학의 예측과 정확히 맞아 떨어짐을 보여주어서 놀라움을 안겨주었습니다. 2022년 노벨물리학상이 바로 그와 관련됩니다.
그러면 결국 측정에서 나타나는 양자역학의 확률을 대상적(objective)/실재론적(realistic)으로 해석해야 하며, 이것은 일종의 성향(propensity)이나 가능태(potentiality)나 경향(tendency)을 나타낸다고 보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다시 새로운 선택의 길이 있습니다. 양자역학을 보편적인 이론으로 볼 것인가 여부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양자역학 외에 측정의 순간을 지배하는 별도의 운동법칙/상태변화법칙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동역학 법칙을 수정합니다. 일종의 강력한 선택규칙을 따로 부과해서 양자역학의 결과와 맞추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루이 드브로이의 파일럿 파동 이론이나 이를 더 확장한 데이비드 봄의 양자운동이론도 포함되고, 기라르디-리미니-웨버(Ghirardi-Rimini-Weber, GRW)의 붕괴 이론이나 펜로즈와 하메로프의 오케스트라 대상적 환원 이론(Orchestrated Objective Reduction, Orch OR theory)이 포함됩니다.
이와 달리 양자역학이 일단은 현재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 이론임을 인정하는 접근도 여러 세계 해석, 양상 해석, 결깨짐 접근, 정합적 역사 접근, 예리하지 않은 대상화 이론 등 다양한 접근이 있습니다.
측정의 양자이론을 다루는 책에서 여러 접근들을 흐름도로 구별한 것이라서, 이 틀은 실상 장회익 선생님의 접근과는 결이 다릅니다. 하지만 굳이 이 틀에서 바라본다면, 장회익 선생님의 접근은 양자역학의 확률을 대상적 확률로 보면서, 이를 사건야기성향 또는 존재표출성향으로 해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장회익 선생님의 입장은 양자역학이 더 발전된 다른 이론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남겨두면서도, 여하간 지금까지 가장 세련된 이론이 바로 양자이론이기 때문에 양자이론이 현재까지의 보편적 이론임을 인정하는 것이라 판단됩니다.
그렇게 하면 이제 상황이 완전히 바뀔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며 공유한다고 생각했던 존재론을 현재까지의 가장 세련된 보편적 이론인 양자역학/양자이론을 통해 새로운 존재론으로 바꾸자는 근본적인 주장이 나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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