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한 스티븐 와인버그의 글
물리학자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특히 입자물리학에서 전기약상호작용의 이론을 만든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스티븐 와인버그는 철학적 논의를 무척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와인버그가 쓴 <최종이론의 꿈>의 4장에 양자역학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특유의 조소하는 말투로 아래와 같이 썼습니다.
"Most physicists use quantum mechanics every day in their working lives without needing to worry about the fundamental problem of its interpretation. Being sensible people with very little time to follow up all the ideas and data in their own specialties and not having to worry about this fundamental problem, they do not worry about it. A year or so ago, while Philip Candelas (of the physics department at Texas) and I were waiting for an elevator, our conversation turned to a young theorist who had been quite promising as a graduate student and who had then dropped out of sight. I asked Phil what had interfered with the ex-student’s research. Phil shook his head sadly and said, “He tried to understand quantum mechanics.”
So irrelevant is the philosophy of quantum mechanics to its use, that one begins to suspect that all the deep questions about the meaning of measurement are really empty, forced on us by our language, a language that evolved in a world governed very nearly by classical physics."
"The value today of philosophy to physics seems to me to be something like the value of early nation-states to their peoples. It is only a small exaggeration to say that, until the introduction of the post office, the chief service of nation-states was to protect their peoples from other nation-states. The insights of philosophers have occasionally benefited physicists, but generally in a negative fashion—by protecting them from the preconceptions of other philosophers."
S. Weinberg (1994). Dreams of a Final Theory: The Scientist's Search for the Ultimate Laws of Nature. https://amzn.to/3RC1zn3
이 책의 7장 제목은 "Against Philosophy"입니다. 양자역학을 이해하고 나아가 최종 이론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서 철학적 접근이 무의미하고 부적절하다는 주장입니다. 1994년 무렵의 와인버그는 매우 강하게 철학적 접근에 반대했습니다. 과학, 특히 물리학에서 철학적 접근은 문자 그대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글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물리학을 전공하던 한 똑똑한 대학원생이 갑자기 물리학을 그만 둔 것이 그만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조롱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당혹스럽습니다. 와인버그의 관점에서 보면, 양자역학의 해석은 물론이고 양자역학의 존재론에 대해 고민하는 것 자체가 시간낭비처럼 느껴집니다. 지금은 조금 달라진 면도 있지만, 이런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분위기는 물리학자 집단에 여전히 매우 강력하게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미국 물리학계가 그런 면이 있고, 이를 비판 없이 따라가는 한국 물리학계도 그런 면이 있는 듯 합니다.
미묘한 상황이지만, 2015년에 스티븐 와인버그가 To Explain the World: The Discovery of Modern Science (https://amzn.to/3DKe1M2)이란 제목의 책을 냈습니다. 저명한 과학사학자/과학사회학자 스티븐 셰이핀이 월스트리트저널에 "Why Scientists Shouldn’t Write History"이란 제목의 서평을 실었습니다. 이 서평의 부제는 "Plato was ‘silly.’ Bacon ‘overrated.’ Galileo ‘behind the times.’ At least from the point of view of a modern physicist."였습니다. 어떤 현대의 물리학자에게 플라톤은 어리석고, 베이컨은 과대평가되었고, 갈릴레오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자극적인 내용은 셰이핀의 글에는 들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와인버그의 책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양자역학이 무엇이며 무엇을 말해 주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석하는 게 옳은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심판관이 과연 물리학자일까 의문을 품게 됩니다. 물리학자라 하더라도 어느 분야를 전공한 물리학자인가? 입자물리학자인가 아니면 고체물리학자인가 아니면 원자물리학자인가? 이론물리학자인가 아니면 실험물리학자인가? 양자역학의 기초를 탐구하는 전공의 물리학자는 어떨까? 양자역학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에 대한 논의를 잘 아는 철학자는 어떨까? 양자역학이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해 하면서 그 내용을 파고드는 사람이라면 양자역학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말해도 무방한 게 아닐까? 왜 어떤 물리학자는 이렇게 철학적 접근에 적대적인 걸까? 등등의 질문이 생겨납니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공지사항 |
[자료] 유튜브 대담영상 "자연철학이야기" 녹취록 & 카툰 링크 모음 (2)
neomay33
|
2023.04.20
|
추천 2
|
조회 8316
|
neomay33 | 2023.04.20 | 2 | 8316 |
공지사항 |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강독모임 계획 안내 (1)
시인처럼
|
2023.01.30
|
추천 0
|
조회 8054
|
시인처럼 | 2023.01.30 | 0 | 8054 |
공지사항 |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정오표 (10)
시인처럼
|
2022.12.22
|
추천 3
|
조회 10463
|
시인처럼 | 2022.12.22 | 3 | 10463 |
공지사항 |
[공지] 게시판 카테고리 설정에 대해서 (4)
시인처럼
|
2022.03.07
|
추천 0
|
조회 9485
|
시인처럼 | 2022.03.07 | 0 | 9485 |
공지사항 |
새 자연철학 세미나 보완 계획 (3)
시인처럼
|
2022.01.20
|
추천 0
|
조회 10333
|
시인처럼 | 2022.01.20 | 0 | 10333 |
공지사항 |
새 자연철학 세미나 - 안내
neomay33
|
2021.10.24
|
추천 0
|
조회 10020
|
neomay33 | 2021.10.24 | 0 | 10020 |
626 |
<자연철학 강의> 서평 올립니다. (3)
박 용국
|
2024.01.29
|
추천 1
|
조회 338
|
박 용국 | 2024.01.29 | 1 | 338 |
625 |
과학적 객관성에는 역사가 있다
자연사랑
|
2023.09.05
|
추천 3
|
조회 388
|
자연사랑 | 2023.09.05 | 3 | 388 |
624 |
과학은 진리가 아니라 일종의 믿음의 체계 (2)
자연사랑
|
2023.09.05
|
추천 1
|
조회 792
|
자연사랑 | 2023.09.05 | 1 | 792 |
623 |
물리학 이론의 공리적 구성
자연사랑
|
2023.08.30
|
추천 3
|
조회 699
|
자연사랑 | 2023.08.30 | 3 | 699 |
622 |
상대성이론의 형식체계와 그에 대한 해석의 문제 (6)
자연사랑
|
2023.08.29
|
추천 3
|
조회 996
|
자연사랑 | 2023.08.29 | 3 | 996 |
621 |
양자역학으로 웃어 보아요 (1)
시지프스
|
2023.08.28
|
추천 0
|
조회 827
|
시지프스 | 2023.08.28 | 0 | 827 |
620 |
[양자역학 강독 모임] 소감입니다. (1)
neomay33
|
2023.08.28
|
추천 2
|
조회 793
|
neomay33 | 2023.08.28 | 2 | 793 |
619 |
양자 얽힘과 태극도(음양도) 그리고 '양자 음양' (1)
자연사랑
|
2023.08.25
|
추천 3
|
조회 1761
|
자연사랑 | 2023.08.25 | 3 | 1761 |
618 |
수식 없이 술술 양자물리
자연사랑
|
2023.08.24
|
추천 2
|
조회 995
|
자연사랑 | 2023.08.24 | 2 | 995 |
617 |
0819 강독 마무리 토론회 발표용 (2)
시지프스
|
2023.08.19
|
추천 2
|
조회 674
|
시지프스 | 2023.08.19 | 2 | 6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