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꼽문] 책새벽-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1부. 6-7장.
모임 정리
책새벽
작성자
neomay33
작성일
2023-08-21 07:46
조회
734
녹색아카데미 온라인 책읽기 모임 '책새벽-월' 시즌3에서는 현재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읽고 있습니다.
매주 읽는 내용 중 참여하시는 분들이 꼽아주신 책꼽문과 질문을 모아 이곳에 정리해두려고 합니다. 책 읽으시는 데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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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2010. 문학과지성사.
제6장
p.133-134
나는 여기서 인간의 세계 이해 방식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누고자 한다. 하나는 고전적 이해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낭만적 이해 방식이다. 궁극적 진리의 추구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런 종류의 이분법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하지만 근원적 형상의 세계를 찾아내거나 창조하고자 할 때 사람들이 동원하는 고전적 세계 이해 방식의 범위 내에서 그와 같은 이분법을 운용하는 경우 이는 상당히 적절한 것이 될 수 있다. 파이드로스가 고전적이라는 용어와 낭만적이라는 용어를 어떤 의미에서 사용했는가를 밝히자면 다음과 같다.
고전적 세계이해 방식을 취하는 경우,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세계란 근원적 형상 그 자체라고 본다. 한편 낭만적 세계이해 방식을 취하는 경우, 사람들은 주로 직접적인 외양의 측면에서 세계를 본다. 당신이 만일 낭만적 세계이해 방식을 취하는 사람에게 엔진이나 기계 설계도 또는 전자회로를 보여 주면, 그는 그것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가 보고자 하는 현실은 표면의 현실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별다른 호소력을 갖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지루하고 복잡한 명칭, 선, 수치들 뿐, 흥미로운 것이라고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만일 고전적 세계이해 방식을 취하는 사람에게 똑같은 설계도나 회로를 보여 주거나 똑같은 설명서를 보여 준다면, 그는 그것에 눈길을 주고는 곧 매료될 수도 있다. 선 형체, 기호들이 한데 어우러져 엄청나게 풍요로운 근원적 형상들을 제공하고 있음을 확인할 것이기 때문이다.
p.138-139
파이드로스의 세계를 선명하게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이는 낯섦이 아니라 일상성이다. 낯익음도 보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도 [책꼽문]으로 꼽지 않을 수가 없네요. ^^;
p.143-144.
이런 식으로 모터사이클을 기술하는 경우 미리 모터사이클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예비 지식이 없다면 위의 기술을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어서 관찰자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위의 기술은 실린더의 덮개를 들어내야만 관찰자가 피스톤을 볼 수 있다는 식으로 되어 있지 않다. "당신"이 그림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이 기술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객채만이 어떤 관찰자와도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셋째로 "좋다"라든가 "나쁘다"와 같은 단어들이라든가 이 같은 의미를 갖는 단어들이 완전히 제외되어 있다 … 어느 곳에도 가치 판단이 표명되어 있지 않다.
넷째로 이 진술 안에서는 일종의 칼질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이 칼의 정체를 꿰뚫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모터사이클이든 무엇이든 우연히 칼질이 그런 방식으로 되는 바람에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칼 자체에 정신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제7장
p.151-152.
분리와 분류 작업이 어느 지점에서 끝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이 작업은 끊임없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
시급하게 수행해야 할 필수 과제가 있다면, 이는 이 두 종류의 세계 이해 방식 어느 쪽에도 손상을 입히지 않은 채 양자를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방식을 찾는 일이다. 모래를 분류하는 일도 거부하지 않고 그와 동시에 분류 이전의 모래 자체를 명상의 대상으로 삼는 일도 거부하지 않는 세계 이해 방식 말이다.
그와 같은 세계 이해 방식은 어느 쪽을 거부하거나 취하는 대신 한 줌의 모래를 취해 오기 이전의 풍경, 끊임없이 풍경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는 그런 세계 이해 방식이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서투른 외과 의사로서 파이드로스가 추구하고자 시도했던 세계 이해 방식이다.
그가 시도했던 바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이해를 요구하는 전체적인 풍경, 바로 그 풍경과 분리될 수 없는 풍경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 다름 아닌 풍경 한가운데서 모래를 몇 개의 더미로 나누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 인물을 보지 않은 채 풍경을 보는 것은 결코 풍경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p.153.
따라서 단지 죽임을 당한 것에 집착하는 대신 무언가가 새롭게 창조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또한 이 과정이 일종의 죽음과 창조의 연속 과정. 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은 결국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그런 종류의 것이다.
p.154~155.
그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를 제대로 보기 위해 당신은 그가 본 것을 보아야 한다. 또한 정신이 이상한 사람의 눈에 보인 것을 제대로 보고자 할 때 이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이는 에둘러 가는 것이다.
지지난밤 나는 크리스에게 피이드로스는 유령을 추적하는 일에 그의 전 생애를 바쳤다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가 추적했던 유령은 모든 공학기술, 모든 현대과학, 모든 서양사상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그런 유령이었다. 이는 바로 합리성이라고 하는 유령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유령을 목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는 원치않는 순간에 언뜻 그 유령이 그들에게 모습을드러낸다고 생각한다. 그 유령은 스스로 자신을 합리성이라고 부르지만, 겉으로 드러나보이는 것은 온통 모순과 무의미뿐이다.
이것이 바로 정상적인 일상의 가정(假定)들을 지배하는 유령으로, 이 유령은 생명의 궁극적 목표인 생명을 계속 유지하는 하는 일이 이루기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아무튼 이것이 바로 생명의 궁극적 목표라고 선언한다.
오로지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만이 그것이 왜 궁극적 목표인가를 물을 뿐이다. 사람들은 보다 더 오래 살기 위해 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른 목표가 없다. 바로 이것이 유령이 하는 말이다.
p.157.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날씨를 견디고 사는지 모르겠어요." 실비아가 말한다.
"글쎄요. 여기야 원래 살기 힘든 데지요." 약간의 짜증을 느끼면서 내가 이렇게 말한다. "여기에 오기 전에 벌써 살기 힘든 데라는 것을 알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겠지요."
이렇게 말하고 나는 한마디 덧붙인다. "만일 누군가가 불평을 하면 불평을 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들 뿐이겠지요. 저 사람들은 체력이 넘치는 사람들이에요. 어떻게 견디어나갈지 다 알고 있을 겁니다."
p.159.
그는 체계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기계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 그렇게 말하고자 한다면, 이는 그의 생각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피스톤, 톱니바퀴, 동력 전달 장치 등등이 한꺼번에 엄청난 규모로 조화롭게 움직이듯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 대신 언뜻 레이저 광선의 이미지가 내 마음에 떠오른다. 말하자면, 극한 지점에 이르기까지 압축을 해놓았기 때문에 무시무시할 정도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한 줄기의 섬광이 움직이듯, 달을 향해 쏘는 경우 달의 표면에 반사되는 그 빛을 지구에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섬광이 움직이듯, 그의 생각은 움직였다.
이 탁월한 능력을 파이드로스는 대상에 대한 일반적 조명에 사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특정 목표를 하나 찾아내어 이를 겨냥해 섬광과도 같은 그의 생각을 쏠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였다.
p.163.
파티 자리에서 나는 모든 사람에게 너무 많이 너무 시끄럽게 이야기를 하고 또 너무 지나치게 폭음을 한 끝에 잠시 몸을 누이고 싶어 안쪽에 있는 방을 찾아 들어갔다.
p.169.
해가 비스듬히 구름을 향해 비치고 있고, 구름은 점점 커져 이제 우리 위쪽의 지평선에 닿을 듯하다. 지평선은 나무들, 소나무들로 덮여있으며, 차가운 바람이 지평선 쪽에서 불어 내려와 소나무 향기를 우리에게 전한다. 바람 속에서 초원의 꽃들이 흔들린다. 바람을 받아 모터사이클이 약간 옆으로 기울어지고, 불현듯 서늘함이 우리 몸을 휘감는다.
크리스에게 눈길을 돌려 바라보니 그가 웃고 있다. 나도 따라 웃는다.
이윽고 비가 길 위로 세차게 쏟아진다. 너무도 오랫동안 비를 기다리던 길 위의 흙먼지가 갑작스럽게 강렬한 흙내음을 내뿜어 후각을 자극한다. 첫 빗방울들은 길옆의 흙먼지 위로 우툴두툴 읽은 자국들을 만들어놓는다.
모든 것이 너무도 새롭다. 우리는 진실로 너무도 강렬하게 그것을새롭게 세상을 적시는 비를 목말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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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꼽문] 책새벽-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제7장 p.170까지 업데이트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