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불을 지르러 온 루소의 <사회계약론>
예전에 조악한 번역판으로 루소의 ‘에밀’을 읽다가 집어 던진 적이 있다. 아무리 시대적 배경의 한계를 고려하여 참으려 해도 여성에 대한 모독성 발언에 자꾸 화가 나는데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마구 뻗어나가는 논지가 현대 독자인 내 감성으로는 여러모로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루소의 글에 대한 내 판단을 유보해 두었다. 칸트가 산책 시간을 까먹을 만큼(?사실인지는 모름!) 소중히 아끼며 읽어내려 갔다는 루소의 글에 내가 모르는 어떠한 매력이 있는 지가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더우기 별다른 고등교육 없이도 대뜸 상금에 눈독을 들이고 무려 논문 공모전에 응모해 1등상을 먹었다고 하니, 그의 글에는 분명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보편적인 매력이 있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심지어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지 않고도 계몽적인 사명의식으로 오페라를 뚝딱 지어 유행시키고, 나중에 모짜르트까지 그의 작품을 리메이크했을 정도라고 하니 이 전천후 천재에 대해 쉽게 폄하할수는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우리가 아직도 애들에게 들려주는 ‘주먹쥐고 손을 펴서’가 그가 작곡한 곡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기절초풍을 했다. 개신교에서도 이 멜로디를 차용해 찬송가를 두 곡이나 만들어 널리 부르고 있다고도 한다.
아무튼 루소의 다른 글에 실망한 전력 때문에 더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이번에 읽는 ‘사회계약론’은 기대 이상으로 글이 좋고 매력적이다.
사실 루소의 주장들을 논리적인 정합성이나 개연성으로만 판단해서 가치를 따진다면 진작에 파기되었을거라고 여전히 생각하기는 한다. 하지만 나는 루소의 주장의 디테일이나 논리적 엄밀성에 주목하고 싶진 않다. 내가 법학자가 아닌 바에야. ^^
그보다는 책을 읽다보니 루소가 사회를 이루는 근본적 토대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며 던졌던 근본적 물음, 그가 열광적으로 품었던 이상에 마음이 절로 기운다. 그의 생각은 이제는 originality가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자명해 보인다. 하지만 언어의 남용이라는 가면을 벗겨내고 자세히 뜯어보면, 여전히 루소가 살았던 당시나 지금이나 비슷한 물음들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에 주목하게 된다.
사람들 생각을 휘젓는 선동가로서의 루소의 존재감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는 불을 지르러 세상에 왔고, 그의 불은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가슴에 쉽게 옮겨붙는 파급력이 살아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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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사회계약론』은 너무 비현실적인가?(추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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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불을 지르러 온 루소의 <사회계약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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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새벽-화-시즌1. 발췌] 『조국의 법고전 산책』 1장 (pp.4~5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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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책새벽-화-시즌1. 발췌] 『조국의 법고전 산책』 1장 (『최후의 전환』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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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책새벽 - 화 : 법고전 읽기. 시즌1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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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새벽-화. 발췌] 저주받은 원자 : 8장. 불신의 시대 & 결론. pp.349-4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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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새벽-화. 발췌] 저주받은 원자 : 7장. 원자력 모스크와 기념비 pp.304-34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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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새벽-화. 발췌] 저주받은 원자 : 6장. 물, 피 그리고 핵무기 보유국 집단. pp.265-30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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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새벽-화. 발췌] 저주받은 원자 : 5장. 영역 다툼과 녹색혁명 (pp.209-24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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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새벽-화. 발췌] 저주받은 원자 : 4장. 유색 원자와 백색 원자 (진도에 맞춰 발췌 업데이트 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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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새벽-화. 발췌] 저주받은 원자 : 3장. 과거의 나쁜 꿈 잊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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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may33 | 2023.01.09 | 0 | 958 |
후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스텔라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루소는 남의 가슴에는 불을 지펴놓고 자기는 아주 냉정해보입니다. 글만 보면요. 실제로는 아주 열정적인 사람이었겠죠?! ^^
모임에서 『사회계약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입문으로 읽은 『조국의 법고전 산책』 1장을 다시 열어보니, 첫 책을 루소의 『사회계약론』으로 삼은 이유는 바로 이 책이 근대를 연 책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네요. "세계사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읽히기 전과 후로 나뉜다"(야코프 부르크하르트)라고.(p.15)
루소의 『사회계약론』(1762)을 읽은 후에, 그 전에 나왔던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1748)과 로크의 『통치론』(1689), 홉스의 『리바이어던』(1651. 우리 책모임 목록에는 안 들어있습니다.)을 읽으면 루소가 이전 사람들의 무엇을 이어 받았고 무엇을 버렸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루소는 전혀 냉정한 인간은 못되었던 것 같습니다. 매우 불안정하고 변덕스러운 신경증 기질이 있었고, 그 기질이 끝내 그의 삶을 파먹어들어 갔던 걸로 보입니다. 사람에 대한 불신과 기피증이 극에 달해 마지막에는 자신을 정말로 도와주려던 철학자 흄 같은 사람마저 못 믿고 고립되다 죽음을 자초한 것 같더군요.
저는 이럴 때마다 참 기이한 생각이 듭니다. 고흐의 그림도, 루소의 글도 모두 자신의 삶을 갈아넣은 댓가로 얻어진 게 아닌가 하는. 물론 그들이 결코 숭고한 목적으로 그렇게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불안과 고독과 광기의 댓가이자, 그들의 삶을 스스로가 제어할 수 없어 미쳐 날뛴 소산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 세상은 참 이상합니다. 광기를 터부시하고 멀리하면서도 그들의 광기를 빨아먹고 사는 괴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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