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새벽-화. 발췌] 저주받은 원자 : 8장. 불신의 시대 & 결론. pp.349-410.
모임 정리
책새벽-화
작성자
neomay33
작성일
2023-03-27 18:24
조회
886
[책새벽-화. 발췌] 저주받은 원자 : 8장. 불신의 시대 &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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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원자』. 제이콥 햄블린 지음, 2021. 우동현 옮김, 2022. 너머북스. 8장. pp.349-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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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아카데미에서는 매주 화요일 아침 6-7시에 온라인 책읽기 모임 '책새벽-화'를 합니다. 현재 제이콥 햄블린의 『저주받은 원자』를 읽고 있습니다. 모임에서 읽은 내용 중 핵심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발췌해서 옮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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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하고 싶은 책꼽문, 질문이나 토론거리, 함께 보면 좋을 자료들이 있으시면 부담없이 공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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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제1부. 원자력의 약속
1장. 가지지 못한 자들
2장. 천 년을 일 년으로
제2부. 원자력의 선전
3장. 과거의 나쁜 꿈 잊기
4장. 유색 원자와 백색 원자
5장. 영역 다툼과 녹색혁명
3부. 원자력의 금지
6장. 물, 피 그리고 핵무기 보유국 집단
7장. 원자력 모스크와 기념비
8장. 불신의 시대
결론. 풍요라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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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원자력의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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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불신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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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9.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프리퍄티시 외곽에 있는 무명의 원자로 복합체에서 일련의 작은 사고가 원자로 용융과 막대한 증기 폭발로 이어졌다. 체르노빌 핵 복합체에서 나온 방사능은 ... 결국 지구적 재앙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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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0. (그러나) 체르노빌 이후 IAEA와 회원국들의 대민 홍보전은 원자력 발전을 풍요의 기술로, (대기를 오염시키는) 다른 에너지 원천들의 대안으로 묘사했다. 이는 인구 성장, 질병, 오염, 기후변화 등 재앙에 가까운 위협 한가운데 닥쳐온 종말에 대한 해결책으로 핵에너지를 다시 프레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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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1-352.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취임 석 달 후인 1977년 4월 18일, 텔레비전으로 전국에 방영된 연설에서, 에너지 문제가 전쟁 방지 자체를 제외하고는 미국이 직면하게 될 가장 커다란 도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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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는 미국이 석탄으로 회귀하고 태양광 발전 같은 영속적인 비화석 에너지로 나아가는 에너지 전환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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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연료별 전기 생산 비율. 2021년 기준. (출처 : Our World in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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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4. 증식로에 대한 카터의 명백한 외면으로 미국 내 일부 원자력 지지자도 큰 충격을 받았다. 카터 대통령은 1950년대 초 미국 해군이 잠수함에 원자로를 적재한다는 최초의 프로젝트를 실행할 당시 하이맨 릭오버 제독 아래서 복무했는데, 그의 이러한 경력이 카터를 원자력 지지자로 보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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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5. 그러나 미국 비평가들은 ... 화석연료 의존으로 초래될 환경적 위험을 지적했다. ... 1970년대 후반, '지구적 이산화탄소 문제'는 오크리지(국립연구소)에서 전문 분야로 거듭났다. 신설 에너지연구소 과학자들은 1950년대 말 이래 하와이에서 포집된 이산화탄소 측정치에 흥미를 느꼈고, 대기에서 온실 가스의 농도 증가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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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하와이 마우나로아 관측소에서 측정되고 있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출처 : NO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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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6. 앨빈 와인버그(오크리지국립연구소 소장 역임. 그는 용융염증식로를 주장하며 LMFBR 증식로 설계를 반대하다가 1973년 직위 해제, 1975년 오크리지로 복귀해 에너지분석 연구소를 세웠다. 와인버그 사단의 과학자들은 모두 핵 연구자들이었고 랄프 로티만 기상학자였다. 원자력의 미래가 암울해 보였을 때, 와인버그에게 이산화탄소 문제라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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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6-357. 석유회사 소속 과학자들은 와인버그의 우려를 진심 어린 것이 아닌 전략적인 것으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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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창간된 『기후변화 Climate Change』에서 와인버그와 로티는 "석탄의 미래는 얼마나 길까?"라는 제목의 글을 같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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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말 이산화탄소 연구는 1975년 구원자력위원회가 해체된 뒤 위원회 기능을 다수 인계받은 새로운 정부 기관인 에너지부의 후원을 받아 지속되었다. 원자력을 외면하는 대통령의 결정이 바뀌기를 희망하는 사람들과 와인버그와 로티로 구성된 작업단이 이산화탄소 연구를 관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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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7-358. 카터의 에너지 계획은 국내 원자력 옹호자들의 불신과 저항을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분개와 격노를 촉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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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8. 1977년 미국 해외원조법안 개정안. 우라늄 원자로의 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얻기 위한 화학재처리 기술을 취득하려고 시도하거나 화학재처리 기술의 수출을 시도하는 어떤 나라에도 원조 금지. 어떤 종류의 핵폭발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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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움직임은 개발도상국들로 하여금 핵연료, 핵기술 카르텔화로 보였고, 카터는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미국에서 먼저 화학재처리 전면 중단을 공표. 핵연료주기와 관련된 규준을 제정하는 국제조직도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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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9. 1978년 3월 10일 미국은 핵비확산법안 통과. 이 법안은 기존 핵 거래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 비확산 사안의 표준 기준으로서 플루토늄 주기를 설정. 파키스탄, 인도, 이스라엘, 이집트 등 많은 나라에 대한 핵 이전을 즉각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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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이러한 미국의 일방적인 정책 실행을 거부. 프랑스원자력위원회 위원장 프랑수아 부종 델레스탕은 핵에너지 없이 세계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1980년. 『코망테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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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60. 카터는 비확산 분야에서 앞장서고자 했지만, 이는 단지 독일, 일본, 프랑스, 영국, 소련의 '공동 전선'을 대담하게 만들어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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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3월 2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해리스버그의 미국산 상용 동력로가 부분적 용융(스리마일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 가압수형 원자로. 농축우라늄 사용)을 겪자 원자력 발전에 대한 지구적 약속은 차질을 빚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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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61. 스리마일섬은 미국 바깥에서 카터의 비확산 전략보다 더 큰 시험대가 되었다. 스웨덴에서 자유주의, 사민주의 정당들은 자국 원자력 발전 계획에 대한 지지를 철회, 해당 사안에 대한 새로운 국민투표를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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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도처에서 반핵 행동주의가 활기 넘치게 활동했지만, 대다수 정부는 자국의 설계를 미국식 설계와 구별하는 방식으로 원자력을 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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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63. 호주, 캐나다 정치인들은 농축우라늄이 아닌 천연우라늄을 홍보할 기회를 잡았다. 이 두 나라는 세계 전체 우라늄 매장 추산치의 약 4분의 1을 보유. 캐나다는 천연우라늄을 쓰는 캔두(CANDU. 가압중수로. 천연우라늄 사용) 원자로라는 기술을 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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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63-364. 스리마일섬은 미국 바깥에서 카터의 반플루토늄 전략으로 이미 짜증난 이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작동했다. ... 전 세계가 미국식 설계에서 탈피하고 미국 정부의 일방적 결정에 저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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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64-365. 더 큰 불신을 불러일으킨 사안은 중동 나라들, 특히 이란과 진행 중이던 핵 거래였다. 카터 행정부가 '플루토늄 경제'를 악마화하는 동안 유럽 국가들은 주요 석유 생산자들에게 원자로를 약속하는 키신저에게서 영감을 얻은 전략을 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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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말 이라크는 이란에 필적하는 핵 야망을 품었다. 이라크는 1957년 IAEA 창설과 1958년 자체 혁명에 뒤이어 1959년 자국 원자력위원회를 수립했다. 당시 다른 혁명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이라크도 현대화의 상징으로서 핵개발 계획을 수립. 소련은 IRT-5000형 소령 원자로를 지어 이라크원자력위원회의 자립을 돕는 데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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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65-366. 1968년 이라크에서 바트당이 권력을 장악하자 원자력 풍경은 변화. 바트의 이념은 아랍의 단결, 외세 지배로부터 자유, 사회주의. 당의 주요 정책 중 하나는 석유산업 국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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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는 다른 정부들과 교섭할 때 석유를 주요 도구로 이용. 이라크는 석유 거래를 지렛대로 삼아 자국 핵 프로그램을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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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66. 그러나 소련은 이라크의 석유가 서구로 흘러 들어가는 것에 반대. 1975년 소련은 이라크에 무기 판매 금수조치 시작. 이 조치는 이라크를 이윤이 생기는 서구로 더욱 몰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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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당시 군 고위였던 사담 후세인은 프랑스를 방문해 자크 시라크를 만나 협상 ==> 원자력 발전, 무기와 석유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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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66-367. 이라크는 지역 이웃들인 이스라엘, 파키스탄, 인도가 했던 일을 정확히 뒤따랐다. 즉 IAEA에 가입해 이 기구에서 내세우는 풍요의 수사를 포용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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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영국 외교관들은 이라크의 의도를 신뢰하지 않았고 이라크의 상용 핵개발 계획을 점차 핵무기 확산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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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67-368. 이라크 핵개발 계획을 향한 외부의 관심은 대부분 이라크가 프랑스와 맺은 동반자 관계와 이탈리아와 계속된 무역 거래에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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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의 거래는 연구용 원자로 두 기 구입과 관련. 여기에는 핵무기 프로그램으로 잠재적 전용이 가능한 물질인 고농축우라늄의 대량 이용이 포함되었다. 이탈리아는 이라크를 도와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 연구실, 재료시험 연구실, 화학공학 연구실, 연료가공 연구실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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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프랑스, 이탈리아는 이라크를 도와 방사화학, 핵물리학, 핵공학, 핵개발 계획에 관련된 다른 분야의 실무 전문가들과의 공동체를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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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69-370. 1979년 말, 우라늄 밀수 사건. 독일과 이탈리아 회사가 이라크로 핵물질을 수출하기 위해 비확산체계의 구멍을 활용하려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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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369-391:1까지 발췌. 2023. 4. 3에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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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69-370. 1979년 말, 우라늄 밀수 사건. IAEA는 독일 회사 누켐이 열화우라늄 6톤과 천연우라늄 4톤을 이라크에 보내려 선적한 사실을 발견했다. 독일과 이탈리아 회사가 이라크로 핵물질을 수출하기 위해 비확산체계의 구멍을 활용하려 시도한 것. 이 사건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거래 자체뿐 아니라 당사자 다수가 이에 눈을 감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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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71. 독일 원자력 회사들이 ... 이 이상으로 불법 핵물질 거래에 훨씬 깊게 관여했음이 훗날 드러났다. 몇 년 후 누켐에서 이런 문제가 다시 발생. 자회사 트란스누클리어가 벨기에 몰(Mol)에 위치한 재처리시설에 우라늄을 배송한 뒤 해당 연료를 핵분열 물질로 만든 후 유럽을 가로질러 수송해오다가 적발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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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72. 1979년 9월 22일. 미국 첩보위성은 아프리카 남단과 남극 사이의 바다에서 강력한 섬광을 감지(벨라 사건; Vela Incident). 이 폭발은 이스라엘과 남아공의 공동 수행 작전의 일부였다는 추측이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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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72-373. 핵무기 확산 상태에 대한 그런 불확실성의 한가운데서 북미인과 유럽인은 이란, 이라크 양국과 벌인 석유 관련 협상에서 원자로를 지렛대로 계속 이용. 1980년에 이르러 긴장이 극도로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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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적인 또는 알려진 핵무기 프로그램이 이스라엘, 이라크, 이란에 존재했고 파키스탄, 인도, 중국으로 확장되었다. 또한 개별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사보타주 사례가 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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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74. 후세인은 과학적 힘의 군사적, 평화적 함의를 강조. 이라크의 핵개발 계획은 평화적(이라고 주장). ...
1980년 여름, 프랑스에서 이라크로 고농축 연료가 도착할 즈음 이라크, 이란 양국 내 상황은 더욱 불안정해졌다. 1979년 이란혁명으로 중동의 외교적 풍경은 완전히 변화. 유럽, 미국과 긴밀했던 나라들이 미국에 공공연히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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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사관 점거, 테헤란에서 미국민이 인질로 붙잡히는 상황 발생. 미국이 10년에 걸쳐 무기와 원자력 기반시설을 공급해 준 나라는 완강한 적으로 거듭난 한편, 이란 이후 서구를 위한 석유 공급자가 될 것처럼 보인 이라크는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과 튼튼한 무역 관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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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75-376. 이란-이라크 전쟁 (1980. 9. 22 ~ 1988. 8. 20)
1980년 9월 22일,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 이 해 9월 30일 이란은 자국의 미국제 F-4 팬텀 전투기 두 대를 보내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자로를 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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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6월 7일, 이스라엘도 이 시설에 미국제 F-16A 전투기 여섯 대로 공급.(Operation Opera 혹은 Operation Babylon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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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라크 공습은 평화적 원자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 심판을 강요한 사건. 적어도 두 나라(이스라엘, 이란)은 평화적 원자를 원자로 부지 폭격을 충분히 정당화하는 허위로 간주했음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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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76. 미국 대통령에 로널드 레이건 당선(1981. 1. 20~1989. 1. 20). 레이건은 대통령 선거 유세 중 핵비확산법안 폐지를 약속. 취임 후 미국 원자력 산업을 소생시키려고 시도. 증식로 개발 계획을 지지하고 ... 원자력 부문에 보조금을 더 많이 주라고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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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77. 이스라엘이 이라크 오시라크를 공습한 이후 레이건은 딜레마에 직면. 우방이라는 이유로 침략자를 방어해야 하는가, 아니면 '평화적 원자'와 이 안에 들어있는 여러 약속들(비확산조약을 수용한 나라들을 방어)을 수호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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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77-378. IAEA 회원국들 대다수는 이스라엘의 회원국 자격 박탈을 요구했다. 레이건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IAEA는 이스라엘에 기술적 원조 중단, 오시라크 공격을 침략 행위로 비난하는 결의안 채택, 이스라엘의 핵시설을 IAEA 세이프가드의 규제 아래 두어야 한다고 요청하는 UN 결의안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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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78-379. 이란의 이슬람혁명이 진행되자 미국은 이란의 석유에 의존할 수 없었고 ... 점차 아라비아반도에 있는 우방과의 우호적 관계에 기초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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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이라크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카터 행정부는 사우디 안보를 우려해 미국의 지원으로 방공 체계와 확장된 지상 시설들 개발을 돕는 것과 관련해 그들과 회담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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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말까지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 군사 장비, 서비스, 건설에 대한 여태껏 가장 큰 단일 구매자' ... 미화 85억 달러짜리 방공 개선꾸러미와 함께 확장에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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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0. 파키스탄에 대한 미국의 양면적 행동.
미국은 군사장비를 우방들의 핵개발 계획에 영향을 행사하는 수단으로 사용. 파키스탄에도 정찰기를 제공하고 핵개발 계획에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 그러나 파키스탄 카후타 근처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 발견 후 1979년부터 경제, 군사 제재 부과. 그러나 1981년 12월 제재 철회.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파키스탄을 중무장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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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1. 1980년대 초 IAEA는 거의 분열. 미국의 양면적 행동, 자국과 자국의 우방에게만 유리하게 행동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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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2. IAEA의 정체성에 관한 갈등은 1980년에, 20년 동안 재임한 에클룬드를 이을 신규 사무총장을 선출하면서 여러 달에 걸쳐 일어났다. ... 스웨덴 외교부장관을 지낸 블릭스(Hans Martin Blix. 1928-)가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었고, 여기에는 타협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 이사진을 확대해 더 많은 개발도상국 회원국을 포함, 차기 사무총장이 선정되는 1985년에 저개발국 대표를 고려한다는 결의안.(그러나 블릭스는 1997년까지 IAEA 수장으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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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3-384. IAEA 내부에서 남반구와 북반구의 정치적 타협은 즉각 기구 내 분할을 악화. 1982년 9월 24일 IAEA 이사진은 이스라엘의 회원국 자격 박탈에 대해 투표. 아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학살을 이유로(원자폭탄 제조와 함께) 영구히 제명하려 했으나 실패. 그러나 회담 참여 자격은 거부되었다. 이에 미국은 항의 표시로 미국 대표단을 철수, IAEA 활동 참여를 유예했다. 일본, 호주, 캐나다,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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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4-386 이 사건으로 미국 정부는 IAEA의 역할을 재평가. 기술적 원조보다는 비확산 감시인으로서의 IAEA. 그러나 실상 대다수 회원국들은 기술적 원조를 기대하며 이 조직에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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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재평가가 하나의 전환점이 되지는 않았으나 이 결정은 수년간 진행 중인 추세를 확인해 주었다. 당시 IAEA 전체 예산 미화 9,100만 달러(이 중 미국이 2,100만 달러) 중 약 3,000만 달러(미국이 800만 달러 지출)가 비확산 세이프가드에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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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7-388. 핵에너지 옹호자들은 상용 원자력 발전을 겨냥한 환경 운동가들의 공격에 대해, 자신들의 환경적 주장에 점차 기대는 방식으로 대응하려고 시도. 그들은 기후변화뿐 아니라 산성비에서도 기회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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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오염의 다른 형태에 원자력 발전을 우호적으로 비교하는 주장은 IAEA에서도 광범위하게 이용되었다. ... 블릭스와 IAEA 인사들은 석유, 석탄 같은 기존 에너지 원천으로 인한 환경적 위협을 과대평가하고, 원자력 발전이 환경적으로 비교적 무해하다는 주장을 폈다. 블릭스의 IAEA는 1986년 체르노빌 참사 이후에도 이 접근법을 집중적으로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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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8-389.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 원자로 용융, 화학적 폭발, 막대한 방사성 잔해의 대기 중 방출을 일으켰다. 사고 당시 문제를 통제하려고 시도했던 현장의 조작자들, 잔해를 청소한 노동자들,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소화 물질을 투하하려 시도했던 조종사들은 죽임을 당했다. 인근 마을 프리퍄티는 소개되었고, 인근 지역과 이웃 나라들 그리고 그 너머까지 피폭의 범위와 크기, 결과에 관한 논쟁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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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9-390. 블릭스를 포함한 IAEA 인사들은 체르노빌 사고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지만, 원자력 발전에 대한 대민 홍보를 위해 피해를 수습하려는 시도를 막을 수는 없었고, 그해 5월 초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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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고 직후 발간된 『IAEA 회보』의 체르노빌 특집호에서 블릭스는 ... 댐 파열, 가스 폭발 등과 같은 사고의 위험과 비교하였다. "우리는 석탄이나 석유에서 전력을 만드는 발전소들이 이산화황, 산화질소, 이산화탄소를 얼마나 많이 만들어내는지도 반드시 동일한 수준으로 인지해야 한다. 그것들이 죽은 삼림, 산성 호수, 암에 미치는 영향 ... 화석연료 연소와 불가분하게 연결된 이산화탄소 발생이 불러올 수 있는 온실효과에 대한 불안 ..."(블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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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 그는 독자들에게 핵기술 제공이 핵무기 확산 통제에 필수적임을 상기시켰고, ... "30년 동안 노력을 기울인 기본적 접근은 비확산 약속과 그러한 약속 준수를 입증하는 대가로 핵물질과 핵기술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라고 (블릭스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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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4일 업데이트. pp.3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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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0-391. 소련은 1986년 8월, 빈의 IAEA 본부로 전문가들을 파견해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관한 구체적인 보고서를 제공했다. 상황이 끔찍할 만큼 잘못되었다고 시인했으나 사고에 대해 발전소 조작자들을 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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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기간이었음에도 체르노빌의 인명 피해는 막대했다. ... 소련은 최초 36시간 안에 350여 명이 방사선병 징후를 보여 모스크바의 한 병원으로 후송되었다고 보도. 일부는 열화상을 입었고, 대다수는 최대 100퍼센트에 달하는 신체 표면에 베타 방사로 인한 피부 화상을 입었(고 상당수가 사망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대중 가운데 아무도 급성 방사선병을 앓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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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1-392. 소비에트 대표단 단장 발레리 리가소프는 블릭스와 마찬가지로 체르노빌이 원자력 개발을 방해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사고의 잘못이 조작자 오류에 있었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RBMK 원자로(소련이 개발한 흑연감속 비등경수 압력관형 원자로) 설계자들이 지적인 선택과 규칙 준수를 사람에게 맡김으로써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공학적으로 설계된 안전 기제보다 안전 수칙에 의존했다는 것. 이에 대해 서구에서는 찬사를 받았지만 소련은 이를 배신으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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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3. IAEA 사무총장 블릭스는 ... 원전 사고가 일으킨 오염에 주목하지만 석탄, 석유를 연소해 에너지를 만들면서도 삼림이 죽어간다, 위험이 따르지 않는 산업 활동은 거의 없으며 모든 에너지 생산 형태는 얼마간 위험과 연계되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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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릭스와 IAEA는 대중의 참여를 신뢰하지도 않았고 기술적 논의를 대중에게 비공개로 하면서도, 원전에 대한 대중의 자신감을 회복시키기 위해 핵에너지 이용, 방사성 폐기물 관리와 처리 등에 관해 조작자, 규제 담당자, 정부들에 개방성을 요구할 것이라는 역설적인 주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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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4. 소비에트 정부가 체르노빌 재난을 물리적, 정치적으로 차단하려고 애쓰는 한편, 서구 정부들은 원자력 발전에 대한 대민 홍보를 더욱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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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5. (그러나) 체르노빌 사고 이후 유럽에서는 신규 원자로 구매가 중단되었고, 반핵 행동주의가 활기, 반핵 행동주의와 일반적인 환경 운동이 더욱 단단히 결합. 특히 그린피스와 유럽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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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부들은 계속 원자력에 전념. 1987년 유럽공동체(EC) 내에서 소비되는 전기의 약 3분의 1이 원자력 발전으로 생산된 것. 특히 프랑스는 자국 전기의 70퍼센트를, 스웨덴은 40퍼센트를 원자력 발전으로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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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5-396. 1987년 IAEA 창설 30주년 기념 『IAEA 회보』 특집호의 주제는 '진보'. IAEA의 핵기술 확산 촉진 노력으로 세계가 얼마나 많은 혜택을 입었으며 비확산에도 기여했다고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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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6-397. 『IAEA 회보』 기념호에는 무니르 아마드 칸의 글도 사무총장 블릭스의 글 옆에 나란히 실려있었다. 칸은 IAEA 이사진 의장, IAEA 원자로부서를 수년간 이끌었으며, 파키스탄 비밀 핵개발 프로그램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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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과 블릭스 모두 체르노빌이 원자력 발전의 미래를 방해하지 못하게 막으려 했고, 평화적 원자를 옹호했고, 원자력이 개발도상국의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믿거나 주장했고, 기후변화와 대기오염 문제를 이용해 원전을 확대하려 했지만, IAEA를 보는 두 사람의 시각은 달랐다. 칸은 원자력 기반시설 건설을 정당화해주는 수단으로 IAEA를 보았고, 블릭스는 세계 핵무기 개발계획을 감시하는 수단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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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풍요라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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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0. 원자로가 기후변화를 완화할 수 있을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동안* 우리는 핵기술이 처음 홍보된 역사적 이유와 세계 각국 정부에서 왜 계속 핵기술을 지지했는지에 관해 시야를 잃어서는 안 된다.
*"Nuclear Power Can Save the World." Joshua S. Goldstein, Staffan A. Qvist and Steven Pinker. 2019. 4. 6. The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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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원자력 발전을 지정학적 영향력, 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 인종주의적 분리, 군비 확산, 전쟁 같은 지구적 사안에서 분리시키는 잘못을 저지른다. 또한 개별 정부들이 자신들의 선호로 혹은 전략적 투자로 그러한 결정을 내리고 있는데, 이를 과소평가하는 잘못도 저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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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0-401. 원자의 약속은 세계를 어디로 인도했나? 식량, 물, 구충, 기후변화 완화, 질병 치료와 같은 약속들이 이른바 북반부와 남반부 사이 갈등의 중심에 있어왔다. 특히 미국과 유럽은 이런 약속에 의존해 작은 나라들의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경찰력을 증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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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에 일어난 사건들은 이러한 추세를 증폭시켰다. 예 : 1991년 소련 해체 후 소련 핵무기들의 운명이 의문에 부쳐진 사건.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비확산, 핵무기 사찰에 집중하는 능력 강화, 제1차 걸프전쟁에서 특히 개발도상국 핵개발 계획에 대한 IAEA 사찰, 감시 역할 증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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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1-402. 1997년 이집트의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으로 선출. 핵 관련 사안에서 개발도상 세계가 거둔 하나의 상징적 승리. 엘바라데이는 비확산 사안에 계속 집중하면서 미국과 충돌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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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2001년 9월 11일 이후 중동에 대한 정치, 군사적 개입 확대. 조지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이란, 북한을 세계의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 이들이 평화적 핵개발 프로그램 뒤에서 대량 살상무기를 개발했다는 것이 미국의 주장. 그러나 엘바라데이의 IAEA는 미국과 함께 하지 않았고, 원자력 부지 사찰에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미군은 2003년 후세인의 이라크를 침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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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2. 엘바라데이는 비확산 감시인이라는 IAEA의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했고, "핵에너지가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고 평화적 목적의 핵에너지가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이용되도록 확실히 한 노력을 인정받아" 2005년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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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3. 한동안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핵기술과 관련한 평화, 풍족함의 수사가 얼마나 유용했는지를 망각. 엘바라데이를 약화하기 위해 IAEA와 FAO의 협력처럼 핵무기 사찰과 관련 없는 프로젝트의 예산을 삭감, 폐지하려고 시도...했으나, 필요성을 인정하고 IAEA에 대한 '회의적 지지자'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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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4. 버락 오바마도 과거 미국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안보 이익 홍보에 대한 대가로 원자의 약속 다수를 포용했다. 원자력 르네상스라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원자력 발전과 기후변화 방지를 노골적으로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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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4-405. 2009년 선출된 IAEA 사무총장은 일본의 직업 외교관인 아마노 유키야. 아마노는 미국과 잘 협업했다. 아마노의 IAEA는 원자력의 풍요라는 서사 강화와 개선에 집중. 미국 외교관 에스더 브리머와 아마노 사무총장은 핵기술이 산업화된 북반부와 빈곤한 남반부의 분리를 완화시킬 수 있는 이상적인 방법이라는 데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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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행정부와 아마노는 기후변화 완화 뿐 아니라 다른 무수한 분야에도 핵기술이 쓰이도록 원자력 르네상스가 필요하다는 공통된 메시지를 내보냈다. ... 미래의 환경적 낙원이라는 약속은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지진(진도 9.0)과 원전 폭발 사고로 약간 흔들렸지만 완전히 흔들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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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6. 이후 독일은 원자력 발전을 완전히 포기. 프랑스와 스웨덴 같은 나라들은 원자력 발전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의존도가 높았다. 미국은 후쿠시마 이후에도 확고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에너지장관 스티븐 추는 기후변화 완화가 원자력 발전을 유지하는 설득력 있는 이유가 될 거라고 확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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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6-407. (저자가 로마의 FAO 문서보관소에서 찾아낸 '실로(Ronald Silow) 박사 문서철'*에 따르면) IAEA와 이를 후원하는 부유한 국가들은 식량 공급 증가에 일조하는 원자력의 역할에 대해 허위 주장을 펼치면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의 개발 프로젝트를 강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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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의 자료를 통해 저자는) 원자력이 주는 풍요라는 메시지의 중요성을 재고하고 냉전 지정학이나 탈식민주의 세계질서 같은 역사의 광범한 주제에 원자력이 어떻게 닿았는지 묻게 되었다. 천연자원이 부족하고 인구압, 기근, 질병의 위협을 항상 받는 나라들은 원자력의 약속을 어떻게 이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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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원자력과 관련해 전기, 환경문제, 사회정의 문제와 핵무기, 핵무기 확산, 외교와 경제, 군비 통제 측면의 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해왔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정부들이 전략적 목표를 추구하면서 실행하는 정책, 행동에 그런 생각이 얼마나 깊게 내장돼있는지는 고려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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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8-410. 이 책에서 역설한 상호 관련된 네 가지 주제.
.(1) 원자력의 미래가 유연한 생각이었다는 점. 천연자원을 통제하면서 각국의 전략적 필요에 맞게 원자력의 미래를 개조. 1950년대에는 방사성 동위원소 거래, 1970년대에는 원자로 - 핵연료(우라늄)와 석유 거래.
.(2) 이른바 평화적 원자가 환경오염에 대한 대항 서사로 이용되었다는 점.
.(3) 풍요의 약속이 종종 자신의 경제적 가치나 기술적 타당성에 비례하지 않게 정치적 가치를 지녔다는 점. '평화를 위한 원자력'은 순전히 선전으로 시작.
.(4) 식민지 시기를 떠올리게 하는 조작, 통제의 장치로 국제기구와 조약이 진화했다는 점. 세기말 세계 핵질서는 여전히 북반부와 남반부를 분리. 개발도상국을 끌어들인 원자력 분야 협력(예: 아시아 핵 센터, 중앙조약기구(CENTO) 원자력 연구소, IAEA)은 유럽과 북미 국가들이 고안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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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원자』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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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사회계약론』은 너무 비현실적인가?(추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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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새벽-화-시즌1. 발췌] 『조국의 법고전 산책』 1장 (pp.4~5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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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책새벽-화-시즌1. 발췌] 『조국의 법고전 산책』 1장 (『최후의 전환』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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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새벽-화. 발췌] 저주받은 원자 : 8장. 불신의 시대 & 결론. pp.349-4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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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원자』 8장 발췌 업데이트했습니다. p.391:1까지입니다.
『저주받은 원자』 발췌 완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