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문명이야기 (17) 풍요롭고 불평등한 사회

[그림 1] 1838년 세계 최초로 세워진 프랑스 파리의 백화점, 봉 마르쉐. 1852년 대대적으로 개조되었다. 현재는 LVMH가 소유. 그림은 <L’Univers illustré>에 수록된 1872년의 모습. (글 출처: wikipedia. 그림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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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물건을 한 장소에서 파는 소매상 형태가 처음으로 생긴 것은 언제였을까? 최초의 백화점은 1838년 프랑스 파리에서 들어선 ‘봉 마르쉐’(Le Bon Marché)이다. 이 아이디어는 이후 비엔나의 헤르만스키, 베를린의 티츠 등으로 이어져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식료 잡화점이었던 헤러즈, 포목상이었던 디벤험 등 기존의 소매점이 백화점이 되기도 했고, 셀프리지, 아미앤 네이비 등 새로운 백화점들도 계속 생겨났다. 이들 백화점의 소비자는 부유한 중산층이었다.

상설소매상은 중세와 근대 초기 유럽에서도 아주 큰 도시에나 있었을 뿐이다. 대부분 지역에 함께 거주하는 장인이나 주기적으로 지나는 행상인으로부터 물건을 샀다. 16-17세기가 되면서 런던이나 파리같은 대도시에 전문적인 가게들이 들어섰는데, 취급하는 품목은 주로 옷이나 보석이었다.

가게와 소매상이 생겨나고 늘어나게 된 배경에는 산업 발달과 에너지 소비 증가가 있다. 사회의 물질적인 부가 늘어가고 축적되면서 일반 시민들의 생활 수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현대 인류는 매우 풍요롭게 살고 있지만, 약 200년 이전까지만 해도 대다수 사람들은 재산도 거의 없었고 주거환경도 매우 열악했다. 비참한 생활 조건 속에서 식량을 구하기 위해 거의 모든 자원과 시간을 써야 했다.

중세와 근대 초기 유럽에서는 지출의 80%가 식비였지만 먹는 것은 형편없었다. 한두 달에 한 번 구워내는 빵을 사는 데 지출의 절반을 썼으며 가격이 오르면 소득의 전부를 식비로 써도 부족했다. 티롤지역의 경우에는 한 해에 빵을 두세 번만 구웠기 때문에, 빵을 자를 때 도끼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도시의 경우에는 사정이 더 나빴다. 1630년대 피렌체 빈민가에서는 방 하나에 8~10명이, 집 한 채에 10~12가구가 살았다. 총 100명 정도가 수도도 위생시설도 없는 집에서 함께 살았던 것이다. 부자들의 경우에도 쓸 수 있는 품목에 제한이 많았고 자신의 부를 주거와 옷, 식생활에 대부분 썼다. 대신 당시의 부자들과 수도원과 같은 종교시설에서는 하인을 많이 두고 쓸 수 있었다.

유럽 사회에는 거지가 아주 많았다. 르네상스 시기에 속하는 1457년 피렌체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당시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빈곤하거나 극빈층으로 분류되고 있다. 18세기 초 쾰른에서는 인구 5만 명 중 2만 명이 거지였다.

비슷한 시기 영국에서는 인구의 4분의 1이 ‘빈농과 영세민’이었고, 추수기 때를 제외하면 항상 생계 유지가 어려웠다. 흉년이거나 실업률이 높아지면 전체 인구의 절반이 이런 상태가 되었다. 1815년까지도 스웨덴 인구의 절반이 거지이거나 노동으로 먹고 사는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림 2] “The Fight Between Carnival and Lent.” 피터 브뤼헐 디 엘더. 1559년. 네덜란드 남부의 사육제와 사순절을 그린 그림. 왼편에는 축제를 즐기며 쾌락에 빠진 사람들, 오른편 교회 근처에는 사순절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고, 그림 곳곳에 구걸하는 거지들이 있다. (출처: wikipedia)

이런 열악하고 비참한 상황에서 자식을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16-17세기 이탈리아 도시에서 버려지는 아이들의 수는 태어나는 아이의 10분의 1에 달했다. 1780년 파리는 더해서, 태어난 아이들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8000명이 매년 버림을 받았다.

당시 인구의 3분의 1이 14세 이하였기 때문에 농촌과 공장에서는 이들의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네덜란드 라이덴의 한 직물공장에서는 임금 지출을 낮추기 위해, 1638년부터 30년 동안 독일의 아헨, 취리히, 벨기에 등으로부터 고아 8000명을 데려와 일을 시켰다. 이에 따라 성인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아이들은 일찍 죽었다.

17세기가 지나면서 농업 생산성이 조금씩 향상되었고, 유럽 일부 지역에서도 생활 수준이 나아졌다. 식민지로부터 자원과 노동력을 빼앗아오면서 교역물과 제조업이 늘어난 것도 주요한 이유였다. 그러나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던 나라들에만 한정되어 사정이 나아졌을 뿐이다.

19세기 후반부터는 일반 시민들도 생활 조건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대다수가 수입식품이었지만 음식이 더 풍족해졌고, 상하수도 시설이 늘어났고 주거 밀집도도 개선되어 갔다. 그러나 대부분 가난하고 빈곤한 생활을 했다. 1889년 런던 인구의 3분의 1이 빈곤하게 살았고 언제나 가난하고 영양부족이 심각해 괴혈병, 구루병, 빈혈을 앓았다.

1800년 영국 해군에 징병된 빈민가 출신의 소년들의 평균 키는 상류층 소년들보다 20cm가 작았다. 1899년 맨체스터에서 보어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지원한 소년들 1만 명 중 신체검사에 합격한 소년의 수는 1000명에 불과했다. 1940년이 되어서도 노동자 계층의 아이들은 사립학교에 다니는 또래 아이들보다 10cm가 작았다.

지난 두 세기 동안 이루어진 산업 생산, 소비 증가와 소득 증가는 엄청난 에너지와 광물, 자연을 사용하면서 가능했다. 불평등은 인류가 정착하면서 정주 사회를 만들고 계급사회를 만들면서부터 존재해왔지만, 현대의 기술 진보와 물질적인 풍요도 평등하게 나누어지지 않고 있다. 19세기를 지나면서 서유럽과 북미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 되었다.

20세기를 지나 21세기가 되면서 세계의 불평등과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2018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26명의 부는 세계 인구 중 소득 하위 50%에 해당하는 38억 명의 자산과 동일(Oxfam. 2018)하다.

이러한 불평등 문제는 건강과 삶의 질, 행복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지만, 환경문제와 기후위기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독립적으로만 볼 수는 없게 되었다. 가장 불평등하면서 동시에 풍요로운 나라들이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에 가장 많이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4] 경제 불평등과 쓰레기 배출량 사이의 관계. 200-2013. 원의 크기는 인구 규모를 나타낸다. 가로축: 상위 10% 대비 하위 10% 부의 비(오른쪽으로 치우칠수록 불평등이 심하다). 세로축: 1인당 쓰레기 배출량, kg. 미국의 경우 가장 불평등이 심하면서 환경오염 기여도가 큰 나라이다. 덴마크와 스위스같은 경우는 비례관계에서 벗어나는데, 이는 이들 나라는 쓰레기 데이터 조사가 다른 나라들보다 더 정확하기 때문이다. (출처: The Guardian)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수명이 짧은 제품들이 난무한다. 기업들은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고, ‘가져야만 하는 신제품’(must-have new versions)들은 불평등이 만들어내는 불안정과 불안감을 파고들어 이익을 걷어간다.

의류산업이 좋은 예다. 사람들은 싼 옷을 더 많이 사고 가난한 나라로 버린다. 여성 2,000명에 대한  최근 영국 조사기관의 보고에 따르면 이들이 옷을 선택하는 기준은 최신유행이고, 평균 7번 입고 나면 버린다. 이들 중 3분의 1은 세 번 입고 나면 유행이 지났다고 느낀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나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물건을 사야한다는 압박을 크게 느낀다. 의류, 새 차, 기타 지위를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인 제품들에서 특히 더 그렇다. 좋은 일자리는 사회에 기여하는 곳이 아니라, 좋은 물건들을 살 수 있게 높은 보수를 주는 곳이 바로 좋은 일자리가 되었다.

부자 나라에서는 고기도 더 많이 먹고 물도 더 많이 쓴다. 이 경우에도 미국이 가장 고기를 많이 먹고 물 소비량도 가장 크다. 영국, 미국, 캐나다, 그리스,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와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는 일 년 내내 하루에 소고기 스테이크를 한 번 이상 먹는다. 미국은 강수량도 적고 물부족 문제가 심각한 지역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일인당 물 사용량이 독일의 3.5배에 달한다.

환경오염 중 가장 심각한 것이 기후변화 문제,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이다. 미국인들은 부자 나라 상위 25개국의 배출량 모두를 합한 것보다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미국인 한 사람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은 일본인의 거의 2배이고, 프랑스의 3배 이상이다. 경제적으로 더 불평등한 부자나라일수록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더 많은 것이 일반적인 사실이다.

[그림 6] 소득별 일생동안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 소득 상위 10%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체 양의 50%이다. 이에 반해 소득 하위 50%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은 전체 양의 10%에 불과하다. (출처: The Guardian, Oxfarm. 2016)

불평등이 심한 영국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비교적 적은 이유는 최근 북해에서 채굴되는 천연가스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전기 사용량의 75%를 원자력발전소에서 만들어 쓰기 때문에 배출량이 적은 것으로 나온다. 프랑스의 경우 엄청난 핵폐기물이 생산되고 있다는 더 큰 문제가 있다.

비교적 평등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이유는 자국에서 생산되는 석탄을 태워 전기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예외가 있지만, 불평등할수록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경향은 [그림 5]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Oxfam은 왜 몇몇 부자 나라들이 다른 나라들보다 월등히 많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토마스 피케티 등의 경제학자들과 협업한 이 연구에 따르면, 그 이유는 경제적인 불평등때문이다.

부유한 사람들은 에너지도 더 많이 쓰고, 난방도 불필요하게 더 많이 하고, 더 큰 차를 사서 석유도 더 많이 쓰고, 비행기도 더 자주 타고, 불필요하게 큰 집을 짓느라 시멘트와 다른 자원도 더 많이 소비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쓰는 동시에 버리기도 더 많이 버린다.

[그림 7] 시오지리 길에서 본 스와호 (Lake Suwa) 풍경. 케이사이 에이센. 1830년대. (출처: Google sites)

1443년 일본 나가노현 스와호(Lake Suwa) 근처에 살던 일본의 신도(Shinto) 승려들은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을 시작했다. 이 호수는 가장자리부터 얼어가다가 가운데에서 솟구치는 얼음기둥을 만들어내는데 승려들은 이를 신의 발자국이라 믿었다. 이들은 호수가 처음 얼기 시작하는 시점과 얼음기둥이 생기는 시점을 매년 기록하고 신께 제사도 지냈다. 이 제의는 지금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승려들의 기록에 따르면 첫 250년 동안 호수가 얼지 않은 해는 3번이었다. 1955-2004년 사이에는 12번 얼지 않았고, 2005-2014년 사이에는 5번 얼지 않았다. 두 해에 한 번 언 셈이다. 그리고 2014년 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얼지 않았다.

기후변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를 더 평등하게 만드는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적으로 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람도 자연도 덜 착취하고, 에너지도 덜 쓰고, 덜 버리고, 이산화탄소도 적게 배출한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그림으로 읽는 문명이야기”에서는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와 녹색문명을 고민해봅니다.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세계사>를 읽어가면서, 현재의 환경문제와 기후위기 상황 그리고 석유에 기반한 현대도시문명을 다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그림으로 읽는 문명 이야기’는 매주 수요일 업로드됩니다.


발췌, 요약: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2020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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