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꼽문] 책새벽-월. 『역사의 역사』 서문, 제1장 (p.5-53)
녹색아카데미 온라인 책읽기 모임 '책새벽-월' 시즌4에서는 현재 『역사의 역사』(유시민. 2018. 돌베개)를 읽고 있습니다.
매주 읽는 내용 중 참여하시는 분들이 꼽아주신 책꼽문과 질문을 모아 이곳에 정리해두고 있습니다. 책 읽으시는 데 참고해주세요.
목차
서문
프롤로그
제1장 서구 역사의 창시자, 페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
제2장 사마천이 그린 인간과 권력과 시대의 풍경화
제3장 히븐 할둔, 최초의 인류서를 쓰다
제4장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 랑케
제5장 역사를 비껴간 마르크스의 역사법칙
제6장 민족주의 역사학의 고단한 역정, 박은식・신채호・백남운
제7장 에드워드 H. 카의 역사가 된 역사 이론서
제8장 문명의 역사, 슈펭글러・토인비・헌팅턴
제9장 다이아몬드와 하라리, 역사와 과학을 통합하다
에필로그 - 서사의 힘
서문
p.5.
“역사란 무엇인가?” 지난 2,500년 동안 … 만인이 흔쾌히 동의할 만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정답이 없는 질문이라면 형식을 바꾸어 보는 게 나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역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p.6.
이 책은 … ‘역사학의 역사’가 아니라 ‘역사 서술의 역사(history of writing history)’에 촛점을 맞추었으니 …
역사학과 역사 서술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목적과 성격과 작업 방식이 다르다. 역사학은 학술 연구 활동이지만, 역사 서술은 문학적 창작 행위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역사 르포르타주’로 받아들여 주기를 기대한다.
프롤로그
p.14.
역사는 단순히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사실로 엮어 만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없이 역사를 쓸 수도 없지만, 그저 사실을 기록하기만 한다고 해서 역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의 기록'은 역사 서술의 필요 조건일 뿐이다. 역사는 '인간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에 관해 문자로 쓴 이야기'다.
p.15.
이 책에서 말하는 역사는, … ‘인간의 삶과 사회의 변화 과정을 이야기하는 문자 텍스트’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역사의 역사’는 무엇인가? ‘인간과 사회의 과거에 대해 문자 텍스트로 서술하는 내용과 방법이 변화해 온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더 정확하게는 ‘역사 서술의 역사’라고 해야 하겠지만 편의상 간단하게 ‘역사의 역사’라고 하자.
P.16.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는 데서 출발해 과학을 껴안으며 예술로 완성된다.
훌륭한 역사는 문학이 될 수 있으며 위대한 역사는 문학일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p.17.
역사의 매력은 사실의 기록과 전승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데 있음을 거듭 절감했다.
p.16-17.
역사서들을 읽으면서 나는 흥미로운 사실을 아는 즐거움을 얻었고 사실들의 관계를 이해하는 기쁨을 누렸다. 그보다 더 귀하게 다가온것은 저자들이 문장 갈피갈피에 담아둔 감정이다. 역사의 사실과 논리적 해석에 덧입혀 둔 희망, 놀라움, 기쁨, 슬픔,분노,원망, 절망감 같은 인간적.도덕적 감정이었다.
제1장. 서구 역사의 창시자,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
거리의 이야기꾼, 헤로도토스
p.23.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정치가로 활동했던 지식인 키케로는 헤로도토스가 B.C. 425년에 무렵에 슨 『역사』를 최초의 역사서로 본 것이다.
…
레오폴트 폰 랑케(1795-1886)는 헤로도토스가 아니라 투키디데스(B.C. 460?~B.C. 400?)를 ‘역사 서술의 창시자’로 지목했다.
…
키케로는 ‘이야기’를 중시했는데 헤로도토스는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뛰어났다. 랑케는 ‘사실의 기록’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투키디데스는 사실을 검증하고 해석하는 솜씨가 빛났다.
페스시아 전쟁과 『역사』
p.27-29.
헤로도토스가 『역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 했는지 … 페르시아 전쟁의 역사를 짧막하게 요약한다.
… B.C. 5세기 그리스 세계는 수많은 도시국가로 이루어져 있었고, 모든 도시국가들을 하나로 묶어 준 요소는 ‘언어’와 ‘신화’였다.
…
오늘날 이란의 본거지였던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1세는 B.C. 6세기 말엽 메소포타미아, 북아프리카, 에게해, 소아시아, 흑해와 카스피해 연안, 발칸반도, 인더스강 유역을 아우르는 거대 제국을 형성했다. 도시국가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복속하기는커녕 조공을 바치는 것조차 거부하자 그는 대규모 침공을 준비했다.
…
B.C. 492년 첫 원정. 폭풍을 만난 탓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B.C 490년, 마라톤 평원에서 페르시아는 대참패.
…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B.C. 480년, 페르시아의 새로운 왕 크세르크세스 1세 … 그리스 침공. 아테네와 스파르타 중심의 그리스 연합군이 살라미스섬 근처 해협으로 페르시아 해군을 유인, 전격적인 기습 공격 … 페르시아 해군 참패.
…
(이후) 아테네는 델로스동맹의 맹주가 되어 50년 동안 경제적 번영과 민주주의 황금기를 누렸으며, 페르시아제국은 패전의 후유증과 내부 반란에 흔들리다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멸망당했다.
(여기서부터 2024년 4월 14일 업데이트한 부분입니다.)
p.23.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서구에서 역사의 창시자 대접을 받는 것은 책이 훌륭해서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었고 지금도 읽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의 역사에 남은 역사서를 쓴 서구 역사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그리스 고전에 통달했고, <역사> 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들의 책은 왜 그렇게 오래그리고 널리 읽혔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은 '서사의 힘'이다. 그들을 뚜렷한 목적을 품고, 명확하게 특정할 수 있는 대상에 관하여, 최대한 사실에 토대를 두고,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으면서 지적 자극을 받고 정서적 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를 꾸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가 지적 자극을 받고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드는 일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그리스 세계의 몰락
p.33.
B.C. 405년 페르시아의 지원을 등에 업은 스파르타 해군이 아이고스포타미 전투에서 아테네 해군을 궤멸시키고 아테네를 포위했다. ... 그러나 스파르타의 환호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기력을 탕진한 그리스 세계는 스무 살에 왕이 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에게 정복당한 데 이어 로마제국의 속주가 되었다. 그 후 2,000년 동안 그리스 사람들은 그리스 땅에 자기의 국가를 세우지 못했다.
세계사와 민족사의 동시 탄생
p.33-34.
투키디데스는 그리스 세계의 몰락을 부른 내전의 원인과 경과를 연대순으로 꼼꼼하게 기록했다. 그런데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B.C. 411년 가을에 중단되었다. …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결국 미완의 역사로 남았다.
p.36.
투키디데스는 도시국가들 사이의 정치적, 경제적 갈등이 전쟁이라는 폭력 사태로 터져 나온 원인을 밝히려고 끈질기게 노력했다. … 투키디데스는 자신이 헤로도토스보다 더 역사가다운 역사가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으며, 다음과 같은 말로 그 자부심을 표현했다.
“내가 기술한 역사에는 설화가 없어서 듣기에는 재미가 없을 것이다. … 이 책은 대중의 취미에 영합하여 일회용 들을 거리로 쓴 것이 아니라 영구 장서용으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과 상상력
p.40-41.
『역사』는 신화, 전설, 민담, 소문, 목격담을 그대로 옮긴 이야기가 태반인데, 헤로도토스는 이런 사실을 내놓고 인정했다. ... “나는 들은 것을 전할 의무는 있지만, 들은 것을 다 믿을 의무는 없으며, 이 말은 책 전체에 적용된다.
“역사서는 모든 것이 사실과 연관되고, 시가는 오락으로 귀결된다.”고 한 키케로가 『역사』에 “설화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나온다고 지적하면서도 헤로도토스를 역사의 아버지라고 인정한 것은 그가 오로지 사실만 적어서가 아니라 모든 이야기를 사실로 뒷받침하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서사의 힘과 역사의 매력
p.49-50.
페르시아 전쟁은 한 번뿐인 대사건이었기에 헤로도토스는 전쟁의 주역들이 이룬 문명의 성취와 전쟁의 원인, 전쟁의 흐름과 결말을 서술하는 데 집중했다. 반면 투키디데스는 그와는 다른 측면에 조명을 비추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리스의 수많은 도시국가에서 벌어진 내란 상황도 면밀하게 관찰한 것이다. 그는 특히 인간의 본성에 비추어 볼 때 반드시 재현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일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분석하고 평가했다.
p.50-51.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3권 82~83장
내란이 계속되자 사람의 행위를 평가하는 말의 뜻이 달라졌다. 만용은 충성심으로 통하고, 신중함은 비겁한 자의 핑계가 되었다. 절제는 남자답지 못함의 다른 표현이고, 문제를 포괄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 하나 실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충동적인 열의는 남자다움의 징표이고, 배후에서 꾸미는 음모는 정당방위였다. 과격파는 언제나 신뢰받고, 그들을 비판하면 의심을 받았다. 성공적으로 꾸민 음모는 영리하다는 증거였고, 음모를 미리 적발하는 것은 더 영리하다는 증거였다. 음모에 미리 대비하면 당을 전복하려 하며 반대파를 두려워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 모든 악의 근원은 탐욕과 야심에서 비롯한 권력욕이었고, 일단 투쟁이 시작되면 광신 행위를 부추겼다. 정파 지도자들은 입으로는 공공의 이익에 봉사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공공의 이익을 전리품으로 챙겼다. 반대파를 제압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하면서 극단적인 잔혹 행위를 일삼았다. 정의와 국익을 무시하고 반대파보다 더 잔인하게 보복했다. 내란으로 인해 그리스 세계 전체가 도덕적으로 타락했고, 고상한 성품을 나타내는 순박함은 조롱거리가 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세상은 이념적으로 적대하는 두 진영으로 나뉘었고, 상호 불신이 유행했다.
p.51-52.
교양인이 되고 싶다면 동서양 고전을 읽으라는 말이 있다. … 이런 말에 끌려 『역사』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펼쳤다가는 크게 후외할지도 모른다. … 그렇다고 해서 … 자책하거나 … 저자를 원망할 필요는 없다. 독해가 어려운 것은 낯선 정보가 너무 많아서다. …
….
그렇다고 그 모든 낯선 정보를 다 검색해 가면서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다. 서사에 집중하면서 읽으면 충분하다. 우리가 옛 역사서를 읽는 것은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남긴 이야기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1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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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 책꼽문, 1장 p.53까지 업데이트 했습니다.(1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