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질문] 출현(나타남)
자연철학강의 p. 321-322
현대 우주론에 따르면 이러한 우주 초기의 사건은 극히 짧은 시간 곧 빅뱅 이후 10-35초 이내에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물론 이 당시 우주의 공간적 크기도 그리 큰 것이 아니었지만 이때 방출된 엄청난 크기의 에너지로 인해 우주의 공간이 급속히 팽창하면서 그 공간 규모가 이 전이 과정을 통해 최소 1030배 또는 그 이상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한다. 물론 이 기간 동안 우주의 공간만 이렇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인플레톤 마당(inflaton field) 자체가 응결되어 에너지를 지닌 수많은 물질 입자들이 출현했고 이와 함께 이들 사이의 관계를 맺는 기본적인 상호작용도 출현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러한 물질 입자와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출현했다는 사실은 ‘구분 지어 말할 수 있는 그 어떤 존재’ 곧 일정한 질서가 나타났음을 의미하는것이기도 하다.
1. 위 글에서 ‘출현’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가요? ‘창발(emergence)’의 의미인가요?
2. 3장에서 ‘시간이란 특성인가 상태인가’라는 질문을 드렸을 때 ‘시간과 공간은 특성도 상태도 아니며 근본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라고 답해 주셨습니다. 프레드 호일의 주장처럼 항상성을 가진 우주라면 시간과 공간을 근본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일만 하지만, 빅뱅 이후 시간과 공간이 나타나고 여러가지 물질 입자와 기본적인 상호작용들이 출현했다면, 이 우주에 근본적으로 주어진 것은 없으며 모두 나타난 것들이 아닌지요?
3. 물리학에서 근본적인(fundamental) 것과 나타난(emergent?) 것을 어떻게 구분하나요? 그러한 구분은 물리학 연구에서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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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에 관한 질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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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우주와 물질 발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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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교로서의 심학제6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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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론 상전이 또는 교차와 우주의 온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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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자유 에너지에 관하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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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장회익 '질서론' 안의 개념과 원리에 대한 몇 가지 질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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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질문] 출현(나타남)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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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배경복사의 미세한 비등방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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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다항을 곱셈이 아니라 덧셈을 했는데 어떻게 우주가 팽창하는 것으로 바뀌는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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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과 에너지의 차이?(지난 번 세미나에서 보여주신 식)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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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 | 2022.06.27 | 0 | 2036 |
고전적인 우주론에서는 실상 새로운 것이 갑자기 툭 튀어나오듯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하간 양자역학의 '요동 fluctuation'이나 근본적 불안정성(instability)이 개입하면 미묘하지만 뭔가 새로운 것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결국은 모두 일종의 창발(떠오름)이라고 믿습니다.
창발 또는 떠오름은 여러 위계에서 하위수준에서는 연역적으로/자동적으로 무엇인가가 생겨나기 어려운 상황인데 상위수준에서 뭔가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저는 강의실이나 세미나 모임이 그런 '창발'의 공간이라고 믿습니다. 이미 확립된 어떤 지식을 답습하고 전수하는 게 아니 아니라 예기치 않게 뭔가 새로운 이야기가 오고가고 그러면서 그 전까지는 가능하지 않았던 뭔가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자리라는 겁니다.
우주론에서는 아주 작은 차이(사하로프 원리와 관련된 바리온 생성은 $10^{-10}$ 즉 1백억 분의 1 정도의 아주 작은 오차가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어낸다고 보고 있습니다. 핵합성 즉 에너지와 빛만 있던 곳에서 쿼크와 렙톤 같은 기본물질이 만들어지고 그 물질들이 서로 모여서 중성자, 양성자, 중간자 같은 것을 만들고, 다시 이것이 모여서 원자핵을 이루고, 또 그 원자핵이 전자를 받아들어 원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창발'이 아닌 다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떠오름(창발)' 개념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이 개념 자체는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생산적인 무엇이 안 나온다고도 합니다. 실상 '창발'이란 말 뒤에 숨은 뉘앙스는 "잘 모르겠고, 더 깊이 공부해 봐야 할 것 같다"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반대되는 '환원주의'는 일종의 선명한 구호로서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몰라도 실제로 굴러가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봅니다. 또 '환원주의'의 위험성은 그것이 근본적으로 권위주의와 위계와 엘리트주의의 근간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접근을 가령 '물리학 제국주의'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와 달리 환원 대신 창발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원주의를 옹호합니다. 기본입자의 세계가 있고 다시 원자의 세계가 있고 다시 생명의 세계가 있고 다시 의식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죠. 이 문제는 자연철학에서 매우 심각하고 근원적인 것입니다. 생명과 의식이 과연 신체와 물질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창발론자들이 이원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창발론은 명백하게 일원론에는 반대합니다. 특히 물리주의와는 거리를 둡니다.
장회익 선생님의 스탠스는 아마 더 미묘한 것 같습니다.
여하간 우주론에서 물질의 생성, 은하의 생성, 별의 생성, 행성의 생성, 생명체의 생성, 의식의 생성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우연과 요동과 섭동과 예측불가능성과 근본적 불안정성이 창발적으로 만들어낸 대단히 기묘하고 희소적인 놀라움입니다. 이것을 '창발'과 다른 언어로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질문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세미나에서 깊이 이야기 나누면 좋을 듯 합니다.
관련된 영상 하나 링크 올립니다.
Time is fundamental space is emergent (Lee Smolin)
어제 온라인 세미나에서 이 문제가 더 다루어지길 바랬는데, 제가 여는 발제에 너무 시간을 많이 써 버린 탓에 이 질문을 더 이야기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입니다.
물리학에서 '창발(떠오름; emergence)'은 대단히 중요하고 핵심적인 개념이자 방법입니다. 이와 관련한 가장 유명한 글은 미국의 물리학자 필립 앤더슨의 "더 많으면 다르다: 대칭성 깨짐과 과학의 위계적 구조의 성격"이라는 제목의 논문일 겁니다.
Anderson, P.W. (1972) “More is different: Broken symmetry and the nature of the hierarchical structure of science,” Science, 177(4047): 393-396.
불과 네 쪽에 불과한 짧은 글이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깊은 통찰이 배어 있습니다. 첨부하는 파일은 이 고전적인 논문을 2014년에 다시 내면서 제프리 골드스타인이 15쪽 분량의 소개의 글을 덧붙인 것입니다.
필립 앤더슨은 일리아 프리고진이 노벨화학상을 받은 같은 해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앤더슨은 자성계에서 대칭성 저절로 깨짐과 관련한 연구로 유명합니다. 바로 이 연구 덕분에 입자물리학에서 브라우트-엉글레르-힉스(BEH) 메커니즘이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아이러니라면 BEH 메커니즘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1970년대에 전자기력과 약한핵력을 통일하는 이론을 만들었던 미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는 매우 강한 환원주의자였다는 점입니다. 앤더슨은 당시 물리학계, 특히 핵/입자물리학 분야에서 퍼져 있던 환원주의에 반대했습니다.
기본입자든 뭐든 더 작은 요소에 대해 알면 그것이 만드는 더 '상위'의 계에 대해서도 모두 알 수 있다는 식의 환원주의는 별로 세련되지 못한 다소 조급한 믿음입니다. 기본입자(쿼크)를 알아도 그것이 모여 만드는 핵을 제대로 알 수 없고, 핵을 알아도 원자를 알기 어렵고, 하물며, 그런 원자들이 여럿 모여 만드는 초전도성이나 자성이나 기타의 물성, 나아가 그와 독립적인 듯이 보이기도 하는 생명과 의식과 사회까지 모두 기본입자(요즘에는 초끈)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죄다 알 수 있다는 (또는 언젠가는 그렇게 알 수 있게 되리라는) 주장은 참 답답한 면이 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필립 앤더슨은 "더 많으면 다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아주 중요한 통찰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이와 관련한 철학적 논의로 다음의 논문집이 비교적 최근에 출간되었습니다.
Brigitte Falkenburg, Margaret Morrison (eds.) (2015) Why More Is Different: Philosophical Issues in Condensed Matter Physics and Complex Systems. Springer.
첨부파일 : anderson1972-More-Is-Different.pdf
그런데 최근에 양자중력 이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시간과 공간도 창발적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상은 이미 1990년대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었지만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요즘 초끈이론의 세력이 급감하면서 대안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고리양자중력이론이 바로 그런 이야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탈리아 출신의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과 공간이 그렇게 떠오름(창발)으로 생겨난다는 주장을 일반 비전문가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에서 활발하게 펼쳤습니다. 그 중 한 책은 아예 한국어 번역판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고 과감한 수정을 해 버렸습니다. (역자는 자연철학 세미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시는 이중원 선생님입니다), 원제가 The Order of Time 즉 "시간의 질서"인데 제목을 너무 과감하게 바꾼 것에 저는 좀 비판적입니다.
브런치에는 이런 이야기를 가지고 아예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연재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브런치의 글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문장마다 잘못된 서술이 미묘하게 있는데, 그렇게 전체를 다 보면 좀 황당한 이야기가 되어 있습니다.필자는 물리학이나 자연철학을 잘 모르시는 분 같은데, 로벨리의 책 하나를 읽고 내용을 정리하는 식이어서 사실 우려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로벨리와 함께 고리양자중력이론을 만들고 연구해 온 캐나다의 물리학자 리 스몰린은 로벨리의 대중적 서술과 달리 시간은 근본적이고 공간은 창발적이라는 이야기를 펼칩니다.
물리학이나 자연철학에서 "더 근본적인 것"과 "덜 근본적인 것"의 구별은 대개 임의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하간 존재론(형이상학)에서 시간과 공간은 가장 근본적이며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어왔는데, 양자중력이론에서 대뜸 시간과 공간조차 다른 것에 창발적으로 생겨난 것이라고 말하니 당혹스러운 상황이 됩니다. 그 '다른 것'은 근본적으로는 물질입니다. 하지만 다음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죠. 그 '물질'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어제 세미나에서는 이런 종류의 질문이 끝이 없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저는 자연철학이야말로 이 끝없는 질문을 묻고 거기에 어떻게든 최신의 여러 연구성과들을 가져와서 나름의 대답을 하려 애쓰는 작업이라고 믿습니다. 자연철학의 매력은 굳이 '정답'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각자가 각자의 자연철학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조금 더 정확하고 조금 더 설명력이 높고 조금 더 전체 체계가 잘 짜인 자연철학을 차근차근 다듬고 수정하고 고치고 장식해 가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