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배경복사의 미세한 비등방성
1965년에 두 편의 역사적인 논문이 [천체물리학 저널](Astrophysical Journal)에 나란히 실렸습니다.
Dicke, R. H. ; Peebles, P. J. E. ; Roll, P. G. ; Wilkinson, D. T. (1965). "Cosmic Black-Body Radiation." Astrophysical Journal, vol. 142, p.414-419
디키와 같은 프린스턴 대학에 있던 P. G. 롤과 데이비드 윌킨슨은 이 우주 흑체복사를 찾아내기 위해 디키가 1940년대에 고안한 마이크로파 라디오미터(microwave radiometer)를 설치하고 배경복사의 흔적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벨 전화연구소에 있던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우드로 윌슨인 바로 그 흔적을 아주 우연하게 발견했습니다. 게다가 흑체복사라면 여러 파장(진동수)에 걸쳐 복사에너지를 측정하고 전체 분포를 알아내야 하는 것인데, 펜지어스와 윌슨의 발견은 단 하나의 파장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펜지어스와 윌슨은 진동수 4080 Mc/s = 4.080 GHz 즉 파장 7.348 cm에 해당하는 전자기파가 모든 방향에서 골고루 잡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이 쓴 장치도 디키가 개발한 마이크로파 라디오미터였습니다. 그 무렵 우연히 피블즈가 존즈 홉킨스 대학에 초청 강연을 갔습니다. 1965년 봄이었습니다. 그 강연을 들은 사람 중 하나가 우연히 펜지어스와 윌슨을 알고 있었고, 피블즈의 강연 내용을 전해 줍니다. 펜지어스는 프린스턴 대학 연구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디키는 연구팀원들에게 "Boys, we've been scooped."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펜지어스와 윌슨은 바로 그 신호가 프린스턴 대학 연구팀에서 그토록 찾고 있던 바로 그 우주배경복사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두 팀은 나중에 시끄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천체물리학 저널]에 나란히 논문을 실었습니다. 1978년 노벨물리학상이 펜지어스와 윌슨에게 돌아갔을 때 로버트 디키와 제임스 피블즈가 제외된 것을 가지고 설왕설래가 있었습니다.
마이크로파는 진동수가 300 MHz~300 GHz 범위에 있는 전자기파를 통칭합니다. 더 실용적으로는 1 GHz~100 GHz 범위에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에 해당하는 파장은 3mm~30cm입니다. 이후에 7센티미터 이외의 파장에 대해 우주배경복사의 에너지 밀도를 조금씩 확인해 나갔는데, 이것이 절정에 다다른 것이 바로 1989년에 발사된 인공위성 COBE (Cosmic Background Explorer)의 관측이었습니다.
이 정교한 데이터에는 그 흔한 오차막대도 없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바로 그 정교한 데이터에 있는 하찮은 차이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출처: http://marsatschool.ethz.ch/de/mission/1/ )
특히 2013년에 나온 플랑크 위성(Planck)의 결과가 놀랍습니다.
(출처: https://apod.nasa.gov/ )
이 우주배경복사가 만들어질 때까지 대략 다음과 같이 역사가 흘러갑니다.
빅뱅 후 1초 뒤: 기본입자(쿼크, 렙톤, 글루온, W, Z)
빅뱅 후 3분 뒤: 원자
빅뱅 후 30분 뒤: 수소, 헬륨
빅뱅 후 38만 년 뒤: 우주가 맑게 갬. 우주배경복사
http://marsatschool.ethz.ch/de/mission/1/ 에 들어가면,그 뒤 은하와 항성(별)과 행성이 만들어진 역사를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스위스 연방공과대학(맞습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모교죠)에서 교육용으로 만든 자료입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것이 바로 요동과 우연입니다. 다음 온라인 세미나에서는 이 요동과 우연과 하찮은 차이에 대해 강조해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에피쿠로스(Ἐπίκουρος 341-270 BCE)의 '클리나멘(비껴남)'이라는 개념을 되새겨 보는 것이 유익합니다. 에피쿠로스의 사상을 잇고 있는 로마의 시인이자 자연철학자 루크레티우스(Titus Lucretius Carus 99-55 BCE)의 [사물본성론 De Rerum Natura]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물체들이 자체의 무게로 인하여 허공을 통하여 곧장 아래로 움직이고 있을 때, 아주 불특정한 시간, 불특정의 장소에서 자기 자리(spatium)로부터 조금, 단지 움직임이 조금 바뀌었다고 말할 수만 있을 정도로, 비껴났다는 것을. 하지만 만일 그들이 기울어져 가곤 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은 아래로, 마치 빗방울처럼, 깊은 허공을 통하여 떨어질 것이고, 충돌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타격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기원들에게는, 그래서 자연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못했을 것이다.”
[Lucretius, De rerum natura 2.216–224]
고대 그리스-로마의 자연철학에서는 이러한 '비껴남' 또는 '우연'이 단순히 시의 한 구절로 제시되었을 뿐이지만, 프리고진은 이 '비껴남'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확실성의 종말"에 대해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프리고진이 내세우는 핵심 개념은 비가역과정에 대한 열역학적 연구에서 비롯한 스스로 짜임(자기조직화)와 흩어짐 구조(dissipative structure)입니다. 또 불안정계의 물리학으로부터 대칭성과 예측가능성을 주된 특징으로 하는 고전물리학과 달리 요동(fluctuation), 불안정(instability), 다중선택(multiple choices), 제한된 예측가능성(limited predictability)이 어디에나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프리고진의 독특한 사유가 혜강 최한기(1803-1979)의 자연철학과 연결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최한기는 氣에 기반을 둔 존재론적 사유를 전개했습니다. 氣가 形質(형질)과 活動(활동)의 두 측면을 지니며, 만물이 곧 氣라는 존재론적 믿음을 가지고 고유한 자신의 자연철학적 사유를 제시했습니다. [신기통(神氣通)]과 [추측록(推測錄)]을 합본한 [기측체의(氣測體義)] (1836)와 서양천문학의 핵심내용을 소개하는 [지구전요(地球典要)] (1857)와 함께 [기학(氣學)] (1857)과 [운화측험(運化測驗)] (1860)을 저술한 최한기는 1861년경에 [담천(談天)]을 통해 비로소 뉴턴의 자연철학을 접하게 됩니다. 이 책은 존 허셜(John Herschel, 1792-1871)이 저술한 Outlines of Astronomy (천문학 개요 1883)를 Alexander Wylie (1815-1887)와 리션란(李善蘭, 1811-1882)이 공역한 것입니다.
최한기가 氣輪(기륜)과 攝動(섭동)의 이론을 바탕으로 독특한 자연철학적 존재론을 제시했다고 이야기되는 [신기천험(身機踐驗)] (1866)과 [성기운화(星氣運化)] (1867)는 뉴턴의 자연철학을 재구성하고 비평한 것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는 대로 살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최한기가 말하는 攝動(섭동)은 어쩌면 에피쿠로스의 클리나멘(비껴남)이나 프리고진이 말하는 불안정계의 물리학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저는 심학제6도에서 다루어지는 우주와 물질, 심학제7도의 자체촉매적 국소질서로서의 생명에 대한 논의가 모두 우연, 요동, 확률, 예측불가능성 등에 기반을 두고 전개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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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공간의 팽창, 물질의 생성, 그리고 거기에 이은 은하, 별, 행성의 탄생은 http://marsatschool.ethz.ch/de/mission/1/에 알기 쉬운 그래픽으로 나와 있습니다.